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흥사 저녁 종소리'

김기철
김기철

맑고 드높은 하늘이 법흥사 사자산 능선을 따라 에워싸고 내려와 천상의 평화와 생명력을 가슴 벅차게 안겨 주는 것 같은 순간이다. 더불어 중천에 높이 떠있던 태양은 그 눈부신 햇살을 더 이상 지상에 쏟아 부으면 그 곳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이 현기증을 일으키고 질식할까 싶어 서편의 산줄기를 따라 서서히 은은한 금빛으로 휴식의 자리를 펴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오월의 푸르름이 아우성치듯 법흥사 경내를 옹위하고 쭉쭉 뻗은 노송들은 일제히 경배를 하듯 시원하게 펼쳐진 절마당 뜰 위의 극락전을 향해 그 성성한 기상을 한껏 뽐내고 있는 것 같다. 극락전 뜰 밑에는 단아한 석등 하나가 시자처럼 다소곳이 서있고 그 앞 멀찌감치 학의 날개를 반쯤 펼친 듯한 시원스런 범종각이 어엿하게 서 있다.

종각의 위치는 높직하게 사방이 활짝 열린 고색창연한 축대 위에 있기 때문에 종이 울리면 어느 한군데 걸리지 않고 사방팔방 경내 산과 계곡을 뒤흔들고 구만리 장천 우주공간으로 퍼져 나가게 돼 있는 것이다.

우선 가장 가까이 찾아가는 곳은 극락전 추녀 밑에 닫친 듯 열려 있는 법당 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아 계신 부처님 세 분께 어떤 예법으로 문안인사를 드리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추녀 밑 서까래 단청의 고운 빛깔과 환상적인 화사함에 정신을 잃고 환희의 군무로 밤을 지새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종각의 몸체는 법흥사 경내 중심부에 자리잡고 참으로 독특한 건축미를 뽐 낼만 하다. 열두 개의 둥근 기둥과 그 안에 네 개의 네모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천정을 가로지를 들보는 그 육중한 범종을 지탱하기에 너무나 완벽하게 짜맞춰져 있다. 이제 막 피어나온 신록의 파노라마는 그 장엄한 산 전체가 뭉글뭉글하게 꿈틀대는 것처럼 거대한 생물체로 가까이 다가올 기세이다. 허공을 향해 치솟은 개와골이 보이는 지붕 중심부엔 연꽃 봉우리라 해도 좋을 화강암 조각이 한옥 지붕 특유의 묘미를 돋보이게 한다.

가까이 다가서면 범종은 우람할 뿐만 아니라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비천상 모습이 그렇게 섬세할 수가 없다. 네 분의 천인들은 제각기 다른 악기를 가슴 앞에 받쳐 들고 소리 없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천공을 날고 있다.

번들대지 않는 청동색의 깊은 색감과 질감은 천년 묵은 고목의 연륜처럼 허리를 굽히게 한다. 뚝 떨어져 바라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위엄과 권능을 지니고 광대무변한 천공까지도 품고 있는 아량으로 치자면 결코 그 앞에선 깩소리 한번 못하게 거룩한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수십 차례씩 두들겨 맞는 수모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개가 짖느냐 하는 식으로 묵묵히 인고의 모습을 띠고 부드러운 미소 이상의 아름다운 자비의 음향으로 경내는 물론 온 세상을 감싸는 것이다.

새벽에는 세시 반에 서른세 차례, 저녁엔 여섯시 반에 스물여덟 차례를 맷집으로 내놓고도 그 담담한 면모는 성인의 깊은 심중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새벽종은 인간 세상과 우주를 깨우는 타종이고, 저녁종은 우주 속의 스물여덟 개의 큰 별들을 맞아들이는 뜻이라고 들었건만, 매사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 먹혀들게 돼 있는 세상의 잔꾀 같은 게 아닐까 하고 불순한 생각도 들게 한다.
 

지헌 김기철 도예가는 5월4일부터 6일까지 ‘5대 적멸보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영월 법흥사를 참배했다. 사진은 법흥사 적멸보궁.
지헌 김기철 도예가는 5월4일부터 6일까지 ‘5대 적멸보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영월 법흥사를 참배했다. 사진은 법흥사 적멸보궁.

타종을 하는 전면에는 ‘홍익범종(弘益梵鐘)’이란 종명과 뒷면에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獅子山 法興寺 寂滅寶宮)’이란 양각 글씨가 범종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이 종은 에밀레종을 본떠서 주조된 것으로 사방으로 툭 트인 종각을 꽉 채우고 있어 그냥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진다. 

“꾸앙~” “꾸앙~” 

드디어 천지를 뒤흔들 것 같은 우렁찬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 숙연하고도 깊디깊은 음향은 차차 부드럽고 가늘게 떨리면서 명주실보다도 더 보드랍고 곱게 저 멀리 멀리 우주공간으로 떠나가고 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울림은 지상에 의존하고 사는 미물들과 잡초들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곱고 고운 손길로 쓰다듬어 평화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 같다.

