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옆에 물고기 있고 물고기
옆에 게도 있고 거북이도 있고
거북이가 한 세상이네 거북이
옆에 개구리도 있네 바람 자면
바람이 그대로 거북이 바람이
그대로 물고기 저 물고기 하늘
을 나는 물고기 연꽃과 연꽃
사이에 한 세상이 있네

- 이승훈 시 ‘연꽃 옆에’ 전문
 


이 시는 선미(禪味)가 느껴진다. 연꽃과 물고기, 게, 거북이, 개구리, 바람 등이 한 세상을 이룬다. 이 들 사이에는 선후와 상하가 없다. 나란히 존재한다. 각각의 존재가 고유하게 있을 뿐이다. 시행도 기존 시행 처리의 방식을 버리고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 정해진 틀이 없다. 얽매임이 없다.

하나의 존재 옆에는 다른 존재가 있고, 심지어 하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바람은 거북이가 되고 또 물고기가 된다. 시인은 ‘잠자리 한 마리’라는 시에서도 “잠자리 한 마리 경포 바다가 그대로/ 잠자리 한 마리요 가을 짧은 해입니/다 난 언제나 반쯤 가다 돌아옵니다”라고 썼다.

하나의 존재가 ‘한 세상’이 되는 순간의 감흥을 노래했다. “그대로”라는 시어에는 존재의 실상이 그러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다.  

[불교신문3584호/2020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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