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당 머무름 없이 자유롭게 살라
모든 법은 본체·본래·모양 없어
나와 인식대상 인연따라 형성
실체 없으니 집착하지 말아야
금강경은 집착의 소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은 초기경전에서부터 강조해온 소멸해야 할 나와 인식 대상에 대한 집착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아와 법에 대한 집착이며, 수다원에서는 아에 대한 집착을, 사다함 이후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법에 대한 집착을 다스리게 된다. 법은 인식의 대상이고, 인식의 대상은 인연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에 자체적 성질(실체)이 없으며, 집착할 바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 진심을 담아서 가르치시려고 하는 가르침의 참된 진의(眞義), 의도는 무위의 해체된 열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공덕은 무위의 공덕일 뿐이며 일반적인 공덕은 부처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허망하기 때문이며,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덕의 무더기는 (참된 무위의)공덕의 무더기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유위의)공덕의 무더기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형성이 해체된 무위의 상태를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러한 상태에 머무르시기에, 세간의 가치인 유위의 공덕을 방편적으로 인정해 주시긴 하였지만, 본심으로는 그러한 상태에 대해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만약 어떤 이가 이 경 가운데서 4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해 설해 주었다면, 그 복덕이 3천 대천세계에 가득 찬 보물을 보시한 공덕보다 훨씬 뛰어나리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4구게는 크게 두 가지로 이해된다. 하나는 말 그대로 4구로 된 문장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인도 논리학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존재에 대한 4가지 양태의 표현을 말한다. 즉 존재는 있거나(有), 없거나(無), 있기고 없기도 하며(有無), 있지도 없지도 않은 상태(非有非無), 이 네 가지이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가장 대표적인 4구게는 바로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則見如來(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이다. ‘범소유상’은 바로 존재하는 세계의 ‘유’를 지칭하고 ‘개시허망’은 ‘무’를 말한다. ‘약견제상 비상’은 ‘유와 무’의 동시적 상태를 말하고, ‘즉견여래’는 ‘비유비무(非有非無)’를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4구게는 10장 장엄정토분의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색성향미촉법은 ‘유’, 색에 머물지 않음은 ‘무’이고, ‘응무소주 이생기심’은 ‘비유비무’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은 수행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처럼 4개의 구절에 4가지 의미를 모두 갖춘 것을 4구게라 하고, 이는 탐진치에 의해 드러난 현상적인 측면, 현상의 무상한 측면 그리고 탐진치를 소멸한 본래의 상태와 수행과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상의 가치에서 본래적 가치로 회귀하는 것을 수행자라고 한다. 본래적 가치로 회귀한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보배로 보시한 공덕이 경의 4구게를 설명한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성자들이 바로 무위의 체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강경은 불모(佛母)경이다. 금강경의 4구게가 바로 무위의 체험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시설하신 가르침은 왜 참된 가르침이 아닌가하면 가르침은 언어에 의지한 유위법이고, 참된 가르침은 무위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4구게가 의도하는 바는 무위의 해체된 상태이고, 이는 언설에 의해 닿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법은 참된 상태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된 무위의)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유위의)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모든 것(법)에 본체가 없음, 본래 없음, 모양 없음이라고 하는 해체된 측면을 강조한다. 본래 없음 이라고 하는 것은 해탈, 열반, 무위의 상태이고, 그러한 관점을 강조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무집착의 수행이란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법의 본래적인 측면이다. 이런 관점에서 금강경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실생활
에 끼치는 영향이란 고락(수), 시비(상), 호오(행)의 욕망들은 모두 형성된 유위의 법이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집착할 것 없으니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자유롭게 하여 살라는 것이다.
[불교신문3589호/2020년6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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