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정권·사회와 불교
관계 구체화한 ‘연구서’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

“고려와 거란 불교교류
이해하는 좋은 참고서”

거란 불교사 연구

후지와라 타카토 지음 / 박영은 외 3인 옮김 / 씨아이알
후지와라 타카토 지음 / 박영은 외 3인 옮김 / 씨아이알

중국 요나라로 알려져 있는 거란은 916년에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건국해 1125년까지 존속했던, 중국 북방의 유목 민족인 거란족이 세운 왕조이다. 발해를 멸망시키고, 후진(後晉)의 건국을 도운 대가로 연운(燕雲) 16주를 획득한 후 발해 및 북중국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며 성장해나갔다.

거란에서는 황제 주도하에 대장경을 새롭게 판각했고, 불교 교학에 밝은 고승들이 많았다. 거란불교를 대표하는 불탑인 조양북탑 등 탑과 사찰 불사가 이어졌고, 일반인들도 보살계를 수지하는 등 전 계층에 걸쳐 불교가 성행했다.

근래 발굴된 거란 고분의 벽화와 유물들을 통해 거란인들이 화려한 불교문화를 영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란의 불교사 및 불교문화에 대한 이해는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10~12세기의 고려는 송과 거란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줄타기 외교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고려와 거란은 사신 왕래를 통해 대장경을 비롯하여 불교 서적 및 문화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양국의 문물 및 사상 교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불교문화의 교류에 대한 연구 성과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또 국내에 거란 관련 자료나 외국에서의 연구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및 북아시아 불교사를 연구하고 있는 후지와라 타카토 일본 류코쿠대 문학부 준교수의 학술서 <거란 불교사 연구>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저자는 문헌 자료 외에도 근래 중국에서 발견된 유물 및 전적 자료들을 활용해 거란 불교의 특징과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거란에서 불교가 가장 왕성했던 성종에서 도종에 이르기까지 거란 정권과 불교의 관계를 상세하게 서술했다.

특히 계절별로 거주지를 옮기며 유영하는 유목 전통인 ‘날발(捺鉢)’이 거란 불교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명이 매우 흥미롭다. 나아가 보살계신앙, 밀교신앙 등 거란에서 성행한 불교신앙의 모습을 탐구했다.
 

거란불교를 대표하는 불탑인 조양북탑.
거란불교를 대표하는 불탑인 조양북탑.

저자는 “박사논문을 기본으로 그 후 몇 가지를 수정 보완해 출판한 책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출판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유라시아 동방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광역세계에 유통됐던 불교라는 정신문화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일본에서도 이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불교사 연구가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화 본토나 한족 왕조에 관심을 많이 두고 기마 유목민이 건설한 국가나 시대, 지역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 상황을 타파하고 유라시아 동방이라고 하는 다원적인 광역 세계를 다룬 불교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책은 이러한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그에 따르면 거란과 불교와의 관계는 이른 시기부터 확인된다. 당(唐) 천복 2년(902) 태조 아보기의 즉위 이전, 그가 아직 질랄부(迭剌部)의 족장(일킨)이었을 때 시라무렌 유역 남쪽에 용화주를 조영하고 주내에 개교사(開敎使)를 세웠다. ‘개교’라는 사액은 이 절이 거란사회 최초로 건립된 사찰이었음을 시사한다.

홍종 지골에서 천조제 아과로에 이르기까지 쇠퇴와 와해로 이르는 이 시기는 거란이 동부 유라시아 제일의 불교국으로 가장 빛났던 시기였다. 황제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바쳐 불교에 경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거란의 불교문화가 동북아시아에 군림하는 불교 대국임을 자부하던 거란 정권의 자신감이 형상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책에서 고려와 거란의 불교교류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고려와 거란의 불교 교류사, 나아가 아시아의 불교교류를 이해하는 좋은 참고서가 될 만하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들은 “그동안 국내에서 고려와 거란의 외교관계를 제외하고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고, 불교문화의 교류에 대한 연구 성과 역시 그리 많지 않다”면서 “그러던 중 아직은 조금 낯선 ‘거란’과 그 불교문화에 대해서 소상히 알려주는 귀한 역서가 출간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려는 거란과의 교류가 활발한 나라였는데, 이 역서가 고려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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