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특집 인터뷰] 해인사 고불암 감원 심우스님

90일간 상월선원 단체 무문관
하심하고 서로 배려하며 살아
하루 14시간이상 좌복에 앉아
부처님 고행상 떠올리며 참선

지난 시간 잘못한 일 떠올라
눈물로 참회 날마다 오체투지
참다운 부처님 제자되리라…
해제 후에도 결제 때처럼 살아

고불암 감원으로 돌아온 지금
수행ㆍ포교ㆍ기도도량 이끌 터

지난 겨울 누구보다 뜨겁게 동안거를 지낸 스님들이 있다. 부처님이 설산에서 수행하셨듯 냉골 비닐천막에서 하루 한 끼 공양하며 14시간 정진하고, 씻지 않고 옷 한 벌로 지낸 상월선원 대중들이다. 특히 심우스님은 천막 안에서도 가장 추운 자리에 앉아 온 몸으로 외풍을 막았고 정통소임을 맡아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해우소를 안방처럼 말끔하게 청소했다. 출가해서 38년 동안 부처님 도량에 살면서 어느 때보다 하심하고 치열하게 정진한 지난 겨울의 수행담을 스님에게 직접 들었다.
 

천막결사를 다시 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심우스님은 “알고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90일 동안 함께 정진한 스님들과 합이 잘 맞아서 아홉 스님이 함께 한다면 또 원력을 세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천막결사를 다시 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심우스님은 “알고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90일 동안 함께 정진한 스님들과 합이 잘 맞아서 아홉 스님이 함께 한다면 또 원력을 세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봄기운이 만연한 5월4일 해인사 고불암에서 감원 심우스님을 만났다. 해제 때 붓기 가득한 얼굴로 천막을 나와 걱정을 샀던 것과 달리 스님은 건강한 모습으로 햇차를 내리고 있었다. 상월선원 정진 후 정신과 피가 맑아진 덕분에 오랫동안 복용하던 약도 끊었고, 여전히 하루 일종식을 유지하며 결사 당시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한다. 예전보다 밝고 환한 웃음이야 말로 상월선원 결제 후 달라진 스님이다. 스님은 “상월선원에서 정진하며 많은 것을 참회했다”며 “부처님 법을 공부하지 않은 것 외에 모두 헛된 일임을 깨닫고 나니 더 이상 화낼 일이 없다”고 했다.

처음 스님이 상월선원 결사에 동참한다고 했을 때 의아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스님은 옛날 호산스님(수국사 주지)과 함께 선방에서 정진한 인연으로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호산스님이 상월선원 지객 소임을 맡아서 걱정이 됐다. 초기에 탑골공원 원각사에서 풍찬노숙을 계획했을 때 노숙자들도 많고 시비 거는 사람도 많아서 고민하길래 힘이 돼주려고 함께 정진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서 말렸지만 심우스님은 호쾌하게 참여하겠다 결심하고 약속을 지켰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결사에 동참한 것이다.

“결제법회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환호 속에서 결제에 든 것은 처음이었다. 얼떨결에 밀려 천막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조건 3개월은 버텨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결제에 든 스님은 첫날부터 배려와 양보, 희생과 하심을 실천했다. 9명 결제대중 중 승납 순서대로 앉으면 심우스님 자리는 중앙이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후배 스님에게 양보하고 외풍이 가장 센 해우소 옆자리를 택했다. 다용도실과 실내온도가 3도가 차이 나는 가장 춥고 시린 자리였다. 예상은 했지만 추위와 습기로 인해 잠 못이루는 날이 많았다. 저녁에 찬바람이라도 피할까 싶어 텐트 안에서 정진을 이어갔지만, 축축함이 가시질 않았다.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면 텐트 속 물기가 얼어붙어 날선 얼음에 손끝을 베이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해우소 옆자리에 앉은 스님은 정통(淨桶)도 자처했다. 법납이 낮은 스님들이 맡는 소임을 구참인 심우스님이 맡은 것은 의외다. 90일 동안 날마다 물청소를 하고, 방선 시간마다 세면대를 물기 하나 없이 닦아내고, 자주 얼어 막히는 변기를 뚫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짜증스럽지 않았는지 묻자 “내가 자처한 일인데, 짜증내면 안 맡느니만 못하다 싶었다. 이왕 할 거면 즐기면서 하자. 해우소라는 이름처럼 스님들이 화장실에 와서 걱정을 풀어낼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다.”

