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선지식 구법여행] <52> 불교신문사 사장 정호스님

불교신문사 사장 정호스님은 5월22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53선지식 구법여행 쉰 두 번째 초청법사로 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떻게 우리를 구제하는가?’를 주제로 법문했다.
불교신문사 사장 정호스님은 5월22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53선지식 구법여행 쉰 두 번째 초청법사로 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떻게 우리를 구제하는가?’를 주제로 법문했다.

 

“힘들고 괴로울 때 여러분들이 의지하는 곳은 어디인가. 괴롭고 힘들고 방황할 때 여러분들에게 해답을 주고 위안을 줄 수 있는 의지처, 안전처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여러분들의 문제와 괴로움, 어려움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진정한 의지처, 안전처가 돼야 한다. 진정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부처님 가르침이 의지처가 될 수 없다면, 불교가 의지처가 되지 못한다면 불교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고, 부처님을 믿는 제자라고 할 수 없다.” 

불교신문사 사장 정호스님은 5월22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53선지식 구법여행에서 법문을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53선지식 구법여행 쉰 두 번째 초청법사로 나선 정호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떻게 우리를 구제하는가?’를 주제로 법문했다. 

이 자리에서 정호스님은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마음의 본질을 찾는 것, 불교 명상이 필요하다”며 “마음의 본질은 바로 부처다.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것, 그것이 마음의 본질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이해는 듣고 이해아고 아는 지혜뿐만 아니라 직접 명상하고 실천하는 지혜로써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행복하고 복되고 평안한 삶을 성취하는 참된 불자들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님의 법문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오늘 법석에 모인 불자님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이해하고 수행하는 순수한 신심과 아름다운 정진력에 두 손 모아 축복을 드린다. 불자 여러분의 가정과 부처님 가호와 가피가 늘 기원하기를 기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몇 십 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요즘 세상은 매우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바뀌는 것은 활자나 문자, 소리 정보가 영상 정보로 대체되고 있고 빠르게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손 안에 스마트폰에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자 지식과 경험을 쏟아내고 있다. 불교와 명상 관련 콘텐츠들도 굉장히 많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떤 것이 신빙성있는 지식이고 정보인지, 개인의 의견이나 감상을 쓴 것인지 구별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똑똑해야 영상이 가진 진실성의 문제를 판단할 수 있다.

손 안에 모든 정보가 있고, 모든 강연이 있고, 모든 지식을 다 볼 수 있는 시대에 이렇게 여러분들이 부처님 법석에 찾아 와서 귀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곳에 모인 불자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우리를 구제하는가’하는 문제다.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힘들고 괴로울 때 잠시 도피하고 위안을 삼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에 놀다가 친구와 다투고 집에 오면 엄마들이 아이를 달래며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한다. 보통 자신들의 가정이 심리적인 안전처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가정이 안전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럴 때는 가정이 아니라 친구나 집단이나 어떤 장소가 가정을 대신해 안전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여러분들이 위급한 문제에 처하고 괴롭고 힘들고 방황할 때 여러분들에게 해답을 주고 위안을 줄 수 있는 안전기지는 어디인가. 부처님도 중요하고 삼보도 중요하다. 여러분들의 안전처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여러분들의 문제와 괴로움, 어려움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진정한 의지처, 안전처가 돼야 한다.

만약 여러분들이 힘들고 괴로울 때 부처님의 가르침이 위로가 되고,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이 절을 얼마나 다녔던지, 보시를 얼마나 했던지, 봉사활동을 얼마나 했던지 모두가 무용지물이다. 진정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부처님 가르침이 의지처가 될 수 없다면, 불교가 의지처가 되지 못한다면 불교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고, 부처님을 믿는 제자라고 할 수 없다.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첫째 부처님께서 먼저 가셔서 도달했던 그 길이 최상의 행복이라는 것을 믿는가. 이것은 깨달음의 문제다. 둘째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 길이 최상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가장 옳고 바르고 훌륭한 길이라는 것을 믿는가. 셋째 여러분들이 가고 있는 이 길이, 불교도로 살고 불교를 배우고 그 가르침을 펴는 이 길이 과연 잘 가고 있는 길이라는 것을 믿는가. 이 세 가지만 믿으면 여러분들은 가장 안전한 의지처로 도달하는 것이다.

