번뇌 물든 수행자 퀴퀴한 냄새나
알아차리는 만큼 부끄러움 커져

혜인스님
혜인스님

사랑하는 사람에게선 진실한 향기가 난다. 개그를 진실로 사랑하는 코미디언은 똑같이 망가져도 남달리 행복해 보이고, 작품을 진실로 사랑하는 배우는 똑같이 눈물 흘려도 남달리 슬퍼 보인다. 그 진실한 향기에 우리는 마음껏 웃음 짓고, 마음껏 눈물짓는다. 사랑의 향기가 짙어질수록 울림은 깊어진다. 불법을 사랑하는 수행자의 마음이 깊어질수록 똑같은 경문(經文)을 외워도 남달리 마음이 울리는 것처럼.

남의 사랑에 이렇게 내 마음이 열리는 건, 마음을 연 자에게만 사랑이 깃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아득해지는 건, 그 진실한 향기가 그리워지는 건 그만큼 내 마음이 닫혀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향기롭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 진실이 아닌 사랑을 그리운 마음에 애써 붙잡고 있는 통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닫혀버린 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변해버린 사랑에선 냄새가 난다. 닫혀버린 마음 탓에 바람이 통하지 못해 퀴퀴하게 묵은 냄새. 사랑이 욕심으로 변하고 집착으로 변하는 냄새. 욕심으로 개그하는 코미디언은 똑같이 망가져도 불쌍해 보이고,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 배우는 똑같이 눈물 흘려도 슬프지가 않다. 부모의 사랑도 욕심과 집착으로 변하며 냄새를 풍길 때 아이들은 마음을 닫는 것처럼. 이렇게 쉬이 변하는 사랑의 속성은 수행자의 마음이라고 다를 리 없다.

향기롭지 않은 수행은 이미 수행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 번뇌는 익숙해질수록 없애기 어려운 법이니, 한두 번 번뇌에 마음을 내어 주다 보면 어느새 수행자에게도 퀴퀴한 냄새가 깃든다. 흰 도화지일수록 작은 얼룩도 금방 눈에 띄듯이 수행자의 사랑은 그 누구의 무엇보다도 쉬이 변한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그렇게 내 마음이 자리를 내준 번뇌의 냄새는 결국 부끄러움으로 밀려올 수밖에. 그걸 알아차리는 만큼 부끄러움은 커지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면 부끄러움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에서도 가끔 냄새가 난다. 매일 하는 똑같은 염불 소리도 어느 날은 향기롭다가 어느 날은 냄새가 나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서, 사소한 표정 하나에서, 작은 몸짓 하나에서 나도 모르게 가끔 냄새가 난다. 뻔뻔스러워지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부끄러워지는 건 수행을 선택한 자의 몫이다. 얼른 다시 당당히 마음 열어 바람과 햇볕 맞히는 것, 진실한 사랑으로 마음을 숨 쉬게 해주는 것도 내 몫. 향기는 사랑의 몫이고, 마음 열어 느끼는 사람의 몫이다.

살아간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그리운 진실의 향기를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어느새 저 멀리 아득해져 버린 향기 나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건지도. 다들 그렇게 산다고. 세상은 그런 곳이라고 애써 위안 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진실한 사랑의 향기를 맡는 것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니.

수행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냄새는 풍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세상 하고많은 것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수행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라를 사랑한 장수(將帥)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조국을 지켜내는 것처럼. 중생을 사랑한 부처님이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고행(苦行)을 스스로 선택하신 것처럼. 그 엄청난 노력도 과감히 버리신 끝없는 사랑처럼.

종정을 지내신 방장 스님이 입적하셨을 때, 학인이었던 나와 사부대중들은 모든 일상이 중지된 채 며칠간 큰스님의 장례를 치르느라 바빴다. 다비(茶毘)까지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어느 찻집에서 나오던 녹음 음성. “수행자가 부끄러움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불교신문3593호/2020년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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