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경전번역 응용한 설화 ‘어진사슴’ 게재하다

‘불설구색록경’ 한 부분 활용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
부처님 가르침 쉽게 전해

대한불교에 글쓰기 시작으로
일간신문 등 여타 매체에도
'법정스님' 이름 알리며 ‘명성’

법정스님이 상경해 활동했던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원으로 이곳에 총무원 건물이 있었다. 지금은 대웅전을 제외하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법정스님이 상경해 활동했던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원으로 이곳에 총무원 건물이 있었다. 지금은 대웅전을 제외하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1960년대 초 경전번역에 나선 법정스님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을 극히 저어했다. 사촌동생 박성직 거사는 “스님은 평소에 ‘부처님이 경전말씀 하시고 자신이 말씀했노라고 하지 않았듯이 부처님 제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옮겨 놓으며 이름을 밝히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는 지론(持論)을 펼치셨다”고 했다.

마지못해 이름을 올려야 했던 <불교사전>이나 <우리말 팔만대장경>에는 이름이 올라가 있긴 하지만 법정스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올린 것이 아닌가 싶다. 이후 불교경전을 번역해 출간한 <불교성전>을 비롯한 여러 책에도 스님의 이름을 기명하는 대신 단체 이름이나 대표 번역자의 이름만 남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님은 꾸준한 번역활동을 통해 저작물이 쌓이자, 번역자인 스님의 이름을 달아 <선가귀감> <숫타니파타> 등의 책이 출간됐다. 초기 경전번역에 주력했던 법정스님은 경전을 응용해 본지의 전신이었던 <대한불교> 신문에 원고를 게재를 하기 시작한다. 그때가 1963년 4월 1일이었다. 이전에는 스님의 법명으로 된 글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몇몇 원고들은 스님의 이름이 기명되지 않고 게재됐을 수도 있다.

<대한불교>는 현재 <불교신문>의 전신으로 1960년 1월 1일자로 창간한 대한불교조계종 기관지로 초대발행인이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청담스님이었다.

발행인이었던 청담스님은 창간사에는 “우리불교는 앞으로 더욱 많은 중생에게 포교하여 모든 국민에게 영적 구원을 주고 건전한 사회건설에 공헌할 사명을 띠고 있다. 이 중차대한 사명을 완수하려면 우리 전국 승려와 신도들은 가일층 수도에 힘쓰고 포교에 매진해야 하며 여러 가지 건설적이며 실제적인 방안을 수립해야겠다. 그의 일단으로서 우리 조계종단의 기관지 대한불교를 창간한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대한불교>는 매월 4면씩 발간하는 월간지였다. 1963년 동안 게재된 원고는 총 5편으로 법정스님이 경전을 번역하면서 그 내용을 토대로 윤문하는 정도의 글들이 보인다. 글 말미에는 경전의 출처도 달아 놓았다. 글쓴이의 이름을 정확히 밝힌 설화는 경전번역에 충실하면서 그 의미를 다치지 않게 창작성을 가미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어진사슴’이었다.

“먼 옛날 인도의 간지스 강가에 사슴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벌에 나가 풀이나 뜯고 목이 마를 땐 강기슭에서 흐르는 물을 마셨다. 낮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허공중에 한가로운 흰 구름을 바라보며 눈망울을 맑히고 밤이면 숲속 나뭇가지에 걸린 별들을 세며 좀 외롭긴 하여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사슴은 아홉 가지 털빛을 띠고 있었고, 그 뿔은 이상스레 하얗다. 그리고 한 마리의 까마귀와 늘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어진사슴’은 <불설구색록경佛說九色鹿經>의 내용을 창작한 것이다. 이 경전은 팔만대장경의 한 부분으로 <육도집경(六度集經)> 제6권의 ‘녹왕장(鹿王章)’의 내용이다.

아홉 가지 털빛을 가진 어진사슴이 물에 떠내려 오는 사나이를 구해 주며 자신이 거처를 알려주지 말라고 한다. 훗날 나라의 왕비가 병이 들어 꿈속에 어진사슴의 모습을 보고 그 털로 깔개를 만들면 병이 낫을 것 같다고 하여 왕은 사슴수배령을 내리고 그 사슴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이에게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한다. 사나이가 어진사슴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왕에게 알려 어진사슴은 잡혀오게 된다.