사실 상월선원 스님들에게 해우소는 특별한 쉼터다. 단체 무문관에서 생활은 정진보다 더 힘들다. 무문관에서 혼자 생활하면 피곤할 때 자고, 마음대로 방귀도 뀔 수 있지만 대중과 함께 있으면 다르다. 정진할 때 공양할 때 방선시간에도 대중의 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혼자 있는 공간은 오직 해우소 뿐. “울어도 해우소에 가서 남몰래 울어야 하고, 고민할 일이 생겨도 화장실에서 고민해야 한다. 해우소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방 같은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게 시간마다 향을 피우고 물기없이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심우스님은 지난 동안거 상월선원에서 정진하며 날마다 수행일기를 작성했다.
심우스님은 지난 동안거 상월선원에서 정진하며 날마다 수행일기를 작성했다.

오랜만에 앉은 좌복 위에서 적응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 한 달은 허벅지가 떨어져나가도록 아팠고, 화두도 잘 들리지 않았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뜻밖에도 쉬는 시간이었다. 말도 할 수 없는 공간에서 한가로움은 오히려 독이었다. 정진, 포행, 운동, 절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게 없으니 차라리 24시간 빠듯하게 수행하는 게 심적으론 편안했다.

추위와 배고픔에도 끄떡없이 정진하는 다른 스님들을 보면서 심우스님은 자신만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동안 출가수행자로 살아온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나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스님은 참회했다. 아침저녁 108배하고 시간나면 시시때때로 절을 했다. 

“배에 기름덩어리가 너무 많이 붙어있는 게 부끄럽고 그동안 편하게 살아온 것 같아 뿔뚝 신심을 내어 하루에 밥 다섯 숟가락 정도만 먹고 버텼다. 화두보다 비몽사몽간에 눈앞에 맛있는 음식이 어른거릴 때는 인간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육체의 본능은 이길 수 없는 건지 한탄스럽기도 했다. 뼛속에 한기가 스며들어도, 배가 너무 고파서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부처님 고행상을 떠올리면 춥다, 배고프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심우스님은 상월선원을 있게 한 주인공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거의 한 달 넘게 같이 자고, 먹고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자승스님 덕분에 상월선원 천막결사가 성사됐지만, 여덟 스님들이 혹시 잘못되면 본인 책임이라는 생각에 부담이 컸을 것이다. 철두철미하고 한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고, 배려심이 깊어 정진 대중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결제 일주일 지나서부터 공양을 줄이다가 해제 한 달 전에는 두부 두조각, 짠지 한 쪽만 드셨다. 자승스님은 형상만으로도 충분히 모범을 보여줬다.”

열렬한 환호 속에 입방한 스님도 어깨가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중노릇 하며 선방에서 정진하고 여러 소임을 살아봐도 이렇게 부담되는 정진은 처음이었다. 한 소식 하지 않으면 죄인이 될 것 같았다. 문은 잠겨 있고 중도에 포기하면 승적을 반납하겠다는 각서까지 종단에 제출했으니 어디 도망갈 곳도 없었다. 천막법당에서 응원소리가 들릴 때마다 대한불교조계종을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해제가 가까워지면서 고민도 커졌다. 좌복에 앉아 지난 세월을 참회하면서 스님은 그동안 부처님 전에서 시간을 너무 낭비한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해제 후에도 상월선원에서처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찰수련회에 왔던 애들이 집에 가면 1주일 동안 잘 한다는데, 과연 상월선원 정진효과가 며칠이나 갈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웃음)”

