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석 달 승원이나 동굴 찾아 수행에만 전념

“선방생활과 병영생활은 피상적인 면에서 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출전을 앞둔 임전태세의 점검이 무인(武人)의 소치라면, 결제에 임하기 위한 제반준비는 선객(禪客)이 할 일이다.” 안거를 하루 앞둔 날, ‘지허’라는 법명 외에 알려진 것이 없는 한 스님이 1970년대 전후에 기록한 <선방일기>의 한 토막이다. 무장하고 출전하는 무사처럼 백척간두에 서서 견성을 향해 진일보하겠다는 스님들의 충만한 결의가 전해진다. 

여름으로 접어든 사찰마다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듯, 윤4월 보름의 하안거 결제를 맞아 제방 선원에서는 첫 입선(入禪)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한 달 연기되었다지만, 해제일인 음력7월 보름이 백중이라서 석 달의 안거를 지키자면 윤4월 보름의 결제가 맞다. 이래저래 경자년 윤4월은 오묘하기만 하다.
 

봉암사의 2019년 하안거 용상방. Ⓒ소셜커뮤니티랩
봉암사의 2019년 하안거 용상방. Ⓒ소셜커뮤니티랩

부처님 당시의 하안거

하안거는 고대 인도의 장마철과 관련해 생겨난 수행문화이다. 인도에서는 여름 몬순기에 접어들면 많은 비가 내려, 수행자들은 석 달간 승원이나 동굴 등에 머물며 수행에만 전념했다. 폭우로 인해 탁발을 나가기도 힘들 뿐더러, 우기에는 벌레들이 땅위로 나와 활동하므로 이때 바깥출입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생명을 밟아 살생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안거를 의미하는 ‘바르시카(varsika)’라는 말도 우기(雨期)라는 뜻을 지녔다. 

탁발걸식에 의지하던 수행자들이 바깥출입을 금하고 한곳에 정주하면 재가신도나 승원에서는 그들에게 수행처와 음식을 제공하게 된다. <사분율>에 부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비구들이여, 적당한 곳을 골라 미리 말하고 안거하라. 수행에 장애되는 일이 있으면 곧 떠나라. 안거를 약속하고 지키지 않거나, 안거 중 까닭 없이 떠나거나 대중화합을 깨거나 허락된 출타기간을 넘기면 법랍으로 인정하지 않느니라.” 이처럼 부처님 재세 시에도 안거로써 수행에 전념케 하고 이를 근간으로 법랍을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행자는 안거를 하려는 곳에 가서 의지할 이들에게 “이곳에서 하안거를 하고자 하니 장로(또는 시주)께서는 일심으로 생각해주시오. 나 〇〇비구는 아무 마을 아무 곳에서 석 달간 안거하겠으니 방이 파괴되었거든 고쳐주시오”라고 청하도록 했다. 자신의 소속을 밝히며 선원에 방부를 청하고, 선원에서는 수좌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양과 뒷바라지에 힘쓰는 오늘날의 승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안거를 행하고 마치는 것을 맺고 푼다는 뜻으로 새겨 각각 결제(結制)·해제(解制)라 한다. <사분율>에서는 안거를 마치면서 해야 할 일로 ‘자자를 행하고, 경계를 풀고, 경계를 맺고, 공덕의(功德衣)를 받는 것‘의 네 가지를 들었다. 자자(自恣)는 안거가 끝나는 날 수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허물을 지적해주는 참회법이다. 경계를 풀고 다시 맺음은, 안거에 모인 승가를 해산하고, 일정구역 중심의 공간적 경계로서 새 승가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공덕의는 재가자들이 해제한 스님들에게 가사를 공양하는 것으로, 용맹정진한 수행자에게 보시하는 공덕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이다. 

