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4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인터뷰 / 장애 딛고 첫 시집 발표한 이경남 시인


보리수아래 신규 사업으로 시집 <미안 인생아> 발간
30년전 처음으로 쓴 씨 새벽산사 등 50여 편 수록
작년 늦깎이 대학 국문과 변화 필요해 새로운 도전

“지나친 관심과 도움은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부담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길”

장애를 극복하고 육십 평생 첫 시집 <미안 인생아>를 발표한 이경남 시인은 “농담처럼 죽기 전에 책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집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쓰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시는 언제나 친구 같았다. 늘 그의 곁에 있었다. 틈날 때마다 낙서하듯 시를 적었다. 장애는 시를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불편한 몸이지만 시를 쓰는 순간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한 편, 두 편 시간이 날 때마다 쓰다 보니 어느덧 시가 제법 쌓였다.

그렇게 육십 평생을 살아오며 처음 시집이라는 걸 발표하게 됐다. 장애를 극복하고 첫 시집 <미안 인생아>를 발표한 이경남 시인 이야기다. 4월24일 서울 조계사에서 이경남(63세, 법명 지족) 시인을 만났다.

“특별히 시라고 생각하고 쓴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밖에 있는 시간보다 안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자연히 글을 쓰게 되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어떤 것은 그저 넋두리가 되고, 또 어떤 것은 마음에 드는 글이 되고 그랬죠.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리다 보니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인이 아닌 시인이 되었죠. 전에는 감히 책을 내겠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35년 도반인 최명숙 보리수아래 회장의 도움으로 시집을 발표하게 됐습니다. 저를 위해 마음을 써줘 고맙습니다. 농담처럼 죽기 전에 책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집을 발표하게 돼 기쁩니다.”

이경남 시인의 시집 <미안 인생아>는 장애불자들의 모임 보리수아래가 2020년 신규 사업으로 감성시집 발간을 추진한 결과물이다. 보리수아래는 불교와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애불자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감성시집 발간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렇게 이경남 시인이 평생을 써 온 시들이 지난 2월 시집으로 발간돼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시집에는 이경남 시인의 인생이 진솔하게 담긴 시 50여 편이 수록됐다. 이경남 시인은 “아버지께서 2월 달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돌아가고 3일 만에 시집이 나왔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책을 보여드렸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시집이 나오자마자 아버지 납골당을 찾아 한 권 넣어드렸다. 아버지께서 가시면서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에 내겐 더욱 애착이 가는 시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집이 발표되고 나서 혹시 사람들한테 망신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다행히 ‘시가 참 좋다’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시가 무겁고 어둡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내가 볼 때도 시가 무겁고 어두운 면이 있다”는 이경남 시인은 “글이라는 건 거짓말로 쓸 수 없다. 나의 아픔도 나의 인생이다. 삶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다 보니 시가 무겁고 어두워졌다”고 말했다.

‘안개는 발아래 물결을 만들고/ 지나는 바람 풍경을 흔들어/ 산사의 새벽을 가른다// 촛불 심지 높이 돋우고/ 향 하나 깊이 심는다// 흔들리는 육신의 온 아픔을 접으며 삼귀의 염한다/ 저기 비어있는 듯 고요히 앉아 계신 분은 누구이며/ 여기 고개 떨군 저는 누구입니까// 모두 놓으라는 님의 말씀에도/ 접은 손 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무엇입니까// 피어나는 향내는 법당 안 가득하고/ 스치는 바람에 풍경 소리만 은은하다(이경남 시인의 시, 새벽산사)’

50여 편의 시 가운데 이경남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새벽산사’. 30여 년 전, 그가 경기도 용인 백암에 위치한 오도선원에 머물며 느낀 소회를 담은 시이자 그가 처음으로 쓴 시다.
 

이경남 시인의 첫 시집 ‘미안 인생아’.

“원로의원을 지낸 성수스님께서 창건한 오도선원에서 1년 동안 머물면서 불교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절에서는 아침 공양을 일찍 먹는데 공양하러 가는 길에 안개가 짙게 깔린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였습니다. 안개 낀 사찰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풍경소리도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 기분을 담은 시가 바로 ‘새벽산사’입니다. 그 시가 가장 마음에 드는 시입니다.”

독실한 불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경남 시인은 오도선원에 머무는 동안 제대로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불교가 좋다는 인식만 갖고 있었는데 오도선원에서 스님들로부터 법문도 듣고 <초발심자경문>도 공부하며 불심을 키웠다. 욕심을 버리고 매사에 만족할 줄 알라는 뜻의 ‘지족(知足)’이라는 법명도 오도선원에서 받았다.

불교는 인생의 힘든 순간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회장과 의기투합해 2005년 장애불자 모임 보리수아래 창립에 힘을 보탰다. 이후 현재까지 보리수아래 사무국장을 맡으며 장애인식 개선과 회원들의 사회 참여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이경남 시인은 “보리수아래 회원들과 함께 봉화 청량사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108배를 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며 “보리수아래가 만들어지고 장애인 포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불교계 내 장애인식 개선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 히말라야 칼라파트라 등정 이후 국제장애인트레킹협회 창립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하지만 함께 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며 협회 활동도 빛을 보지 못했다. 당시 힘들었던 시기 이경남 시인은 시 ‘친구여 그냥 걷자’를 쓰며 힘든 순간을 이겨냈다.

“2008년 우연한 기회에 히말라야 칼라파트라에 간 적이 있습니다. 트레킹을 해 보니 걷는 것이 장애인들의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국제장애인트레킹협회 창립에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함께 협회 활동을 했던 동갑내기 친구가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협회 활동도 빛을 보지 못하고 지금은 이름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경남 시인은 2019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갈수록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경남 시인은 “전에는 걷는 것에 문제가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힘도 약해지고 걷는 것에도 자신이 없어졌다”며 “매사에 자꾸만 뒤로 물러서게 되고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통대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집에서 공부하다보니 잡념도 생기지 않고 좋다”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계속해서 시를 쓰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 많은 분들이 용기도 주고 응원도 해주셔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길 바란다”며 불자들을 위한 당부도 덧붙였다.

“장애인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고 같은 불자로 바라봐주시길 바랍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대하는 일이 많습니다. 지나친 관심이나 원하지 않는 도움은 장애인들에게 오히려 부담이 됩니다. 부담을 느끼게 되면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우리사회가 힘든 상황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평소에 당연하다고 느꼈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불교신문3586호/2020년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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