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 불자마을 부처님오신날 연등행렬 현장

사찰 인근 용호리 주민투표로
2017년 전국 최초 ‘불자마을’
‘용호리 불자마을’로 재탄생

사찰과 지역간 상생효과 기대
낙산·사천리·손양면 등지서도
연이어 ‘불자마을’ 발족시켜

매달 정기법회 성지순례 등
다채로운 신행프로그램 운영

불자주민의 신앙적 귀의처이자
삶의 든든한 후원처 역할

낙산사는 ‘낙산사 불자마을’ 4곳을 출범시킨 뒤 이들의 신행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5월26일 ‘낙산 불자마을’ 회원 50여 명이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행렬을 거행했다.
낙산사는 ‘낙산사 불자마을’ 4곳을 출범시킨 뒤 이들의 신행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5월26일 ‘낙산 불자마을’ 회원 50여 명이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행렬을 거행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4일 앞둔 526일 양양 낙산사 대형주차장 옆 낙산사거리’. 이날 오후부터 시작된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후 7시가 다가오자 낙산사 불자마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조끼 위에다가 우의를 서둘러 입고 각자 손에 든 연등(燃燈)에 불을 환하게 밝혔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동안 한 마을에서 산 인연으로 인해 우의를 입고 마스크를 착용해도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는 안부인사를 나눴다.

아이고, 오랜만이야.” “형님! 어제도 봤잖소.” “불자마을 행사에서는 지난 1월 법회 때 보고 4개월만이잖아.” “코로나19가 빨리 끝나야 자주 볼텐데요.” “코로나 사태가 끝나야만 예전처럼 신나게 장사를 하지. 오늘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해 보자고. 분명히 우리 소원을 들어주실거야.”

매달 한차례 정기법회를 봉행하던 낙산 불자마을회원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4개월만인 이날 연등행렬을 위해 다시 모였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았지만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간소하게나마 함께 연등을 밝히면서 사바세계에 부처님께서 오신 참 뜻을 되새기고, 주민들의 건강과 마을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이날 낙산 불교마을 연등축제는 예불을 시작으로 반야심경 봉독, 찬불가 보현행원제창, 낙산사 선원장 법인스님의 축원, 봉축탑 점등식, 연등행렬, 사홍서원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연등행렬은 코로나19 사태에다가 우중(雨中) 연등행렬로 열리다보니 전체 회원 140명 가운데 50여 명 밖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등행렬 제일 앞에선 낙산사 포교국장 수미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춘 석가모니불정근 소리는 마을 전체를 휘감을 만큼 힘차고 우렁찼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점등식과 연등행렬을 알아본 주민과 관광객들은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잠시 멈추고 합장 인사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담기도 했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용호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및 불자마을 현판.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용호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및 불자마을 현판.

낙산사는 20177월 전국 최초의 같은 마을에 사는 불자 주민들의 신행모임인 불자마을로서 낙산사 불자마을을 출범시켰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심화 등으로 활기를 잃어가던 양양 지역민에게 낙산사 불자마을은 새로운 종교적 귀의처이자 든든한 삶의 후원처가 되고 있다. 신도가 없어지면 사찰의 존재 의미도 사라지는 만큼 낙산사 또한 지역민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낙산 불자마을은 낙산사와 낙산해변 인근지역인 강현면 전진1·2, 주청리에 거주하는 지역 불자 140명이 동참하고 있는 새로운 불교신행단체다. ‘낙산사 불자마을은 이날 연등행렬을 거행한 낙산 불자마을을 비롯해 용호리 불자마을’ ‘사천리 불자마을’ ‘손양면 불자마을등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 낙산사 불자마을에는 총6개 마을, 400여 세대가 동참하고 있다. 인구 27000여 명 소도시에서 낙산사 신도회와 별도로 400여 세대가 동참하는 새로운 신행모임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낙산사는 매달 첫째 월요일 오후7시 경내 인월료 3층 무설전에서 용호리 불자마을, 낙산 불자마을, 사천리 불자마을 회원들을 초청해 합동 정기법회를 갖고 있다. 낙산사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손양면 불자마을은 매달 첫째 화요일 오후7시 손양면사무소 옆 복지회관에서 찾아가는 법회방식으로 정기법회를 이어가고 있다.