일상화된 수선안거 전통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남방불교에 없는 삼동결제(三冬結制)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하안거뿐만 아니라 겨울의 석 달간 결제에 드는 동안거를 말한다. 5세기에 성립된 <범망경>에 동안거 관련기록이 등장하여 일찍부터 중국·한국·일본 불교에서는 동안거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에 따르면 당송시대 여러 청규의 연중 행사기록에는 하안거에 대한 언급만 등장하여, 동안거가 정식 안거가 아닌 상태로 상당기간 지속되었을 가능성도 짐작된다. 

특히 하안거의 결제일과 해제일은 동지·설과 함께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4절(節)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선원청규>와 <칙수백장청규>에 기록된 하안거 의식을 보면, 결제일 새벽 4시에 수좌·유나·감원 등 대소 소임자들과 대중이 모두 방장실로 가서 삼배를 올리며 상견례를 나누게 된다. 날이 밝으면 법당에서 방장 스님의 결제법어와 함께 다회(茶會)·대중공양 등을 열어 정진 수행의 첫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안거의 제도화와 무관하게 여름과 겨울의 안거 철에는 스님들이 두문불출하고 수행에 힘썼다. 고려후기 태고보우스님의 법어집인 <태고화상어록>에 “도를 닦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곳이 있어서 동안거 결제를 청했다”는 대목은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해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선당(禪堂), 서쪽에 승당(僧堂)을 두는 사찰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일상화된 수선안거(修禪安居)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진 것이다. 

억불의 조선 초기에도 이러한 선풍은 끊이지 않아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21년에 신하들이 “하안거에 든 승려들에게 백성이 다투어 공양한다”며 이를 금하도록 상소를 올린 기록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세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승려도 나의 백성이라 절에서 살면서 아니 먹을 수는 없을 터, 그들이 굶주린다면 나라에서 모른 척 하겠느냐. 그러니 민중이 다투어 공양함은 해로울 것이 없다.” 수행에 힘쓰는 스님을 공경하며 공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명쾌한 답변이다. 
 

신흥사의 2016년 하안거 해제법회. ⒸBBS
신흥사의 2016년 하안거 해제법회. ⒸBBS

용과 코끼리처럼, 사자처럼 

조계총림 송광사에서는 2019년 5월 19일, 기해년의 하안거 결제에 들었다. 전날인 18일 저녁에는 큰방에서 용상방(龍象榜)을 꾸려 한 철을 나기 위한 소임을 정비했다. 용상방이란 안거에 드는 대중의 소임별 명단을 일컫는다. 용(龍)은 물속의 우두머리요, 코끼리(象)는 뭍의 수령이니 용상은 천하를 아우르는 영장의 표상이다. 이에 생전의 송광사 보성스님은 ‘생사를 벗는 일대사에 투신한 출격장부들은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용상들’이라 하였다. 

송광사의 큰방에는 ‘용상방’ 대신 ‘사자좌목(獅子座目)’이라 쓰여 있다.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후’라 하듯이, 사자는 모든 동물을 능히 조복시키는 권능과 위엄을 지녔기 때문이다. 벽의 높은 곳에는 하안거 결제에 든 대중의 사자좌목이 여법하게 걸려 있고, 사방을 돌아가며 설치된 선반에는 각자의 법명이 적힌 자리마다 발우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안거에 든 선원 큰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결제에 앞서 선객은 머물고자 하는 사찰에 허락을 얻게 되는데, 이를 ‘방부(榜附) 들인다’고 표현한다. 방부라는 말은 ‘용상방에 이름을 붙인다’는 뜻이다. 중국 선종사찰에서는 방부와 같은 말로 괘탑(掛塔)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괘탑이란 발우를 걸어놓는다는 뜻이니, 정해진 각자의 자리에 발우를 걺으로써 대중생활을 위한 자격이 주어짐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전에는 까다로운 방부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박부영 불교신문 주필에 따르면, 안거 전에 며칠간 대중생활로 근기를 시험받는 통과의례가 있는가하면, 1960년대 말 해인사 선방에서는 ‘능엄주’를 모두 염송토록 해 객실에서 급히 이를 외우는 한바탕의 소란이 일기도 했다. 송광사의 경우는 결제기간에 지킬 청규를 일러주고, 이를 어기면 퇴방 조치됨을 서약케 한다. 선원의 일반규칙과 함께 ‘승용차 불허’, ‘자유정진 불허’처럼 시류에 따라 첨가된 내용도 있다.

