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선화 마하무용단장이 그리는
‘나의 삶, 나의 불교’ ② 명선화 불명(佛名)에 담긴 인연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준 두 인연이 있으니, 한 분은 송광사 영명큰스님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나눔이다. 영명큰스님은 ‘명선화(茗禪華)’ 불명과 불자로서 살아야할 지침을 주시고 불교공부와 봉사활동이 둘이 아니라는 큰 뜻을 가르쳐 주셨다. 생명나눔 활동은 음악을 하는 주권기 씨가 다리를 놓아 현지스님을 만나고 광주생명나눔실천본부와 인연이 닿았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해준 신행선원 영명(靈明)큰스님은 시숙(媤叔) 어른이다. 결혼 전부터 남편으로부터 바로 위 형님 중에 송광사로 출가하시어 아주 덕 높고 수행이 출중한 스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축제(수채화 91cm×72.7cm)’. 순천 신행선원 영명스님은 시숙 어른으로, 명선화 법명을 주시고 올바른 불자로서 길을 안내해주시는 선지식이다. ‘수행과 봉사가 하나’라는 큰스님 가르침처럼 지혜와 자비를 보여주는 연꽃을 닮고자 늘 노력한다.
‘축제(수채화 91cm×72.7cm)’. 순천 신행선원 영명스님은 시숙 어른으로, 명선화 법명을 주시고 올바른 불자로서 길을 안내해주시는 선지식이다. ‘수행과 봉사가 하나’라는 큰스님 가르침처럼 지혜와 자비를 보여주는 연꽃을 닮고자 늘 노력한다. 

친정어머니께서 독실한 신자이고 여수 돌산 작은 사찰에 적을 둔, 가족 모두가 불자여서, 시댁에 고명한 스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주 기뻤다. 영명스님은 법정스님과 오랫동안 함께 수행했다. 법정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명스님과 어쩜 그렇게 닮았나 놀란다. 같은 송광사 문중인데다 두 분 모두 부처님 가르침에 철저하고 원칙을 지키는 진짜 스님이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영명스님은 도반이지만 법정스님을 스승으로 여기며 모셨다고 한다. 틈만 나면 불일암 처소에 가셔서 ‘화엄경합론’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송광사에서 보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래 영명스님은 단 한 차례도 소임을 맡지 않고 오직 참선에만 정진했다. 나는 모든 스님들이 영명스님 같은 줄 알았다. 참선 수행 외에 포교하고 사회활동을 하거나 사찰음식 음악 등 문화, 또 절을 지키고 가꾸며 행정을 보는 스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참선 수행 못지않게 복지 문화 분야도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훌륭한 방편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사 일에 벗어나 오직 참선 수행하며 늘 밝고 맑고 환한 얼굴로 맞아주시는 영명스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스님께서 참선만 하는 선사(禪師)인 줄 만 알았는데 일찍부터 수행과 봉사가 둘이 아니라는 도리를 깨치고 신행회(信行會)라는 불자 모임을 만들어 사회봉사 활동도 펼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고 존경심이 더 깊어졌다. 내가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영명스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수행과 신행이 둘이 아니라는 스님의 평소 사상이 결집된 곳이 순천의 신행선원이다. 순천 월등면 문유산 기슭에 자리한 신행선원은 원래 폐교였던 것을 스님이 인수하여 정재(淨財)를 들여 법당과 선원을 차렸다. 스님이 신행회라는 불자 모임을 만들어 사회봉사 활동을 펼친 지는 40년이 됐다. 이제 10년가량 되는 나의 봉사활동은 비교조차 안된다. 더군다나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불교가 사회복지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라고 하니 스님의 깨인 안목과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스님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니 1980년대에 전남대학교 불교 학생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30~40명이 모여 매달 나환자촌 양로원 고아원 소년원 등 불우 시설을 찾아 여러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신행회를 만들고 봉사활동을 펼친 것도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계기가 되었다니 새삼 두 분 인연이 놀랍다. 무엇보다 영명스님을 통해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올곧게 전해지는 것이 기쁘다. 

개인적 관계를 떠나 이처럼 훌륭한 영명스님께서 불명 ‘명선화’를 주셔서 정말 환희심 나고 스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서는 안되겠다고 늘 마음을 다지고 옷깃을 여민다. 스님께서는 지난 2014년 4월26일 날짜가 선명하게 적힌 봉투에 불명과 그 뜻을 담아 주셨다. 편지지에 자필로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 풀어주신 글에서 저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읽어 눈물 나게 감동을 받았다. 정말 내 생애 가장 값진 선물이었으며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영명스님이 지어주신 불명 명선화(茗禪華). ⓒ정현숙
영명스님이 지어주신 불명 명선화(茗禪華).

불명에 담긴 뜻을 스님께서는 이렇게 적어 주셨다. 

“차와 선은 생활 속의 지혜 
있는 그대로 참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라
차 마시며 선정에 들면
광음천의 신들도 부러워하리라” 

올곧은 기개와 성품을 지닌 진정한 수행자를 만난 복을 누리게 된 것을 늘 감사하고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한다. 큰스님을 뵌 지는 오래 됐는데 ‘생명나눔’ 일을 시작하고서야 불명을 주신 것은 아마 그 전에는 내가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서 여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봉사와 수행이 하나임을 전하는 큰스님 가르침에서 보면 그 전의 나는 가정과 자식만 챙기는 평범한 가정주부여서 불명을 받았어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가르침대로 실천하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영명스님의 수행과 신행 일체관이 생명나눔 봉사활동 인연으로 맺어졌다. 그 전환점에 또 한 분의 스님과 재가자들이 있었다. 

2012년 나는 광주시립도서관 앞에서 아주 작은 카페를 운영했다. 어느 지역이나 그렇듯 시립 공공기관 앞에는 맛집들이 즐비하고 상권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카페를 오픈 할 때쯤에는 도서관이 개관하지 30년이 지난 시점이라 이용하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어 도서관 앞 가게들은 이익은 꿈도 꾸지 못하고 겨우 버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커피향기 가득한 예쁜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이 곳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돈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출근하면 음악을 틀고, 청소하며 커피 향으로 채우는 나날이 너무 좋고 행복하고 신바람 났다. 그곳은 일터가 아니라 놀이터였다.

놀이터를 행복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재료를 아끼지 않고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됐다. 샌드위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쿠폰도 컴퓨터로 인쇄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정성을 다해 색칠한, 그림같이 예쁜 쿠폰을 받아든 손님들은 즐거워 했다. 

그렇듯 매일매일 내가 즐겁다 보니 손님들도 좋아했고 즐거움은 작은 카페 공간을 넘어 적막이 흐르던 도서관 주변 거리까지 흘러넘쳤다. 적막이 흐르던 도서관 앞 거리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임대 글씨가 붙어있던 빈 상가도 하나둘씩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글ㆍ그림=정현숙

[불교신문3586호/2020년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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