낙산사에서의 불자마을 합동 정기법회에는 평균적으로 80명에서 120여 명이 참가하고 있으며 손양면 정기법회에서는 60명에서 80여 명까지 참가하고 있다. 이는 낙산사 관음재일 법회 참가 인원보다 더 많을 만큼 불자마을 회원들은 정기법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낙산사 불자마을은 매달 정기법회를 봉행할 뿐만 아니라 성지순례, 단합대회, 생신잔치, 마을별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 등 다양한 신행활동을 펼치고 있다. 2회 진행하는 성지순례에는 버스 8~9대가 동원될 만큼 인기가 높다. 지난해 3월 양양실내체육관에서 낙산사 신도회와 함께 가진 단합대회는 모두가 낙산사를 중심으로 한 도반이자 이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포교국장 수미스님은 지난해 한해동안 불자마을 회원들의 생신에 맞춰 케이크를 들고 각 가정을 방문해 생신을 축하하고 축원도 올릴 만큼 열정적으로 불자마을을 지원했다. 거의 매일 생신잔치를 연 셈이다.
 

용호리 마을 주민이 세운 ‘수미탑’.
용호리 마을 주민이 세운 ‘수미탑’.

낙산사 불자마을의 출범은 2017년이지만 태동은 그보다 4년 앞선 2013년부터 시작됐다. 낙산사 인근 용호리 주민들은 2013년 낙산사와 힘을 모아 한국가스공사가 용호리 마을 입구에 설립을 추진하던 액화천연가스 정압관리소 건립을 막아냈다.

주민 동의 없이 진행됐을 뿐만 아니라 낙산사와 직선거리로 550m 떨어진 곳에 정압관리소가 들어선다면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지역 특성상 언젠가 또 다시 화마나 불의의 사고를 입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200545일 발생한 대형 산불로 낙산사는 전소되다시피 큰 피해를 입었다. 모든 언론과 방송, 세간의 이목이 낙산사에 집중됐지만 당시 낙산사 주지 금곡스님은 화마로 삶의 터전을 모두 빼앗긴 용호리 등 인근 지역민부터 챙겼다. 낙산사가 운영하고 있는 무산복지재단 산하 복지시설을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로 내놓고, 이재민 각 세대마다 상품권 등을 건네며 주민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 지원은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확대돼 시행되고 있다.

낙산사는 몇 년, 몇 십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복원할 수 있지만 화마로 다친 주민들의 마음을 외면하고 보듬어 안지 못한다면 그들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낙산사는 용호리가 2016년 주민이 주도하는 지속가능한 농촌만들기 프로젝트인 기업형 새농촌 도약마을선정에도 힘을 보탰다. 사중 행사 때마다 지역 농산물을 대량 구매하고 새로운 판로 개척에도 적극 도와줬다. 용호리 주민들은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부처님오신날과 김장철이면 낙산사를 찾아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이를 계기로 낙산사와 용호리는 상호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기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한데 이어 주민 찬반투표를 통해 20177용호리 불자마을창립까지 이르게 됐다. 용호리는 불자마을다운 면모를 갖추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워진 용호리 표지석 위에 낙산사 불교인의 마을표지판을 세웠다. 또한 용호리 관내 낙산사 유휴 토지 1100평에다가 수미탑을 중심으로 한 수미탑공원을 조성했으며,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500평 규모의 연밭도 꾸몄다.

이동근 전 용호리 이장(용호리 불자마을 회장 당연직 겸직)주민 투표과정에서 대다수 주민들이 흔쾌히 동의해 줬으며 현재까지 서로 상생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열린 ‘손양면 불자마을’의 정기법회 모습.
2019년 열린 ‘손양면 불자마을’의 정기법회 모습.

