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가야의 깨달음
이전까지를 부르는 공식 명칭이
바로 ‘석가보살’이다.

작은 불꽃이라도 좋은 인연 만나
커지게 되면 천하를 태우고
비출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여정 위에
존재하는 보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자각해서
실천하는 참보살이 되어야만 한다

자현스님
자현스님

석가모니하면 으레 ‘부처님’이라는 존칭이 떠오르지만, 때론 ‘석가보살’이라고 불릴 때도 있는 것을 아시는지? 4월8일에 탄생해서 35세에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부처님은 엄밀하게는 부처님이 아니셨다. 그분은 왕궁에서는 왕자셨고, 출가해서는 견실하고 엄격한 수행자였다. 그럼에도 부처님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이름을 부르기도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다. 이렇게 해서 부다가야의 깨달음 이전까지를 부르는 공식 명칭이 바로 ‘석가보살’이다.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성자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석가란, 석가족의 시조인 감자왕(甘蔗王, 사탕수수왕)이 아들인 니구라가 분가해 왕국을 개창하자, 이 소식을 듣고 석가(Śākya), 즉 ‘능력 있는 자’라고 칭한 것에서 유래한다. 다음으로 모니는 <리그베다>에서는 장발의 고행자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후일 전화돼 성자나 수행자를 의미하는 말로 변모한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란, 석가족을 대표하는 최고의 수행자라는 의미가 된다.

부처님은 불타(佛陀, 붓다)의 음역인 ‘부처’에, 우리식의 존칭인 ‘님’이 결합된 말이다. 한자로 많이 사용되는 것은 불타보다는 불(佛)인데, 이는 붓다를 서역에서는 ‘붓(but)’으로 발음한 것에서 기인한다. 인도불교는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실크로드를 거치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붓’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져 중국에서 ‘불’로 정착되는 것이다.

불은 깨달은 사람인 각자(覺者)를 뜻한다. 이런 점에서 모니에 비해 더 높은 존칭이다. 즉 ‘석가모니불’이라는 말에는 중복의 양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세종대왕이라고 부를 때, 왕을 나타내는 ‘종(宗)’과 ‘대왕’이 이중 존칭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부처님은 인간으로 시작해, 깨달음을 증득해서 인류의 위대한 구원자이자 가장 완전한 진리의 체득자가 되신 분이다. 마치 대통령은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선거에 당선되면, 이분은 현재 대통령은 아니지만 차기 대통령이 확실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를 우리는 ‘당선인’이라고 특칭해서 부른다. 왜냐하면 이분은 결코 일반 국민과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석가보살 역시 이러한 당선인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다. 물론 그 당선은 대통령이 아니라 부처님이며, 그 방식도 선거가 아니라 547생에 이르는 지난한 이타행의 결과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분’에 대한 특칭인 보살을, 후일 대승불교에서 차용해 이들이 추구하는 이상인격(理想人格)의 명칭으로 일반화시키게 된다.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받들어 수행하면, 모두가 부처됨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다름 아닌 보살이다. 물론 이런 보살 중에는 최고의 인도자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또는 문수보살과 미륵보살 같은 위대한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우리 역시 작지만 대승의 당당한 보살임에 틀림없다.

작은 불꽃이라도 좋은 인연을 만나 커지게 되면 천하를 태우고 비출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여정 위에 존재하는 보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자각해서 실천하는 참 보살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모든 보살님과 석가보살이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신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587호/2020년6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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