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상 원광대 교수 ‘선학’ 55호 논문서 지적

‘佛法의 정의’ 지키는데 실패
‘참선변도’로 ‘전투삼매’ 억지
다수 일본 불교 지도자 주장
임제종 승려 이치카와 반대

원영상 교수
원영상 원광대 교수

“근대에 선(禪)은 무사도와 연결되어 일본의 혼[和婚]이라는 정신으로 무장되었다. 중생구제의 보살정신이 아닌 오직 일군(一君)과 국가를 향한 것이다. 근대적 왕법위본(王法爲本)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화 시기 제국주의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일본 선종의 태도를 비판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원영상 원광대 교수는 한국선학회(회장 김방룡)가 펴낸 <선학(禪學)> 제55호에 게재한 ‘근대 일본선종과 군국주의’에서 제국주의 팽창에 동조 내지 지지한 일본선종의 한계를 지적했다.

‘전쟁선(禪) 사상을 중심으로’란 부제의 이 논문에서 원영상 교수는 “대다수의 근대 일본불교 지도자들은 성속(聖俗)의 경계선에서 자신들이 돌보아야할 중생을 지키는 불법(佛法)의 정의를 지키는데 실패했다”면서 “전쟁에서만 쓰이는 살인검에 선의 활인검이 잘못 사용된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쟁선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조동종과 임제종에서 수행한 하라다소카쿠(原田祖岳, 1871-1961)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5년에 출판한 <참선의 계제(階梯)>에서 “모든 삶은 전쟁으로, 이 투쟁의 삶 속에서도 불법의 이해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1943년에는 “1억 국민은 모두 국가와 동생동사(同生同死)의 각오를 필요로 한다”면서 “서로 참선변도(參禪弁道)에 정진하여 전투의 삼매, 왕삼매(王三昧)에 매진 노력하자”고 선동했다. 그의 이러한 입장에 다수의 제자들이 군국주의에 빠졌다.
 

선학 제55호 표지.

이밖에도 1883년 정토진종 오오타니파(大谷派) 기관지 <개도신문(開導新聞)>에 일상다생(一殺多生)을 통해 전쟁을 긍정한 혼다료예(本多良慧, 생몰미상)를 비롯해 오오스가 슈도(大須賀秀道, 1876-1962), 이노우에 닛쇼(井上日昭, 1886-1967), 아키노코도(秋野孝道, 1858-1934) 등 근대 일본 불교 지도자들의 전쟁과 살상의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하지만 군국주의에 반대한 일본 승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임제종 승려이면서 학자인 이치카와 하쿠겐(市川白弦, 1902~1986)은 1970년에 펴낸 <불교자의 전쟁책임>을 통해 선종의 전쟁 참여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반성을 촉구했다.

원영상 원광대 교수는 “일왕을 정점으로 한 근대봉건주의와 조직적 교단주의로 일본 선종이 국체론(國體論)을 지지하여 근대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면서 “관념적 선으로 자아의 초월에만 매몰되어 현실윤리를 부정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수를 살린다는 논리로 전쟁을 긍정하여 불교의 전통인 불상생계를 무너트려 불교 자체를 부정했다”면서 “이처럼 일본 선종의 윤리는 근대국가체제 내에서 파탄난 것으로 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선학> 55호에는 △<법화영험전> 판본의 서지적 특징 고찰(퇴휴스님) △고려 묘지명을 통해 본 불교 신앙의례(정각스님) △조선 후기 완주 화암사의 불화 연구(신광희) △음악명상과 심리치유 공명을 중심으로(김나래) △백운경한의 선사상(정도스님)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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