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하고 의탁함이 지나치면
번뇌 망상으로 변할 수 있어


수많은 반연 제도할 수 있는 정진력으로
부처님 가르침 온누리에 홍포되길 발원

선행스님
선행스님

외부의 환경 곧 대상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것을 반연(攀緣)이라 한다. 마치 소나무에 등나무가 의지해서 감싸고 있는 모습과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린 형상이겠다. 서로 공생하면서도 무리하게 감싸면 둘 다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아차하면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행자가 여러 정황이나 정진력에 걸맞게 신도를 제접해야지, 의지하고 의탁함이 지나치면 번뇌 망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다.

1985년 초가을. 출가의 짐은 단출한 봇짐 하나에 조그만 수첩을 챙긴 것이 전부였다. 수첩엔 그동안 인연된 200여명의 연락처가 빼곡히 적혔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남다른 도움을 많이 받아 마음속에 늘 감사한 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출가 한 달 전부터 대략 인사를 드렸다. 격려와 만류가 엇갈렸다. 어느 친구는 사흘을 도시락 싸들고 애원하듯 부여잡았다.

중학교 때 은사님은 “자네는 그동안 출가하기 위한 생활이었던 것 같네!” 격려하셨다. 주위에서는 ‘공무원으로서 지낼 만 할 텐데…’ 아쉬워하며 만류하는 분위기였고 가까운 권속은 더욱 그랬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인연들을 기록한 연락처였기에 수계 이후에도 한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출가한 지 8년쯤 되던 해에 법주사 강원에서 <서장> 강의를 했다. 전반적인 내용은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참선을 하라는 가르침이다. 매번 강의 준비를 하면서 가슴을 뜨끔하게 울릴 때가 잦다 보니, 어느 날 훌연 걸망을 지게 됐다.

산문을 나서기 전 그동안 지참했던 수첩을 그제서 태웠다. 잊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불문(佛門)에 귀의하여 불법(佛法)으로 인한 인연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어,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정진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비로소 출가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후 걸망 하나에 의지하여 절실한 마음으로 제방에서 참선했던 날들은, 오늘이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2010년 선원의 전통과 관습 그리고 납자들의 정진하는 모습에 동화되어 함께 정진한 경험을 <선객> 책자로 출간하게 되었다. 발행된 지 두 달여 지나, 학창시절 고등학교 동창들이 구독하고 입소문으로 30년 만에 30여명의 동창생들이 각지에서 한데 모여 왔다. 당시 선운사 강원의 강주 소임을 보던 터이기에 명함도 한 몫 했지 싶다.

한 세대를 지나는 만남에 멈칫한 어색함은 때마침 차담으로 준비한 엿을 내면서 “30년 만에 만나 엿 먹여서 되겠나요!” 한바탕 웃음은 이내 화애로운 분위기와 함께 <선객>에 대한 소감으로 이어졌다. 사전을 옆에 두고 세 번을 읽었는가 하면, 간간이 눈물겨운 정진에 감동이었단다. 사실 호기와 곡차에 대한 내용은 발로참회(發露懺悔) 곧 스스로 드러내 참회하는 심정으로 서술했음에도, 파격적인 모습에 오히려 인간적인 정을 느꼈단다.

그날은 4시간여 예정된 산행과 바닷가 식당까지 일행과 함께 하는 동안, 어설픈 입전수수(入廛垂手) 곧 시중에서 어우러진 모습 그대로였다. 다음날 회의가 있어 운행해야 할 차량이 마을에 있다는 것을 깜박할 정도였으니, 단체로 이동한 동창들 또한 대부분 비몽사몽간에 도착했단다.

그날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 봤고, 그간의 편견이 사라졌으며, 종교에 상관없이 편하다며 여타의 동창들까지 많이들 방문했다. <선객>은 그해 연말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됐다.

행여 반연을 넘치게 제접한다 해도 늘 정진하는 모습에는 포용되고도 남으리라. 모쪼록 수많은 반연을 제도할 수 있는 정진력으로 불법이 온 누리에 홍포되기를 발원한다.

[불교신문3584호/2020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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