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너른 품…태고 보우스님 선향 가득한 도량”

5월 말부터 7월까지
매달 문인들과 함께하는
책 읽는 템플스테이 기대

자애명상법회 호국발원법회…
참신한 주제 일요법회 눈길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양 중흥사는 저자와 함께하는 책 읽는 템플스테이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

“내 이 암자에 살고 있지만 나도 알지 못해, 깊고깊고 좁고좁지만 옹색함은 없다. 하늘땅을 덮개 삼아 앞뒤 없으며, 동서남북 어느 한 곳에 머무름 없다.”

태고보우 국사가 ‘태고암가’를 지은 명작의 산실, 설잠 김시습이 출가를 단행했던 바로 그 도량. 북한산성의 중심 사찰 고양 중흥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중흥사는 고려시대 대선사이자 한국불교 중흥을 이끈 태고 보우국사의 선풍이 활발하게 꽃피웠던 도량이다. 역사적 의미가 깃든 현장은 찾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새롭다. 봄기운이 완연했던 5월 초 연둣빛으로 물든 중흥사로 향했다.

구파발역에서 사찰 차량을 이용해 20여 분을 달려 북한산 산행길 초입에 도착했다. 우거진 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을 즐기며 완만한 산길을 따라 30여분을 오르면 사찰에 다다른다. 주위 산에 폭 감싸 안긴 듯한 느낌을 준다. 경내에 들어서니 스님들의 기도소리가 마음을 다독인다. 총무 동명스님이 기자를 맞았다. 스님 미소가 봄볕처럼 따스하다.

중흥사의 대표 프로그램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템플스테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마음이 밝아지고, 맑은 냇물에 몸을 적시면 속세를 떠난 것 같으며, 독서에 잠기면 즐거움이 가득 찬다. 이런 취미가 곧 인생의 참다운 모습이다’는 채근담 구절처럼,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특별한 템플스테이가 바로 이곳에서 열린다.

2019년 4월부터 시작한 ‘책 읽는 템플스테이’가 바로 그것이다. 깊은 산속의 조용한 도량은 독서하기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다.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진행한 이 프로그램에는 매회 10~20명의 인원이 꾸준히 참석했다. 산사와 독서·명상이 조화를 이뤄 화두명상 등으로 진행되는 템플스테이여서 “책에 대한 이해가 쉽고 참여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 참가자들 이야기다.

사찰에서 만난 참가자 김봉숙 씨도 “책을 읽으며 생각을 순화하고 스님 법문도 들으며 마음을 정비하는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런 색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한 주인공은 총무 동명스님이다. 템플스테이 지도법사도 맡고 있다.

스님은 속세 시절 김수영 문학상 등을 받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다. 스님은 “책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런 저 조차 어느 순간 바쁜 일상을 보내다 종이책에서 멀어졌다”며 “스마트폰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책 읽기를 통해 진정한 휴식을 얻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스님 설명대로 산사에서 충분한 여유를 가지며 책을 읽고 저자와 대화를 하고 사찰 음식을 먹고, 예불 및 참선을 하는 등의 일정은 제대로 된 ‘쉼’을 갖게 한다. 그간 불교학자 목경찬,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현진스님, 정운스님, 최광식 명예교수 등을 초청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도서 선정도 신중한 과정을 거쳐 낙점한다. 올해는 일반에 더 가까운 문학 서적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일정을 연기했었지만, 5월 말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5월23일부터 24일까지 이병률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6월27일부터 28일까지 문태준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7월25일부터 26일까지는 정호승 시집 <당신을 찾아서>를 읽는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이밖에 2016년부터 꾸준히 해온 역사 해설과 숲 해설이 있는 템플스테이도 실시할 예정이다.

일요법회도 4월 말 재개했다. 고요하던 도량도 점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중흥사는 신도들이 신행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일요법회로 이끌고 있다. 평소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도시직장인과 맞벌이 부부, 거사 등 음력 법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계층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일요법회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법회 내용이나 구성도 매주 다양하게 이뤄진다.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자애롭게 살기 위한 명상과 법문이 함께하는 자비명상법회, 둘째 주는 부처님 법을 지키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호법신장이 되겠다는 다짐과 전법의지를 밝히는 호법발원법회를 거행한다. 셋째 주는 지장보살 원력으로 조상을 천도하는 지장기도법회를, 넷째 주는 관세음보살 자비원력으로 소원성취를 발원하는 관음기도법회를, 다섯째 주 일요일은 보현보살의 10가지 대원력을 생활에서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보현행원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5월3일은 자비명상법회가 열린 날. 좌복에는 이날 법사 스님 법문 내용을 요약한 글과 법회 소식을 안내한 ‘일요법회 회보’가 놓여있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서로 이야기 한다는 뜻에서 법담(法談)이라는 코너에 실린 이날 법문 주제는 ‘지금 만나는 사람의 장점만을 보자’는 내용이다.

“상대로 하여금 나를 ‘영원히’ 잊지 않게 하는, 요긴한 방편은 상대방의 단점을 보지 않고 장점만을 보는 것입니다. 자비심을 바탕으로 남의 장점을 알아보고 칭찬해주는 마음,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는 부처님 마음이자 보살의 마음입니다. 남의 장점을 알아보고 칭찬해주는 것은 돈 안 드는 보시행이요, 상대방으로 하여금 세상을 열심히 살도록 응원해주는 보살행입니다.”

산사에서 듣는 법문은 그 자체로도 감로 설법인데, 내용을 따라 읽으며 곱씹으며 생각하니 더욱 와 닿는다. 중흥사는 이밖에도 각종 재일기도 뿐만 아니라 생일불공, 1000일 기도, 새해맞이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불자들의 신행생활을 이끌고 있다. 다가오는 여름 북한산 너른 품에 위치한 중흥사에서 스님, 문인들과 함께 책도 읽고, 수행도 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고양 중흥사 경내.

■ 고양 중흥사는…

고려 초기 창건된 사찰인 중흥사는 태고 보우국사(1301~1382)가 1341년부터 1346년까지 주석하며 역사 속에서 크게 부각됐던 곳이다.

보우국사는 고려 말 고승으로 그 법맥이 서산, 사명스님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조계종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방위한 스님들의 지휘 본부인 팔도도총섭이 있던 곳이다. 승군의 도총섭이 머물렀던 사찰로서 북한산성 내 우두머리 사찰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1711년 계파 성능(桂坡性能)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중흥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136칸의 대가람이 됐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승군제가 폐지되면서 중흥사를 비롯한 북한산성 내 사찰들은 일시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04년 9월12일 발생한 화재로 사찰 전체가 불타고 말았다. 시간은 흘러 2005년 지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불사를 새롭게 시작해 2012년 대웅전을 준공했다. 2017년에는 만세루와 전륜전을, 2018년에는 도총섭과 요사채 등을 완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고양=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불교신문3584호/2020년5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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