믿는 것만으로도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불교의 시작이고, 불교의 끝이다. 삼보에 대한 바른 신심, 여러분들이 이러한 신앙관만 확실하게 정립되면 어디를 가더라도 두렵지 않게 된다. 당당해질 수 있다. 고개를 숙일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게 된다. 믿음만으로도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의지처가 삼보에 있다. 믿음만 공고히 한다면 깨달은 것이나 다름없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자들이여. 이것은 존재의 정화, 슬픔과 비탄의 극복, 고통과 불만의 소멸, 참다운 깨달음의 방법 획득, 열반의 실현으로 가는 직접적인 길이니 이름하여 사념처이다. 이 네 가지가 무엇인가. 여기에 한 비구가 몸에 대해 관찰하면서, 느낌에 대해 관찰하면서, 마음에 대해 관찰하면서, 법에 대해 관찰하면, 부지런히 관찰하고 관찰하면 분명히 알고 바르게 알아차리고 이 세상 욕망과 근심에 벗어나서 머무르게 된다.’ 이것이 <사념처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무엇이 번뇌와 고통 없이 청정한 성인이 되게 하고 슬픔과 비탄도 없게 해주고 고통과 불만도 소멸시켜주고, 깨달음과 열반으로 직접 데려다준다고 하셨는가. 그것은 사념처(四念處)이다. 사념처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명상이다. 불교의 명상은 불교 수행 계(戒)·정(定)·혜(慧) 중에서 정과 혜를 말한다. 정은 사마타, 삼매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혜는 위빠사나, 연기법을 통찰하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수행이라고 할 때 정과 혜를 닦는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교 수행은 계, 정, 혜 삼학이 있는데 정과 혜가 불교 명상이다. 정과 혜를 닦는 명상이 바로 여러분을 고통으로부터 바로 구제하고 성인으로 만들고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부처님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에 집중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상으로 집중해서 관찰하고 통찰하는 명상을 해야 한다.

불자 여러분들은 대부분 계학(戒學)을 실천하는 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이 좋고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계·정·혜 중에 정과 혜, 수행이 빠졌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직접적인 길은 정과 혜다, 명상이라고 말씀하셨다. 직접적인 수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삶의 위기에서 불교가 의지처, 피난처가 되지 않는 것,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괜찮은 것이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에서 5번째 위치다. 괜찮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소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괴롭다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작 힘든 것은 스스로가 만든 문제다. 때문에 ‘괜찮은 삶을 살았다’, ‘이 정도면 괜찮다’, ‘잘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줄 필요가 있다. 남탓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러지 말고 쓸모없는 생각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런 삶이 깨어있는 삶이다.

서양과 유럽에서는 불교의 핵심으로 명상으로 본다. 명상에 행복의 길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는 선불교 수행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존 카밧진 박사는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세계적인 회사 구글 엔지니어인 차드 멍 탄은 직원들의 교육에 명상을 활용하고 보급하고 있다.

서양은 마음챙김 명상, 위빠사나 등 불교명상 붐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부처님 말씀처럼 명상이 우리를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줄 유일하고 핵심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불교명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유튜브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들어보면 가슴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많다. 그것을 보면 사회가 좋게 바꾸고 기술이 좋아지더라도 우리들의 기본적인 괴로움은 바뀌지 않고 있다 것을 느낀다. 우리들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괴롭다. 살면서 느끼는 괴로움과 번뇌가 바로 고(苦)다.

2600년 전 부처님께서 고통으로 정의하신 괴로움은 지금도 존재하고 우리들이, 중생들이 겪는 괴로움이다. 우리시대에 중생들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마냥 행복하거나 즐겁기 만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고통의 조건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두 가지 경우만 있을 뿐이다. 고통의 사슬에 마음을 결박당하거나 마음을 결박당하지 않거나 두 가지 뿐이다. 마음을 결박당하는 것은 고통과 괴로움에 끌려가는 것이다. 결박당하지 않는 것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서 평화롭고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바르게 먹는 일 뿐이다.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고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다. 고통은 우리가 마음과 태도에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고통, 우리 마음에 있는데 밖으로 돌려서 이 문제를 피하려고, 고치려고 한다. 하지만 절대 피할 수 없다.
 

가장 기본적인 불교 명상의 시작은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마음을 호흡에 집중하는 것, 그 단순한 행위로부터 슬픔과 괴로움이 사라지는 열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슬픔과 고통과 괴로운 마음에 집중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호흡과 일과 삶에 집중하면서 생각을 맑게 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 밖에 없다. 근심, 걱정, 두려움, 출세하고 싶고, 돈 벌고 싶고 하는 온갖 욕망들은 여러분들이 가진 마음의 본질이 아니다.

여러분들 마음의 본질은 바로 부처다.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것, 그것이 마음의 본질이다. 부처는 맑고 밝고 고요하고 빛나는 텅 빈 마음을 깨달아서 존재 자체가 정화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성불한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그런 마음을 깨달아서 마음의 본질적인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누가 해 줄 수 없다. 상황이 해 줄 수 없다. 땅에서 쓰러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라고 했다. 여러분 마음에서 스스로 실현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이해는 듣고 이해하고 아는 지혜뿐만 아니라 직접 명상하고 실천하는 지혜로써 완성된다. 현재 호흡과 일상의 일들에 마음을 순수하게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처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행복하고 복되고 평안한 삶을 성취하는 참된 불자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정리=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사진=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불교신문3586호/2020년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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