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66> 금강경의 수행론⑱ 참된 반야바라밀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66> 금강경의 수행론⑱ 참된 반야바라밀
  • 등현스님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 승인 2020.06.27 20:38
  • 호수 35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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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는 모든 유위의 형성 해체

금강경 4구게 본질과 내용은
아상과 법상 여의게 하는 것
중생과 무위해체의 수행해야
등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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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法相, dharma-sam.jñā)은 대상에 대한 시비분별을 통한 견해의 집착이고, 이 견취는 윤회를 일으키는 4가지 요소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법상은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부처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뛰어 넘어야할 장애요소인 것은 석가모니불 역시 연등불 아래서 수기를 받을 때 받은 법이 없음을 천명한 것으로써도 알 수 있다. 즉, 세존, 연등불 역시 모두가 받은 법도 줄 법이 없는 연고로 법상을 여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모든 유위의 형성이 해체된 세계가 불국토이다. 그러므로 불국토를 건설하거나 장엄한다는 것은 외형적인 세계나 국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고, 모든 유위의 형성을 해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외형적인 세계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완벽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상하며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알 수만큼의 많은 세계의 보배를 가져와서 보시를 한다 할지라도 4구게를 설명하는 공덕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4구게의 본질과 내용은 아상과 법상을 여의게 하는 것이고, 아상과 법상을 여의게 되면 모든 형성된 세계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 아상과 법상을 여의게 하는 법이 바로 4구게의 가르침이고, 그 4구게를 설하는 곳이야말로 또한 바로 부처님이 머무는 곳인 법당이며, 참된 승가가 머무르는 곳이다. 그러므로 승가가 참된 승가이기를 원한다면 모든 형성된 유위를 해체하는 무위 해탈의 수행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위의 수행을 자기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동체 대비심을 일으켜서 중생과 함께 같이 하는 것이 보살승이다.

중생과 함께 가야하는 이유는 오온 안에 나가 없기 때문이며(五蘊無我), 연기 속에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自他不二). 이처럼 불국토 건설의 원력을 가진 자는 색성향미촉법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수행을 참된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반야바라밀의 수행은 첫째, 마음이 그 어느 곳에도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음을 말하고(응무소주 이생기심), 둘째, 아상과 법상에 머무르지 않음이며, 셋째, 그것을 4구게의 가르침이라고 하며, 넷째, 그러므로 반야바라밀 수행자가 참된 승가이고, 다섯째, 그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법당이고 적멸보궁이며 승원인 것이다.

“대지의 티끌은 티끌이 아니므로 많다고 할 수 있으며, 세계는 세계가 아니므로 세계라고 하며, 32대인상은 32상이 아니므로 32상이다.” 이러한 문장의 논리는 모든 이름으로 표현되어지는 현상은 유위의 형성이고, 자성이 없으므로 그들은 참된 실재가 아니어서 그것들(법)에 집착할 바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갠지스 강가의 모래알 수만큼의 희생제를 지내는 것보다도 4구게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불국토의 장엄 또는 건설이라는 원력에 대한 법상을 가지지 않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원력을 가지되 원력을 일으키는 자와 대상이 무아임을 보면서 원력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기원전 2500년 전에 신두강에 정착한 아르얀들은 히브리인들과 종족적으로 신앙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신앙적으로 유사한 부분은 대속의 개념인데 이는 자신의 지은 죄를 대신해서 짐승들이 죽으면 자신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중의 최고의 대속제는 사람의 희생제이다.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사람을 죽여 재단에 바침으로써 내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자이나교에 와서 ‘살레카나’라는 단식 후 몸을 사르는 소신공양으로 발전하였고, 자이나교도들은 이를 수행의 완성이며 최고의 해탈로 간주한다. 어쨌든 몸을 사루어 공양하는 것이 최고의 공덕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소신공양보다도 4구게를 설하여 가르치는 공덕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이 경전은 말하는 것이다.

[불교신문3593호/2020년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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