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이란 자신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향기”

임인구
임인구

그대는 많은 돈을 벌려 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 했고, 대기업에 입사하려 했고, 사업을 시작하려 했고, 외제차를 구입하려 했고, 명품 가방을 매려 했고, 맛집을 찾아다니려 했고, 음악 CD를 모으려 했고, SNS 명사가 되려 했고, 인도여행을 떠나려 했고, 픽시 자전거를 타려 했고, 심리학 지식을 쌓으려 했고, 수제 맥주를 만들려 했고, 그런지 패션을 추구하려 했고, 헬스 클럽에 등록하려 했고, 수염을 기르려 했고, 맥북을 사려 했고, 단골 바를 만들려 했고, 에어프라이어를 주문하려 했고, 독립영화관에 입장하려 했고, 핀란드어를 배우려 했고, 고양이를 키우려 했다.
그대는 멋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대여, 그대가 이 모든 것을 한 이유는 멋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멋있어야 한다.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 그대가 멋있기 위해 태어난 이 세상이다.
그대는 지금 정확하게 가고 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향되어 있다. 황금의 과녁을 향해 쏘아올려진 화살이다.
그런데 그대여, 그대라는 화살은 누가 보고 있는가? 그대라는 화살이 황금의 과녁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그 영광의 순간은 대체 누가 보고 있는가?
그대의 순간을 지켜보는 시선이 없다면, 그 영광은 없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그대는 이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다.
그대가 멋있기 위해서는, 그대의 멋있는 순간을 증거하는 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대는 사람들을 찾았다. 사람들에게 그대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그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성공적으로 멋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들 갈 길이 바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그대만 지켜보며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이 떠나가면 그대도 더는 멋있게 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대는 궁리했다.
그리고는 이해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곧 그들의 욕망을 자극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그대에게 붙잡아둘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그대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양적으로 증가해가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그대 가슴 속 알 수 없는 빈 공간의 크기는 더욱 커져만 갔다. 공허했다. 지루했다. 그대가 하는 일이 어느덧 재미가 없어졌다.
그대는 이제 더는 멋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그래서 다시 그대는 많은 돈을 벌려 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 했고, 대기업에 입사하려 했고, 사업을 시작하려 했고, 외제차를 구입하려 했고, 명품 가방을 매려 했고, 맛집을 찾아다니려 했고, 음악 CD를 모으려 했고, SNS 명사가 되려 했고, 인도여행을 떠나려 했고, 픽시 자전거를 타려 했고, 심리학 지식을 쌓으려 했고, 수제 맥주를 만들려 했고, 그런지 패션을 추구하려 했고, 헬스 클럽에 등록하려 했고, 수염을 기르려 했고, 맥북을 사려 했고, 단골 바를 만들려 했고, 에어프라이어를 주문하려 했고, 독립영화관에 입장하려 했고, 핀란드어를 배우려 했고, 고양이를 키우려 했다.
그리고 그대는 이제 정말로 알았다.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던 그대 자신을, 그대가 얼마나 즐기고 있었는지를.
그대는 그대 자신을 즐기고 있었다.
예쁜 연청의 7부 데님팬츠와 파스텔 핑크빛의 반팔 티셔츠를 입고, 하얀색 미니벨로에 올라타 햇살이 반짝이는 강변을 활공하고 있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그대 자신을 그대는 보았다. 그대는 그러한 그대 자신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빈티지한 카페의 오동나무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페이스북 친구들의 성지에서 '좋아요' 순례여행을 하고 있는, 새초롬하니 귀여운 그대 자신을 그대는 보았다. 그대는 그러한 그대 자신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2시간 20분의 대장정을 마치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관에서 나와, 근처 편의점의 파라솔 밑으로 들어가 담배 한 대를 의미심장하게 입에 물며, 대체 그 영화의 내용이 무슨 의미였는지 네이버 영화평을 검색하고 있는, 대단히 깜찍한 그대 자신을 그대는 보았다. 그대는 그러한 그대 자신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 모든 그대는 정말로 멋있었다.
그 모든 황금의 순간 속에서, 그대 자신을 즐기고 있던 그대는 정말로 멋있었다.
그대여, 멋이란 것은 향기다. 자신을 즐기는 자에게서 흘러나오는 향기다.
그것이 바로 그대가 정말로 안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즐기고 있을 때, 그대는 언제나 멋있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즐기고 있을 때, 그대는 언제나 그대의 멋있음을 지켜보는 자연스러운 그대의 시선 속에 있다.
그래서, 그대가 그대 자신을 즐기고 있을 때, 그대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결코 가감될 수 없이 가장 멋있는 그대다.
그대여, 그대는 멋있어야 한다.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 그대가 멋있기 위해 태어난 이 세상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숭고미, 우아미, 비장미, 골계미는 다 그대의 멋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때문에 그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순간에서도 반드시 멋있을 수 있다. 그대는 걸어다니는 미학 교과서다.
그대는 귀엽고, 지루하고, 똑똑하고, 징그럽고, 세련되고, 추하고, 자상하고, 질척거리고, 섹시하고, 우둔하고, 자유롭고, 멍청하고, 예쁘고, 어리버리하고, 착하고, 밥맛이고, 영특하고, 우울하고, 부드럽고, 눈치없고, 용감하고, 촌스럽고, 따듯하고, 재수없고, 지혜롭고, 답답하고, 상냥하고, 한심하고, 성실하고, 비겁하고, 앙증맞고, 미련하다.
그대 자신인 그 모든 것이고, 그래서 그대는 그 모든 것을 통해 다 멋있을 수 있다.
그대여, 담배연기와 같다. 0.01mg이라도 좋다. 그대가 0.01mg이라도 지금 그대 자신인 그 어떤 것을 즐길 수 있다면, 그 순간은 황금의 순간이 된다. 그대도 모르는 새 어느덧 향기가 그대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100%가 된다. 100%로 그대는 멋있어진다.
그러한 멋진 그대에게, 그대는 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또 한 번 보고 싶어질 것이다. 자꾸만 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그칠 수 없는 시선 속에서, 그대는 더욱 멋있어지고, 향기는 짙어만 간다.
그대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고, 간질이듯 속삭여만 간다.

[불교신문3592호/2020년6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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