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다. 주로 기차를 타고 가긴 하지만 이번엔 승용차로 올라가며 단골 휴게소에 들렀다. 이곳은 휴게시설과 산책로를 잘 만들어 놓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마침 점심때라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소화도 시킬 겸 휴게소 뒤쪽으로 난 산책길을 천천히 걸었다. 문득 나무에 매달아 놓은 글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랑? 해봤어야지’ 아마 사랑도 한번 못해본 시인이 푸념삼아 쓴 시 같았다. 그러게, 그 사랑이란 것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 

오후에 누각을 서성이며 그윽한 풍경소리에 젖어있는데 거사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직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끔 스님들의 깜냥을 재미삼아 점검하러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분들이 있다. 어떤 스님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들었다. 내가 먼저 한 말씀 드렸다.

“혹시 불교 교리에 관한 질문이면 인터넷에 검색해 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거기에는 교수님들이나 큰스님들 강의가 수두룩합니다.” “그러죠, 뭐”하며 공격을 슬쩍 비켜가더니 대뜸 “스님은 한소식 하셨습니까? 그게 대체 뭡니까?”라며 되받아쳤다.

가슴이 뜨끔했다. 하마터면 산책하던 다리가 휘청하고 풀릴 뻔했다. 선방에서 좌복에 좀 앉아 본 사람들은 안다. 그 ‘한소식’이란 것이 수좌들을 얼마나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하는지를···. 

그래도 출가 수행한지 30년을 훌쩍 넘기고 선방에서 장판 때도 꽤 묻혔는데, 큰 소식은 못돼도 작은 소식 하나정도는 일러줘야 되지 않나 하는 자존심이 꿈틀하고 일어났다. 마침 공양간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하하, 한소식요? 제가 해봤어야죠. 그래도 지금 바람결에 전해오는 냄새를 맡아보니 오늘 저녁 메뉴가 국수인 것은 알겠습니다. 오신 김에 국수나 한 그릇 하고 가시지요.” “···?!” 누각 끝에서 푸른 허공을 헤엄치고 있던 잉어가 뎅그렁 꼬리를 치며 킥킥 웃었다.

아, 꿈에도 그리는 그 한소식! 거사님의 돌직구에 한소식은 커녕 반소식도 못한 게으른 수행자의 슬픈 푸념이여! 

[불교신문3593호/2020년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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