죽음에 직면한 어진사슴은 임금에게 사나이가 은혜를 저버린 것에 대해 고하자 임금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사내를 꾸짖으며 “은혜로운 어진 사슴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며 나라 안에 영을 내리고 놓아주었다.

‘어진 사슴’ 말미에는 “그 뒤부터 많은 사슴들은 이 사슴이 있는 곳으로 모여와서 마음 놓고 살게 되었고, 온 나라 사람들도 모두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그때 아홉 가지 털빛을 가진 사슴은 부처님이 지난 성상을 보살행을 닦을 때의 몸이고 사슴을 따르던 까마귀는 부처님을 오랫동안 모신 ‘아난다’란 제자이며 은혜를 저버린 사내는 한 평생 부처님을 괴롭히던 ‘데바닷다’였다고.”라며 끝을 맺는다.

경전에 담긴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불교설화로 잘 담아내고 있다. 당시 <대한불교>은 월 1회 대판으로 발행되었던 신문으로 종이매체가 없었던 불교계와 일간신문조차 손에 꼽혔던 한국사회에서 <대한불교>의 존재감은 상당히 컸을 것으로 보인다.

법정스님이 <대한불교>와 인연을 맺은 데는 스님의 사형이었던 일초스님(고은 시인)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고은 시인은 “법정스님과 인연은 지중하다. 출가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또한 창간 당시 발행인이었던 청담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있으면서 신문을 관장했던 관계로 해인사 출신이었던 법정스님은 서울을 오가며 경전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대한불교>에 직간접적으로 참여권유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조계종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신문에는 보다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법정스님과 같은 ‘불교 엘리트스님’이 필요했고 그 일의 적격자로 법정스님이 해당됐을 것으로 본다. 송재운 전 동국대교수(불교신문 주간 및 편집국장 역임)은 “대한불교 신문에 글쓰기를 시작으로 이름을 알린 법정스님은 일간신문과 여타 매체에도 글을 쓰며 60년대 불교계를 대표하는 문필가로 명성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대한불교> 신문에 법정스님이 쓴 원고의 상당수는 1972년에 출간한 <영혼의 모음>을 비롯해 <무소유> <서 있는 사람들> 등 법정스님의 주요 저서에 담긴다. 그러고도 출간되지 않은 원고 68편이 발견돼 2019년 11월 원적에 든 지 10년 되던 해에 불교신문사에서 ‘법정스님 원적 10주기 추모집’ <낡은 옷을 벗어라>을 출간했다. 이어 2020년 5월에는 13편의 설화만을 모은 <법정스님이 남긴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를 보급용으로 출간했다.

불교신문사 측은 “법정스님은 원적에 들 때 스님의 이름으로 된 일체의 글을 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했으나 법정스님의 사상을 광범위하게 연구하기 위해 미 출간 원고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했으며 책 판매 수익금은 ‘(사)맑고 향기롭게’에 장학금과 불교포교 기금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법정스님은 <대한불교>에 기고를 하기 시작한 즈음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스님은 주로 해인사와 서울을 오가며 경전번역과 관련된 일을 했고, 차츰 <대한불교>에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총무원이 있었던 조계사와 동국대학교를 오갔다. 1964년 동국역경원이 설립되면서 한강 건너 봉은사의 한 켠 전각을 얻어 ‘다래헌(茶來軒)’으로 이름을 지어 머물며 1975년 송광사 불일암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서울살이를 했다.

그렇지만 법정스님은 항상 ‘해인사 스님’이라는 생각을 염두해 두고 ‘소소산인(笑笑山人)’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도 했으며 ‘해인사에 12년 동안 살았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60년대 중반 ‘굴신운동 필화사건’이 생길 때까지 해인사에 기거했던 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법정스님이 1963년 4월 1일 대한불교 신문에 게재한 처음 원고인 ‘어진사슴’.
법정스님이 1963년 4월 1일 대한불교 신문에 게재한 처음 원고인 ‘어진사슴’.
불교신문이 법정스님의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2019년 출간한 '낡은 옷을 벗어라' 표지.
불교신문이 법정스님의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 2019년 출간한 '낡은 옷을 벗어라' 표지.
1958년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해제하고 기념촬영한 모습. 맨 위 좌측에서 두 번째가 법정스님.
1958년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해제하고 기념촬영한 모습. 맨 위 좌측에서 두 번째가 법정스님.

취재협조 : (사)맑고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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