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대종사 원적
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대종사 원적
  • 어현경 기자
  • 승인 2020.06.23 08:13
  • 호수 359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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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6월27일 오전10시 화엄사서 종단장으로 엄수
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 불교신문 자료사진
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이자 화엄사 조실 종산대종사가 6월23일 원적에 들었다. ⓒ불교신문

조계종 6대, 7대 원로회의 의장을 지낸 화엄사 조실 혜광당(慧光堂) 종산대종사(宗山大宗師)가 6월23일 새벽5시30분 청주 보살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납 72년, 세수 97세.

분향소는 제19교구본사 화엄사 화엄원에 마련됐으며,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월27일 오전10시 화엄사 다비장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된다.

종산대종사는 1924년 10월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광주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가까운 친구가 병고로 세상을 떠나자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보다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겠다며 도광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49년 고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54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스님은 대강백 용봉스님으로부터 교학을, 전강스님으로부터 선을 배웠다. 또 동산, 경봉, 춘성, 금봉, 청담스님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1953년 전남 강진 백련사 만덕선원에서 전강스님을 모시고 안거를 성만한 이래 43여 년간 대흥사, 통도사, 해인사 등 전국 선원에서 정진했다.

동산스님을 조실로 모시던 범어사 정진 시절에는 도반 3명과 함께 용맹정진을 했다. 널빤지에 못을 박아 앞에 세워놓고 수행하던 중, 20여 일이 지나 긁히고 찔리고, 심지어 피가 군데군데 엉겨 붙어있던 도반의 이마를 봤다.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고 다른 한편으로 그 치열한 열정을 보면서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 깊게 돌아봤다고 한다.

이 세상 모든 스님들 중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한 사람이 없다’는 마음자세를 평생의 경책으로 삼았다. 스님은 마음 어딘가 깔려있던 대학 공부까지 했다는 자만심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대분심·대의정·대발심으로 일으켜 몇 번의 용맹정진과 천축사 무문관의 6년 수행 끝에 깨달음을 이루고 문이 없는 방의 벽을 걷어차고 세상으로 나왔다.

合掌以爲花(합장이위화)
身爲供養具(신위공양구)
誠心眞實相(성심진실상)
讚嘆香煙覆(찬탄향연복)

두 손 모아 합장으로써 꽃을 만들고,
청정한 몸으로 공양구를 삼나이다.
성심을 다 받치는 진실한 모습으로,
찬탄의 향기를 가득 채우겠나이다.

해인사에서 정진하던 1958년 어느 날, 조실 금봉스님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선방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금봉스님은 ‘선(禪)! 선(禪)! 어떤 것이 선이냐?’고 외치더니 염주를 들어 보였고, 스님은 ‘진심(眞心)이 선입니다’고 답했습니다. 금봉스님은 한참 선문답을 하시고 ‘보장록’을 주시면서 ‘혜광(慧光)’이라는 법호를 내렸다.

금봉스님께 법호를 받은 이후에도 스님은 일평생을 ‘여하시부모미생전 본래면목(如何是父母未生前 本來面目)’, 즉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라는 화두를 챙기며 수행정진했다. 후학들에게는 “계율을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내 허물을 보고 참회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계율은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망상을 버리고, 수행 정진해야 한다. 수행이 안 되고, 반야지(般若智)를 열지 못하면 시비(是非)가 일어난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용맹정진하면 반야의 지혜가 열리고 그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장의 불만불평이 없어질 것”이라고 가르쳤다.

한편으론 전법과 포교의 책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개심사 주지와 1988년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의장, 법제의장을 역임했으며 1990년 보살사 직지선원 조실로 주석했다. 2000년 4월 천은사 방장선원 조실, 2002년 10월 구산선문 태안사 원각선원 조실, 2012년 1월 화엄사 선등선원 조실로 추대됐다.

1997년 조계종 최고의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이 된 후 2004년 해인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품수 받았다. 또 2004년 원로회의 의장으로 선출돼 2012년까지 역임하며 종단의 위계질서를 바로 세우고 승풍을 진작시켰다. 2012년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조실로 추대됐다.

대종사는 6월23일 오전5시30분 청주 보살사 직지선원에서 임종게를 남기고, 원적에 들었다.

忽然惺時在夢中(홀연성시재몽중)
今日頓覺羞恥(금일돈각수치마)
了知柱草心印華(요지주초심인화)
不拘廉恥又欲見(불구염치우욕견)

문득 깨어보니 이번에도 잠깐 졸았구나.
부끄럽게도 왜 지금에서만 아는가!
다행히 기둥에 난 풀도 사람마음 꽃인걸 알아서
염치 없지만 또 보고 싶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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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준비중인장동오 2020-06-23 12:08:30
큰스님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