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걱정을 끼쳐가며
제 신앙을 고집하는 이들보다
국민과 함께 하면서
요란스럽지 않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불자들이 훨씬
성숙하고 행복하게 보였다
그래서 5월30일 부처님오신날은
코로나19 때문에
연기 된 것이 아니라 두 번 맞는
행복한 부처님오신날이다

정운스님
정운스님

사람이 멈추니 자연이 제자리로 돌아 왔다. 하늘이 파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동물은 사람이 사라진 거리를 활보한다는 해외 발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나도 그 하늘을 마음껏 바라보았다. ‘멈춤’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참으로 맑다. 그 맑음 속으로 내비치는 따가운 햇살도 기분 좋다. 오랜만에 뜰에서 두 팔을 벌리고 심호흡을 해본다. 미세먼지가 섞인 공기마저 신선하고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하다.

자연과 달리 인간은 힘든가 보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우성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외국은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한국은 황금연휴에 관광지가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얼마 전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전 미국 국무부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코로나19 팬데믹, 세계질서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기고를 했다. 키신저는 “팬데믹은 번영이 글로벌 무역과 사람들을 교류에 의존하는 시대에 장벽이 있는 도시를 부활시키는 시대착오적인 현상을 촉발시켰다”,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들이 깨달은 가치를 옹호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촉발시킨 정치적, 경제적 격동은 몇 세대에 걸쳐 지속될 수 있다며 코로나19의 후유증이 장기화 될 것임을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면문화가 사라지고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심화될지 모른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통해 사람간의 정이 싹트고 함께 살아갈 힘을 얻는데 바이러스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니 공동체와 같은 전통을 지키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정, 교류는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희망도 보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부처님오신날을 윤사월로 한 달 연기했는데 우려했던 것과 달리 불자님들은 전과 다름없이 연등을 달고 부처님께 전하는 소원을 담았다.

세원사는 종단에서 지침이 내려오자 바로 모든 불자님께 공문을 발송해 연기 소식을 전하고 공문을 접하지 못해 썰렁한 도량을 마주 할까봐 몇 차례 SNS으로 소식도 전했다. 그래서인지 당일 날 몇 분만 기도 입재에 참석했다. 그렇게 조촐한 기도가 열렸다.

연등비는 대다수가 사찰에 직접 오지 않고 계좌이체로 보내왔다. 막히고 닫혔던 시간이 많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텐데도 불자임을 잊지 않고 등불을 밝혀 달라고 계좌 번호를 물어 올 때 정말 가슴이 찡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내 살림 단속이 우선인데도 부처님께 올리는 등을 잊지 않는 모습에 감동했다. 불자님들의 정성은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연등’에 스며있는 마음의 무게를 생각하고 뭇 생명들을 바르게 행복의 길로 인도하면서 중노릇 잘 하는지 반문하는 기회도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 신천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정부와 방역당국의 지침을 저버리고 주일 예배를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론과 국민들을 비난했지만 종교인 입장에서는 신기하게 보였다.

우리 불자님들은 절에 오지 말라고 하면 정말 잘 지키고 안부 전화조차 않는데 저 사람들은 왜 저토록 교회를 가고 예배를 보는데 목숨을 걸까? 의문을 가졌다. 어쨌든 강한 신심이 부러웠고 그간의 포교를 되돌아보았다. 국민들 건강보다 우선하는 종교 활동은 없지만 단 한 번의 결석도 안타까워하는 신심만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부처님오신날 등을 다는 불자님들을 보면서 그런 마음을 지웠다. 우리도 금강석처럼 굳은 신심을 갖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걱정을 끼쳐가며 제 신앙을 고집하는 이들보다 국민과 함께 하면서 요란스럽지 않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불자들이 훨씬 성숙하고 행복하게 보였다.

그래서 5월30일 부처님오신날은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연기 된 것이 아니라 두 번 맞는 행복한 부처님오신날이다.

[불교신문3586호/2020년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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