용호리 불자마을 창립 준비소식이 전해지자 전진1·2리와 주청리 주민들도 낙산 불자마을창립을 서둘렀다. 이후 사천리 불자마을에 이어 손양면 불자마을까지 잇따라 창립했다. 특히 낙산사는 상대적으로 먼 손양면 불자마을을 위해 찾아가는 법회를 이어오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낙산사를 다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늙고 거동이 불편해져 낙산사를 찾고 싶어도 참배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80, 9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낙산사는 불자마을과의 상생효과를 얻기 위한 다양한 발전방안을 모색중이다. 주민들도 경전 독송 모임을 준비하는 등 낙산사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낙산사 포교국장 수미스님은 불자마을은 사찰의 새로운 포교방편이자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사천리 불자마을’의 2019년 연등축제 모습.
‘사천리 불자마을’의 2019년 연등축제 모습.


지역 어르신 부처님처럼 모시겠다
낙산사 주지 금곡스님

금곡스님

낙산사는 양양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일 뿐만 아니라 지역복지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활발한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낙산사 주지 금곡스님은 사찰과 무산복지재단이 중심이 돼 양양군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세대를 아우러는 다양한 복지사업을 통해 사찰과 마을이 하나 되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사찰과 지역마을은 가까운 이웃일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생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지원이 아닌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낙산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역민을 위한 자비나눔은 변함없이 실천하고 있다. 낙산사는 지난 4월 양양군에 이웃돕기 성금 2000만원과 마스크 1000장을, 강원도청에 성금 2000만원과 마스크 2000장을 전달한데 이어 봉축법요식에서 어르신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성금 2000만원과 마스크 1만장을 쾌척했다. 10년 넘게 이어온 부처님오신날 맞이 경로잔치를 못한 미안함을 성금과 마스크로 대신 전한 것이다.

낙산사는 아픈 중생에게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관세음보살님처럼 끊임없이 지역민에게 손길을 내밀고 있는 관음성지다. 여기에다가 지역민을 늘 부처님처럼 모시라는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의 가르침도 사찰과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한몫 거들었다. 금곡스님은 불자마을을 보다 조직화하고 체계화 해 모범적인 사찰·지역 공동체로 가꿔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불자마을 회원이 운영하는 펜션 이용자에게 낙산사 무료 입장 혜택을 주고 농산물 판로도 확대해 나가려고 합니다. 인구가 줄고 고령자가 많아지는 만큼 불자마을 차원에서 명절 공동차례상을 차릴 수 있도록 뒷받침도 하고자 합니다. 낙산사가 주민들의 든든한 이웃이자 의지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찰과 더불어 신바람 나는 삶
이철수 낙산 불자마을 회장

이철수

낙산 불자마을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같이 신행활동을 하니 소속감과 친근감이 생겨서 좋아요. 특히 어르신들은 소외감을 덜어내고 머지않아 서방극락정토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위안도 갖게 됐다며 불자마을 활동에 대한 만족감이 높습니다.”

526일 연등행렬에서 만난 이철수(77, 사진) ‘낙산 불자마을회장은 불자마을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이 회장은 양양 토박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어릴 때에도 낙산사와 사하촌은 떼래야 땔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전진리 마을 통사서 <앞 나루>에도 낙산사와 마을과의 깊은 관계를 담아냈다.

“1948년 남북 분단 이후 북한 공산정권 때 사찰에서 쫓겨난 스님 대신 마을 주민이 낙산사에 올라가 타종과 함께 조석 예불을 올리고 전각도 유지했어요.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는 아이들은 떡을 얻어먹기 위해 절에 자주 올라갔었죠.”

이 회장은 낙산 불자마을의 발전을 위해 경전을 배우고 독송하는 신행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낙산사에서의 정기법회는 기본 활동이고, 더 나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마을회관이나 각 가정마다 돌아가며 경전을 배우고 함께 독송하는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 회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불자마을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같은 마을에서 같은 종교를 믿다보니 친밀감도 더 커져 좋습니다. 소외감과 고독감을 줄여주고 신나게 신행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큰 버팀목이 돼준 낙산사 바로 옆에 산다는 게 정말 큰 도움이자 고마운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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