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는 지전이 날리고, 소리에 빠져드는 찰나…
허공에는 지전이 날리고, 소리에 빠져드는 찰나…
  • 정현숙 마하무용단장
  • 승인 2020.06.24 10:05
  • 호수 35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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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선화 마하무용단장이 그리는
‘나의 삶, 나의 불교’ ③ 천도재 인연

1년 365일을 바쁘게 살지만 특히 바쁜 달이 있다.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5월이나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많은 연말이 특히 바쁘다. 최근에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추가됐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6월6일 현충일에 불암산에서 은거하며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다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과 장기기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의인들, 경찰 등 순국선열을 기리는 천도재를 지낸다. 천도재에는 해마다 장기기증을 떠난 기증자 유가족을 비롯해 생명나눔실천본부 회원·불암사 신도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해마다 유월이 오면 사찰에서 열리는 호국영령들을 천도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공연을 한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군경,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장기기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데 동참할 수 있어 늘 영광으로 여기며 옷깃을 여민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태극기를 마음에 담아 본다. 작품 크기 60.5cm x 50.5cm.
해마다 유월이 오면 사찰에서 열리는 호국영령들을 천도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공연을 한다.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군경,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장기기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데 동참할 수 있어 늘 영광으로 여기며 옷깃을 여민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태극기를 마음에 담아 본다. 작품 크기 60.5cm x 50.5cm.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장기기증 홍보를 위해 거의 매달 큰 행사를 여는데 천도재도 그 중 하나다. 그만큼 중요하지만 천도재는 특히 마음이나 몸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공연은 대부분 축하연이 많다. 그래서 화려한 의상 화사한 미소가 공연의 주된 분위기다. 반면 천도재는 추모 성격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정반대다. 엄숙해야한다. 자연스럽게 마음가짐도 남달라진다.

긴장도도 더 높고 신경 기울일 점도 많다. 공연장에서만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와 몸가짐을 갖는 것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서서히 그 분위기에 젖어야 한다. 그래서 사적인 식사약속이나 급하지 않은 만남은 없앤다. 불필요한 외출도 하지 않는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찍는 배우가 주어진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처럼…. 

남들은 유별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덕 높으신 큰스님께서 영가를 천도하는 독경을 하고, 법문하는 가장 엄숙한 법석 한켠을 맡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는데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춤이든 소리든 글이든 모두 마음의 표현이다, 단지 그 표현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 중에서도 온 몸으로 드러내는 춤은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량을 청결하게 씻고 구천을 떠도는 영가를 불러들여 큰스님의 법력으로 천도하는 엄숙한 자리는 티끌 하나 먼지 한 점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슴 철렁한 일이 생겼다. 2017년 6월6일 생명나눔천도재 공연날이었다. 그 해도 500여명에 이르는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대웅전에는 사전 및 현장 접수를 받은 영가 448위를 모셔 분위기가 사뭇 엄숙했다. 본 행사 전 리허설로 음향과 무대 동선 체크를 완벽하게 끝내고 호흡을 고르며 공연의상으로 환복(換服)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 차례를 기다리며 마지막 매무새를 정돈했다. 경내에는 영가를 천도하는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바라춤 시연을 시작으로 천도재가 시작됐다 

눈부시게 하얀 본견 당의를 입고 신칼무구지전을 들고 구슬프고 느린 음악에 맞춰 공연을 시작했다. 날씨는 그지없이 쾌청했고 불암사 경내에 버티고 있는 단풍 나뭇잎 사이로 6월의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눈부시게 예쁜 날이었다. 그러나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슬픔이든 환희든 감정은 관객의 몫이지 공연자의 몫이 아니다.

춤꾼이 제 흥에 못 이겨 감정을 노출해버리면 관객은 감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절해서도 안된다. 관객과 함께 하되 자신을 잃지 않고 구분하되 끊어지지 않는 춤이어야 한다. 위패 앞에 선 가족들의 애절함과 슬픔에 나 역시 하나 되어 음악에 취하고 허공을 날리는 지전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음악이 끊겼다. 

