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반려로봇을 사람으로 상대할 수 있나?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 <잡아함(雜阿含)> 제13권 중에서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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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과 반려로봇

인간에게 있어서 ‘기억’은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과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존재의 기억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여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본다.

외딴 숲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전직 금고 털이범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현재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인다. 어느 날,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를 위해 그의 아들이 인공지능 반려로봇을 선물한다. 노인은 처음에는 마땅치 않아 했지만, 이내 자신의 건강과 일정을 챙겨주는 반려로봇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자신의 취미이자 특기인 절도 기술까지 반려로봇에게 전수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같이하면서 교감한다. 나중에는 노인이 짝사랑하는 도서관 사서인 제니퍼에게 선물하기 위해, 도서관 최고의 희귀본인 <돈키호테> 초판본을 훔치는 것을 공모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사실 그녀는 그 노인의 옛 연인이었고, 백발이 다된 그를 찾아와서 그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살지만, 정작 그는 치매 증상으로 인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근무하는 오래된 도서관은,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대체되면서, 박물관으로 전용될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노인과 반려로봇은 도서관이 박물관으로 완전히 바뀌기 전에 제니퍼가 좋아하는 희귀본을 훔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찰의 추적과 수사를 받게 되고, 경찰은 반려로봇의 기억장치에서 수사의 단서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프랭크는 갈등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반려로봇의 기억장치 속에는 프랭크의 범죄행위에 대한 기억이 모두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반려로봇은 자신의 주인인 노인에게 자신의 기억장치를 초기화시키라고 하면서 노인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려로봇을 초기화해 버리면 증거가 사라져 완전범죄가 될 수 있다.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반려로봇을 초기화시켜 버리면, 노인의 경험을 기억해 주는 존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지게 된다. 내 인생의 추억을 공유하는 유일한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각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과도 같다. 이 이야기는 영화 로봇 앤 프랭크(ROBOT & FRANK, 제이크 슈레이어 감독, 2013))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기억’의 연기성

이 영화가 다른 인공지능 로봇 영화와 차이점은 인공지능 로봇 스스로 자신이 로봇임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반려로봇은 “저의 기억이 삭제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전 제가 살아있지 않음을 압니다. 나는 로봇입니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 영화에서는 로봇이 어쩌다 스스로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거나,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이다. 존재를 대하는 인간의 관점과 태도에 대한 문제이다.

반려로봇은 중요한 고비 때마다 프랭크에게 반복적으로 자신은 단지 로봇일 뿐이라고 상기시켜 준다. 오히려 자신에게 인간적 감정을 이입하는 주인(프랭크)에게 현실을 상기시켜 준다. 그런데도 프랭크의 마음속에서 반려로봇은 이미 동반자 이상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프랭크로서는 반려로봇과 동일한 경험을 통해 추억을 공유하면서 쌓인 수많은 기억 데이터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기억이 소실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존재의 기억이 소실되는 것을 바라만 봐야하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극 중에서 자신의 기억장치를 초기화하라는 반려로봇을 바라보는 프랭크의 마음이나, 치매로 인해 공유했던 기억을 잃어버려서 연인이었던 자신조차 못 알아보는 프랭크를 옆에서 바라보는 제니퍼의 마음이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머릿속 기억마저도 각 개별자에게 독점적, 전속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누군가의 기억과 공유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유될 수 있는 기억들이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인간의 기억도 연기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이며, 그 상호 의존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어느새 점점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은 단순히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도구로서의 존재 의미를 넘어서 인간의 인식 패러다임과 의사소통의 구조, 그리고 사회구조 전반의 성격까지도 재편하게 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이며, 그 상호 의존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어느새 점점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은 단순히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도구로서의 존재 의미를 넘어서 인간의 인식 패러다임과 의사소통의 구조, 그리고 사회구조 전반의 성격까지도 재편하게 될 것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인간과 로봇의 연기성 