결제와 함께 불퇴전의 정진이 시작된다. 선방수좌들의 일과도 하루를 사분((四分)하여 정진하는 사분정근을 따른다. <선방일기>에 기록된 50여 년 전의 일과를 보면, 새벽·아침·오후·저녁에 3시간씩 벽을 항해 결가부좌하여 하루 12시간씩 좌선에 들었다. 지금도 대개 8시간의 용맹정진이 이어지니, 이는 스스로를 완성시켜가는 온전한 수행자의 시간이다.

안거의 포살과 발우공양

여름과 겨울의 결제기간이 공부철이라면, 봄과 가을의 해제기간을 산철이라 부른다. 맺은(結) 경계를 풀었으니 산철은 ‘풀고 흩어진다(散)’는 의미로 새기는 것이다. 산철에도 좌선수행의 고삐를 놓지 않고 안거에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산철결제’라 한다. 송광사의 경우 안거와 안거 사이에 산철결제를 각 45일씩 두면서 연간 9개월의 안거를 행하고 있다. 

스님들이 정진하는 안거기간에 소중한 수행의식 또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 손꼽히는 것은 포살과 발우공양이다. 수행자가 스스로의 허물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포살(布薩)은, 승단의 생명과도 같은 계율정신이 담겨 있다. 그러나 총림이나 계율을 중시하는 사찰을 제외하고 잘 지켜지지 않다가, 2008년부터 안거기간 중 1회 이상 보름·그믐에 포살법회를 열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스님들은 안거기간에 최소 1회에서 최대 6회의 포살에 참여하게 되어 청정한 율을 회복하도록 이끄는 전통이 세워졌다. 

송광사의 경우 안거의 석 달간 보름과 그믐마다 빠짐없이 포살을 행할 뿐만 아니라, 산철안거에도 포살을 두어 승보사찰로서 위상이 굳건하다. 또한 보름 간격으로 행하는 삭발을 포살 하루 전으로 배치한 점이 절묘하다.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깨끗이 잘라낸 다음, 계율에 자신을 비추어 참회하는 수행자의 자세가 참으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포살에는 방장 스님의 법문까지 따르니 안팎의 단속이 치밀하다. 

발우공양 또한 일상의 식사법이었으나 점차 안거에 행하는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발우공양을 하려면 음식을 나누는 행익(行益)이 필요하고 절차마다 게송을 염송해야 하니, 출가자의 감소와 의식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결제기간에 걸맞은 수행의식으로 결합된 것이다. 

송광사는 발우공양 또한 가장 여법하게 행하는 사찰로 이름 높다. 안거기간 동안 아침과 사시마다 큰방에 모여 발우를 펴는 것이다. 안거대중이 모두 자리를 갖춘 모습은 위의 가득한 사자좌를 펼친 듯, 선풍이 흐르는 발우공양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송광사에는 고찰답게 배롱나무가 많다. 수없는 꽃이 피고 지며 백 일을 간다 하여 ‘목백일홍’이라는 별칭을 얻은 나무이다. 특히 선원 뒤편에서 왕성하게 꽃을 피워내는 배롱나무를 보면, 안거마다 피워내는 수많은 수행자를 보는 듯 환희롭다. 
 

송광사의 2019년 하안거 결제 전날 용상방 짜는 모습.Ⓒ송광사
송광사의 2019년 하안거 결제 전날 용상방 짜는 모습. Ⓒ송광사

[불교신문3589호/2020년6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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