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이소영

모뉴먼트밸리에서 할리 데이비슨에 캐리어를 달고 달리는 실버 할리족을 만났을 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처음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 신기함도 잠시, 뷰포인트에서 서로 사진 찍어주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에게는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애완견까지 세 식구가 함께 할리를 타며 미국 전역을 여행 중인데 가고 싶은 만큼 가서, 보고 싶은 만큼 보니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팔뚝에는 태양에 그을린 건강한 행복 근육이 불끈 솟아 있었다.

달리며 바라보는 매일 매일의 풍경이 너무나 새로워서 다시 새롭게 인생을 사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 실버 할리족. 그 웃음은 바이크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강한 애정과 진지함이 녹아든 삶의 엔진음으로 들렸다. 

그 순간에 5월에 반짝 특수를 누리는 효도관광에 이어서 몇 년 전 캄보디아에 갔을 때 현지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부모님들 효도관광이라고 5월에 여기 많이 보내시는데, 그 때가 우기라 엄청 습하고 더워서 절반 이상은 관광도 못 하고 버스에서 대기하다 귀국하니 5월에는 절대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호소 아닌 호소였다.

부모님이 원하는 여행보다는 보내드렸다는 자식의 자기위안이 빚은 서글픈 이야기였기에 황혼을 일출처럼 여기는 실버 할리족의 당당한 모습이 모뉴먼트밸리의 어떤 자연조각상보다 멋지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 속에서 성장했고 또한 나이가 든 부모님은 다시 자식들의 사랑과 돌봄으로 살아가는 연기적 삶 속에 있다. 이러한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을 생각하며 효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우리가 자랄 때 좋은 부모님 상은 우리의 마음을 읽어 주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함께 찾으며 그것에 대해 공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이 하고 싶어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주는 것이 우리 시대의 멋진 자녀상이 아닐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상품권을 선물하고 효도관광을 시켜드리는 것보다 100세 시대에 두 분이 혹은 한 분이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 선물이리라.

젊을 때 화가의 꿈을 가졌다면 기초 회화반에서, 가수가 되고 싶었다면 노래교실에서, 패션모델이었다면 시니어 모델학원에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면 목공이나 도예교실에서, 야생화나 나무를 좋아하면 숲 해설사로, 바이크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안전한 할리족으로 변신을 꿈 꿀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 좋을 것 같다.

조부모의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부모의 모습은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식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리라. 그 대물림이 바로 현실적인 효이자 살아있는 효 교육이라 생각한다.

이번 가정의 달에는 부담이 되는 효가 아닌 기쁜 마음으로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효를 실천해보자. 그러다보면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 같은 효가 아닌 우리 집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각양각색의 효가 풍성하게 피어날 것이다. 마치 5월 이팝나무의 꽃송이들처럼. 

[불교신문3583호/2020년5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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