여기서 우리는 매우 낯선 질문들과 마주해야 한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이며, 그 상호 의존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로봇의 등장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어느새 점점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단순히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도구로서의 존재 의미를 넘어서 인간의 인식 패러다임과 의사소통의 구조, 그리고 사회구조 전반의 성격까지도 재편하고 있거나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인공지능 로봇을 생각할 때 ‘감지기(sensor)와 작동기(actuator)를 갖춘 정보처리기계’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마셜 맥루헌(Marshall McLuhan)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말하듯이,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돕는 미디어(매체, media)”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미디어’는 감각의 확장, 즉 인간의 확장이다.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미디어는 인간 감각기관의 확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확장은 인간의 감각 비율의 변화를 가져오고 곧 ‘사람들간의 상호의존 패턴들’도 바뀌게 된다. 모든 미디어, 즉 매체에는 그것에 상응하는 고유한 의사소통 체계와 상호 의존 패턴이 있다.

매체가 외부 대상을 인식하는 매개이자 그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의사소통의 매개라고 한다면, 매체의 변화와 발전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정보를 생산하고 수용하며, 그것을 소비하는 의사소통 체계와 상호 의존패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존재의 경계’란 다른 존재와의 대립각 속에서 발생한다. 인간만 있다면 누구도 인간을 객관적으로 정의내릴 수 없다. 객관은 타자에게서 파생될 수밖에 없으며 인간과 경계를 맞대고 있던 로봇들이 인간의 경계를 넘보게 될 경우, 인간은 그 상황에 대처해서 자신의 경계를 새로이 정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공지능 로봇과 악수하면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하여 주체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매체 철학의 관점에서 매체가 몸의 확장임을 고려하면, 매체적인 표현내용, 즉 매체인 메시지는 몸 자신의 표현내용과 함께 확장된 몸 자신의 표현내용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매체가 바로 몸이 되는 것이다. 즉 매체가 몸의 확장이라는 것은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말한 “매체의 몸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렇게 몸과 매체를 통일적으로 파악한다면 몸 또한 매체가 된다. 정신이나 마음의 매체로서가 아니라 바로 몸 자신에 대한 매체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몸을 통해 삶을 영위한다. 긍정적인 관계이든 부정적인 관계이든 타인의 몸은 나에 대해 매체이고 나의 몸은 타인의 매체이다. 즉 몸과 몸의 관계는 상호 매체적이다. 사물의 실재성에서 감각성, 즉 감각하고 감각되는 관계가 근본적이라 할 때, 그리고 그 같은 감각성의 관계를 ‘매체적’이라고 달리 부를 때, 사물의 실재성에 존재론적인 근본 원리로서 매체성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 느끼는 자건 감각되는 자건 서로를 존립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요컨대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바탕에는 바로 이러한 존재론적인 매체성이 작동하고 있다.

➲ 인간과 로봇의 공존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기계의 존재성이 객체에서 주체로 부각되고 있다. 어느 날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말을 걸며 소통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라면 우리는 어떠한 입장과 관점, 사유의 방식을 가지고 대처할 것인가, 과연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매체로서 기능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인간의 확장이라고 이해했을 때, 그것이 자본의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는지, 인간이 자본의 감각에 봉사하는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중도적 안목의 지혜가 필요하다.

갈수록 고도화되어가는 인공지능 로봇을 앞에 두고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은, 단지 과학 기술과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종교, 윤리의 영역이다. 모든 것은 만들어진다. 만드는 것도 만들어진다. 우리 인간도 예외일 수 없고 우리의 자아 역시 그러하다.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존재의 존귀함을 부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이 그 자체로 존귀하다.

따라서 굳이 업과 인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짓는 모든 일,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에 우리의 책임이 있다. 인공지능 로봇은 기계에 불과하니, 그저 성능 좋은 가전제품 정도로 생각하고 소비하면서 무심코 살아가기엔 그 영향력이 사소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 로봇의 기능이나 인간과의 동일성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과 태도이다. 

[불교신문3584호/2020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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