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21> 아미타불사십팔원(阿彌陀佛四十八願)⑩
[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21> 아미타불사십팔원(阿彌陀佛四十八願)⑩
  • 혜총스님 부산 감로사 주지 · 실상문학상 이사장
  • 승인 2020.05.23 15:08
  • 호수 35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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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은 어디서 오셨는가’
변치않는 청정한 즐거움 서원


즐거움 뒤엔 괴로움 찾아와
찰나의 꿀물에 취하지 말고
번뇌 여의어 물들지 않아야
혜총스님
혜총스님

㊲ 인천지경원(人天至敬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땅에 엎드려 부처님을 예배하며 환희심과 신심을 내어 보살행을 닦을 때 모든 천신(天神)과 인간들이 그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사바세계에서는 보살이 거룩한 보살행을 닦으면 그 중에는 보살을 핍박하거나 업신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극락세계에는 아미타부처님께 예배하며 보살행을 닦는 이가 있으면 제석천 등 모든 천인이나 국왕, 대신 등 일반 사람들이 공경하며 또한 보살행을 흠모하고 따라서 성불하고자 노력할 것을 원하여 세우신 서원이다. 

㊳ 의복수념원(衣服隨念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의복을 얻고자 하면 생각하는 대로 바로 훌륭한 옷이 저절로 입혀지게 되는 것이 마치 부처님이 찬탄하시는 가사가 자연히 비구들의 몸에 입혀지는 것과 같으리니 만약 그렇지 않고 바느질이나 다듬이질이나 물들이거나 빨래할 필요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이들은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만 해도 저절로 원하는 대로 꼭 맞는 맞춤옷이 입혀져 의복에 의한 고민이나 고통을 받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옷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은 넘쳐나는 것이 옷이고 몇 번 입지 않은 옷도 버리지만 예전에는 의복이 참으로 귀한 시절도 있었다. 몇 번이고 덧대어 꿰매 입었다.

그렇지만 극락세계는 법장스님의 이 서원에 의해 이루어진 불국토이기 때문에 완전 자동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곧 옷이 나타나고 입혀진다. 그 옷은 바느질도, 다듬이질도 염색이나 세탁도 필요치 않다.

㊴ 수락무염원(受樂無染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누리는 상쾌한 즐거움이 일체 번뇌를 모두 여읜 비구와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우리들이 설령 이 세상에서 즐거워하더라도 그 즐거움은 유한해서 영원할 수 없다. 잠시 즐겁더라도 언젠가 괴로움이 찾아올 것이므로 항상 불안하고 우울하다.

법장스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찰나의 달콤한 꿀물에 취해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항상 즐거움이 떠나지 않는 세계로 인도하고자 이 원을 세웠다. 그 즐거움이란 변치 않는 영원한 즐거움이면서 일체 번뇌를 여읜 아라한이 그 즐거움마저도 물들지 않듯이 그런 청정한 즐거움이기를 서원한 것이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㊵ 견제불토원(見諸佛土願)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불국토를 보고자 하면 그 소원대로 보배나무에서 모두 낱낱이 비쳐 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에 그 얼굴을 비쳐 보는 것과 같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극락세계의 사람들은 아침 전에 수없는 불국토에 나아가 부처님들에게 공양 올리는 일과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시방세계의 불국토를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낱낱의 불국토를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부처님을 보지 못해 공양 올리지도 못하니 극락왕생의 원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불교신문3584호/2020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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