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서 ‘불교사전’ 편찬불사 참여… 경전도 번역

인환스님과 함께 운허스님 도와
최초의 우리말 ‘불교사전’ 편찬

1963년에는 ‘우리말 팔만대장경’
‘편찬위원’ 참여…경전번역 나서
‘대한불교’신문에도 투고 ‘시작’

한글로 된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사전이었던 <불교사전>은 1961년 운허스님의 진두지휘 아래 만들어졌다. 법정스님은 그 장대한 불사에 일원으로 참석한다. 1959년 비구계를 받은 이듬해에 부름을 받았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법정스님은 출가 후 해인사에서 공부하면서 이미 경전번역에 대한 실력을 두루 인정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961년 출간된 <불교사전>의 서문에서 당대의 불교학자로 거목이었던 퇴경 권상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법정스님이 운허스님의 부름을 받아 1960년 ‘불교사전’ 편찬사업에 몰두했던 통도사 원통방 전경.
법정스님이 운허스님의 부름을 받아 1960년 ‘불교사전’ 편찬사업에 몰두했던 통도사 원통방 전경.

“시대의 변천은 급속도로 빠르고 인류의 할 일은 무진장으로 많기 때문에, 모든 요구가 더욱 긴급하여서 삼대겁(三大劫)의 수행을 언제 기다리랴? 입지(立地)에서 성불하고 싶으며, 팔만법장(八萬法藏)을 언제 보느냐? 일언(一言)에 돈오(頓悟)하기를 바라고, 십만 억 국토를 어떻게 가느냐? 일념에 횡초(橫超)하려는 것이 무리한 것이 아니다. 불교는 원래 인도의 말로 된 것을 지나(支那, 중국)의 글로 번역한 것이라 표음문자(表音文字)가 육서(六書)로 변하는 바람에 한번 어려워지고, 우리는 다시 어려운 한문을 거쳐 원어인 범어를 알게 되니, 글이 어렵고 말이 어렵고 뜻이 깊어서 이중 삼중으로 난관을 거듭하면서 좀처럼 돌파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중략)…

오늘날 우리의 할 일은 오직 과거 불교에서 고수하던 존엄성을 포기하고 비밀경(秘密境)을 개방하여 시대와 보조가 맞고 대중과 호흡이 통하여서 광활한 법해(法海)에 아무나 유희(遊戱)하고 청정한 불지(佛地)에 아무나 통행하게 하여서 어려운 경전과 도리를 통속적으로 쉽게 풀어서 일반이 보면 직각적으로 알게 하자는 것이 오랜 숙원이며 부르짖음이었다. 이것이 우리 교도들의 공통한 지원이지마는 이에 대하여 특별히 노바심(老婆心)이 간절하고 실천으로 옮긴 이는 오직 이 운허(耘虛) 스님이다.”

이어 총무원장이었던 청담스님도 서문에서 “이번에 운허스님께서 만드신 이 <불교사전>은 그 대장경을 보는 돋보기인 것이다 환히 잘 보이기도 하지만, 잘 알아지기도 하는 ‘돋보기’이다. 참 좋은 ‘돋보기’로다. 운허스님 복혜 구족하소서, 또한 온 법계 중생으로 더불어”라고 밝히고 있다. 

이미 앞에서 밝힌 바 있지만 법정스님은 자신의 저서 <버리고 떠나기>의 ‘아직 끝나지 않은 출가(出家)’에서 “통도사에 계신 운허(耘虛)스님에게서 한 통의 서찰이 왔다. 자금을 댈 시주가 나타나 숙원사업이던 <불교사전>을 만들까 하는데 통도사에 와서 편찬 일을 도와 줄 수 없겠느냐는 사연이었다. 기꺼이 동참했다. 60년 초봄부터 이듬해 여름 사전이 출간될 때까지 편찬 일을 거들었다. 이 기간에 4·19와 5·16을 겪었다. 이때 운허스님과 맺은 인연으로 해서 원고지 칸을 메우는 업이 지속되었다”고 술회했다.

운허스님의 부름을 받아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불사에 나섰던 법정스님은 출가 후 처음 세상소식을 접하게 되고 관심도 가지게 된다. 양산 통도사 원통방(圓通房)에서 <불교사전> 편찬 일을 거들기 시작하면서 법정스님은 신문을 보고 라디오 뉴스를 들었으며 움직이는 세상과 접했다. 1961년 4월 <불교사전>이 편찬되어 세상에 나오자 편찬자인 운허스님은 ‘일러두는 말’ 끝 21번 항에 감사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담아냈다.