공연이 시작하고 3분가량 흘렀으니 관중도 나도 분위기에 푹 빠져들 때였다. 관중이 먼저 깨어나 웅성거렸다. 그러나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 아무렇지 않은 듯 공연을 이어갔다. 8장단을 이어갈 즈음 음악이 다시 들렸다. 안도하며 춤사위에 집중했다. 관중들은 그새 산만해졌다. 다시 집중도를 높이려면 감정을 더 끌어올리고 호흡에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흩어지는 분위기를 가까스로 끌어들이고 때맞춰 풍성하게 날리는 지전이 쏟아지는 햇살 아래 음악과 하나 되는 찰나 음악이 또 뚝 끊겼다. 

이번에는 관중들의 짜증 섞인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음향을 맡은 총무 스님은 안절부절 못하고 큰스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그렇다 해도 멈출 수가 없다. 짧은 찰나에 ‘나는 프로다’, ‘계속 가자’며 최면을 걸고 마음을 다잡고 박자를 세며 마음속으로 장단을 읊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춤사위를 이어갔다. 음악이 끊겨 술렁대는 도량을 잠재우기 위해 그야말로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데 음악이 다시 흘러나오는 가 싶더니 또 끊긴다. 살아났다 끊어지기를 서너 번 더 하더니 아예 음악이 멈췄다. 

큰스님과 신도회장, 임원진, 관중들 모두 어이없는 표정이다. 그제 서야 정적이 감도는 무대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내가 보이는 듯 했다. 모두 웃었다. 나를 위로하는 웃음이다. 그러나 나는 위로 받아야하는 약자가 아니다. 음악은 단지 나를 돕는 보조 장치일 뿐이다. 햇살 속으로 멀어져가는 정신을 부여잡고 박자와 순서에 집중했다.

거짓말같이 순서 박자가 또렷해지며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신들린 듯 춤사위를 이어갔다. 음악 없는 정적만이 감도는 그 넓은 경내,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데 2분을 남겨두고 난데없이 또 음악이 들어왔다. 그런데 기적같이 나의 춤사위와 음악이 딱 맞아떨어졌다.

끝나고 알았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지 않았을 뿐 CD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집중하여 준비한대로 춤을 춘 나와 음악은 계속 함께 했던 것이다. 관중들 또한 많은 박수로 11분의 공연을 무사히 마친 나를 격려했다. 그 공연을 계기로 CD, USB, 휴대폰 음악파일 등 다양하게 준비하는 습관을 갖게 됐으니 좋은 교훈을 얻은 셈이다. 

공연이 끝나고 위패 앞에 합장하며 고개 숙여 삼배를 올렸다. 철수하지 않고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13명의 육사생도와 무명의 병사들. 우리 아들 딸 보다 어린 20대 초반의 아무 것도 모를 앳된 얼굴의 청년이다. 불암산에 은신하다 국군이 밀고 오면 합류해도 아무도 탓할 일 없었을 텐데, 장교의 사명을 다하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 장함에 고개 숙이면서도 얼마나 두려웠을까.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심정이 먼저 드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본인의 장기를 기꺼이 기증하여 새 생명을 살리고 떠난 분들에게도 오체투지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공연으로나마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기원할 수 있으니, 기회를 주신 큰스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다. 2014년도에 장기기증 희망서약서에 기쁜 마음으로 서명했고 친정, 시댁, 지인 등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동참했다. 새 생명을 나누는 희망 예약을 해놓은 셈이다. 앞으로도 장기기증자와 조국수호에 몸 바친 선열들의 의로운 죽음에 조금이나마 함께하는데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동참해 생명나눔운동이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되기를 바래본다. 

지난 현충일 천도재에서는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라는 작품으로 영가들을 위로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천도재 의미가 내 마음 안에서 점점 숙성되고 깊어짐에 따라 춤사위도 깊어지고 춤을 대하는 마음 또한 간절해짐을 느낀다.

글·그림=정현숙

[불교신문3592호/2020년6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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