우려와 달리 심우스님은 고불암에서 상월선원 만큼의 청규를 지키며 정진하고 있다. 석달동안 떠나있던 절에는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오랜 법적 분쟁 끝에 해인사 고불암 봉안당인 무량수전 소유권과 운영권이 고불암에 있음이 확인되면서, 스님은 고불암을 기도하고 포교하는 도량으로 일신하는 일에 불철주야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시 하안거 결제가 다가오면서 스님은 지난겨울 상월선원 천막결사에서 결심했던 내용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처님처럼 흉내 내어 수행했다는 자부심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참다운 부처님 제자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 하나는 이번 결제에서 얻은 것 같다. 이 마음은 해제 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해본다.”

합천=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가야산 해인사 고불암

가야산 남서쪽 줄기에 둥지를 튼 고불암(古佛庵).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본사 해인사 산내암자다. 고불암은 무명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신행공간과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실천할 복지도량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2003년 11월 해인총림 임회에서 발기됐다. 해발 950m의 마장동 부락 위쪽에 자리잡은 고불암은 천혜의 자연경관에 자연친화적인 전각불사를 통해 2004년 11월 완공됐다.

고불암이 개원했을 때 법전 전 종정예하는 “그 옛날 중국에서 설봉스님이 조주스님의 견처를 찬탄한 데서 조주고불이라는 말이 나왔고, 고불이란 ‘본래의 부처’를 말한다”며 “가야산 해인사에 조주선사의 정진력을 이어받으려는 고불암이 문을 열게 됐다”고 치하한 바 있다. 고불암 대웅전에는 청동관세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불심깊은 한 불자가 기증한 성보로 알려진 이 불상은 1200년대 고려불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329-5번지 ☏ (055)934-0127

고불암 대웅전에 모셔진 청동관세음보살좌상.
고불암 대웅전에 모셔진 청동관세음보살좌상.

“고불암 무량수전, 종단-총림 여법한 운영 재개”

1년 365일 일상기도는 물론
천도재 기제사 백중기도까지
여법한 의식으로 정성껏 모셔

조계종-해인총림 방침에 의거
무량수전 봉안당 정상적 운영

“해인사 고불암은 그간 수년에 걸친 법적 분쟁을 바로잡고, 고불암과 무랑수전의 소유권과 운영권이 오롯이 해인사와 고불암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제 해인사 고불암은 수행정진, 기도염불, 포교교화를 생명으로 여기는 사찰 본연의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고불암 감원 심우스님은 지난 4월 무량수전 운영과 관련해서 향후 합법적이고 여법한 운영을 재개하겠다고 대내외에 천명했다. 법적분쟁이 승소로 일단락됐어도, 무량수전 안팎으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심우스님은 신중하게 살피면서 종무원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있었다.

“오랜 법적 분쟁으로 일부 피해자들이 거칠게 항의하는 일이 잦지만, 잘 해결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불자들의 복덕과 극락왕생을 위해 온 정성을 기울이고 고불암이 무량수전과 함께 사찰 고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닿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불암 무량수전은 현재 허가받은 봉안당 분양은 완료됐다. 더 이상 새로운 봉안당 접수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예약이 취소되어 자리가 난 봉안당에 한해서만 안치계약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문화원’이나 ‘소개업자’를 통해 계약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이젠 오직 조계종단과 해인총림의 여법한 방침에 따라 고불암에 직접 접수를 해야만이 유효하다. 

무량수전은 앞으로 1년 365일 일상기도는 물론 천도재, 기제사, 우란분절 백중기도, 명절차례를 여법한 의식으로 정성을 다해 올릴 방침이다. 또한 고불암 무량수전에 영가를 봉안한 불자들을 대상으로 월례법회, 분기별 큰스님 초청법회, 각종 불교문화행사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법회와 행사가 있을 때는 셔틀버스도 가동한다.

심우스님은 “천년고찰 해인사의 수행정진의 힘과 기도염불의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천년을 이어져 왔듯이, 해인사 고불암의 수행정진과 기도염불이 해인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끊이지 않고 천년을 이어져 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3583호/2020년5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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