“이 책을 출판하기로 한 작년 3월부터 오늘까지 1년이 넘는 동안에 하루같이 꾸준히 도와 준 인환, 법정, 정묵 세 스님과 한 때 한 때씩 수고하여 준 철정, 법안, 관일, 명철 네 스님과, 편찬하고 출판하는데 물심양면으로 협조하고 성원하여 주신 축산, 자운, 벽안, 월하, 석주, 이 불화 여러분과, 이 책 간행에 큰 힘이 되어 준 석 보명일 님과 간행의 동기를 만들어 준 월운스님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왼쪽부터 1961년에 출간된 최초의 우리말 불교사전인 ‘불교사전’. 1963년에 출간된 경전모음집인 ‘우리말 팔만대장경’(가운데). ‘우리말 팔만대장경’ 편찬위원 명단. 법정스님이 중간에 있다.
왼쪽부터 1961년에 출간된 최초의 우리말 불교사전인 ‘불교사전’. 1963년에 출간된 경전모음집인 ‘우리말 팔만대장경’(가운데). ‘우리말 팔만대장경’ 편찬위원 명단. 법정스님이 중간에 있다.

처음 <불교사전>은 법보원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주소가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40번지인 선학원이었다. 당시 석주스님이 선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전남에서 큰 사업을 했던 불자 부부인 이수광과 오 보명일보살이 시주금 500만환을 시주해 출판사를 선학원에 세웠다고 했다. <불교사전> 출판을 위해 법정스님은 통도사에서 1년을 꼬박 보낸 후 서울에 위치한 선학원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법정스님은 5·16 군사쿠데타의 피해를 입는 스님을 목격하기도 했다. 

출판사 법보원은 동국역경원 설립의 모태(母胎)가 됐다. 1964년 동국대학교에 동국역경원이 설립되고 운허스님이 역경원장, 석주스님이 역경부장에 취임한다. 석주스님이 살림살이를 맡게 되자 <불교사전> 판권을 동국역경원으로 넘긴다. 

이미 출가 전 6·25 전쟁의 참화를 눈으로 보았던 스님은 이념갈등에 회의를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제3지대를 택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인사에서 황산덕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한국 정치상황의 암울함을 간접적으로 느꼈고 <사상계>를 읽으며 조금씩 진보적인 정치관을 가진 듯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소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졌던 스님은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을 하며 세간의 정치상황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4·19도 맞이한다. 그러면서 “종교의 역사의식에 대해서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세상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법정스님은 서울과 해인사를 오가며 원고지 메우는 글쓰기와 깊은 인연을 맺는다. 그 대표적인 불사가 <우리말 八萬大藏經> 편찬사업이었다. 1963년 법통사에서 발간한 이 불서(佛書)는 1960년대 초 출재가자가 총 망라되어 불교에 대한 지적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성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한 뒤 한역대장경에서 교리와 사상적으로 중요한 문구를 뽑아 적절한 우리말 번역어를 찾아 만든 독창적인 경전모음집이었다. 

이 중차대한 불사에 법정스님은 24명의 편찬위원으로 구성된 ‘우리말 팔만대장경 편찬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직함이 “해인사 한직(閑職)”이다. 해인사에 적(籍)을 두고 서울을 오간 법정스님은 해인사에서도 특별 아닌 특별대우(?)를 받은 듯하다. 해인사에서 오랫동안 자운스님을 시봉했던 전 포교원장 혜총스님은 “법정스님이 해인사에 머물 때는 외부활동이 많아 대중생활을 함께 못할 때가 많았지만 해인사 주지였던 자운스님은 ‘종단을 위해 큰 일을 할 스님’이라며 상당히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1964년 동국역경원이 설립되고 그곳에 법정스님은 직함을 가지지 않았지만 직간접적으로 역경사업에 동참한다. <숫타니파타> 등 경전 번역이 그것이다. 1967년부터는 편찬부장을 맡으며 대외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이미 그 이전에 법정스님은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大韓佛敎)> 신문과도 인연을 맺는다. 대한불교는 현재 불교신문의 전신으로 1960년 1월1일자로 창간한 대한불교조계종 기관지로 초대발행인이 당시 총무원장 청담스님이었다. 청담스님은 법정스님이 해인사에 있었을 때 주지소임을 맡고 있기도 했다. 여기에 스님의 사형이었던 일초스님(고은시인)이 불교신문에 관여를 하고 있었고, 글쓰기와 관련된 교류가 적잖이 있었다. 그러한 흔적은 1963년부터 <대한불교> 신문에 보이기 시작한다. 
 

통도사 원통방 현판.
통도사 원통방 현판.

해인사 · 통도사=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취재협조 : (사)맑고 향기롭게

[불교신문3585호/2020년5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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