이 순간 세상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천진무구해서 나 같은 속물까지도 영원무궁토록 이렇게 이어지기를 두 손 모아 염원하고 있다니…. 놀랍게도 가슴 속 어느 귀퉁이에 파묻혀 있던 선근(善根)을 깨닫게 해 주니 바로 이 장소, 이 순간에 그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어쩔 뻔 했을까?

끊길 듯 이어지는 종소리와 더불어 학의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는 듯한 스님의 장삼 소매의 율동이 절묘한 조화를 자아낸다. 이 절경은 현실이 아니라 꿈속이다. 바로 이 때의 스님 모습은 땅을 짚고 서 있는 인간 세상의 의식이 아니라 환상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극락의 부처님 집 건넛방에 함께 사는 천신이라 할까 천인이 홀연히 강림해서 치는 종인지, 아니면 사자산 상상봉 어느 노송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쉬고 있다가 훨훨 날아 내려와 서 있는 잿빛 학의 형상인지 사뭇 헷갈린다. 아스라이 스러져가는 석양빛의 그윽한 잔영이 스님 주위를 둘러싸고 종각 안의 어쩌면 무거운 듯한 공기는 인생무상의 한 단면을 감추고 있는 듯한 비원을 스님의 숙연한 표정을 통해 읽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슨 방정맞은 심보가 잠겨 있었는지 난데없이 조지훈의 시 ‘승무’의 한 장면이 떠올라 공연스레 슬퍼지는가 하면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석양빛을 뒤로 업고 허허 벌판에서 경건한 자세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밀레의 ‘만종(晩鐘)’이 떠오르는 것이다. 스님의 정성스런 타종은 계속 이어진다. 나는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본다.

그 맑고 은은한 음향! 그것은 단순한 종소리가 아니라 신묘한 울림으로 세파에 병든 영혼들을 치유해주는 자비의 손길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우리의 마음은 극락에 들어간 것처럼 환희에 넘쳐 춤이라도 추고 싶건만 숨소리마저 죽이고 납작 엎드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든지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을 부르짖어야 할 심경인 것이다.

꿈이라면 기가 막히게 흐뭇한 꿈을 꾸었다. 밤마다 개꿈을 꾸고 나면 기분이 찜찜하고 몸이 찌뿌둥해서 제발 꿈 없이 푹 자봤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중얼대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몇 분간의 꿈인지 현실인지 분별 못할 몽환경(夢幻境)이 끊긴 다음의 마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꿈속의 잿빛 학 같기도 하고 천인 같았던 존재는 사라지고 거인이나 다름없는 우뚝한 키의 스님은 현실로 돌아왔다.

빳빳하게 날이 선 장삼 소매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극락전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발길을 떼어 놓는 스님의 모습은 언듯 현실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스님으로 복귀해 싱거운 농담과 허튼 웃음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의 새벽 종소리를 기약하며 아쉬운 밤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날 새벽 세시 반의 종소리는 더욱 맑고 신선하게 들려왔다. 이런 범종 소리는 곁에서 듣는 것보다 뚝 떨어져 듣는 묘미가 저녁 종소리와 다르게 느껴졌다. 세상을 깨우는 저 차분하고도 질서 정연한 타종은 수행도량의 청정하고 엄격한 계율을 영혼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루의 시작을 새롭게 몸과 마음을 다짐하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아침해는 여전히 찬란하게 법흥사 천공을 장엄하고 그 맑고 시원한 공기와 사자산 줄기의 소나무 숲은 생명수처럼 생기를 돌게 해주는 것이다. 아쉽지만 우리는 이 좋은 극락세계를 물러나야 한다. 일주문을 벗어난 무릉계곡의 수목들이 하나같이 석별의 손을 흔들며 ‘참 좋았지요? 또 오십시오!’ 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차창을 열고 우리도 손을 흔들어 답한다. ‘고마워요! 또 올게요!’ 하면서도 고해라는 사바세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굴러 들어간다.

그래도 삼일(5월4~6일) 동안의 법흥사 참배는 어느 법문이나 보약보다도 효험이 뛰어나 우리의 심신은 몰라보게 정화되고 그 상서로운 수행도량의 정기(精氣)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탁하고 험악한 고해를 빠져 죽지 않고 너끈히 헤엄쳐 나갈 수 있게 힘을 주니 그저 기쁘고 고마울 뿐이다. 
 

법흥사 범종각 모습.
법흥사 범종각 모습.

 

김기철 도예가는…
고교 영어교사로 일하다 40대 중반의 늦은 나이로 도예가의 길로 나선 지헌 김기철(88세) 도예가는 도예에 입문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제4회 공간대상을 수상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서 보원요(寶元窯)를 운영하는 그는 40여 년 동안 전통을 고집하며 자연미 가득한 도자기로 국내외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특히 대영박물관 역사상 우리나라 현대 도자기로는 처음으로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법정스님과 오랫동안 교류하는 등 제방의 여러 스님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불교신문3583호/2020년5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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