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김영

입주할 아파트가 완공되었다. 기본 인테리어와 하자보수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입주청소에 대해 알아보았다. 업체들은 일이 밀려 2주 후에나 일정을 잡을 수 있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기다리느니 청소를 내 손으로 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 남편에게 의향을 물어보았다. 남편은 지난 연말에 정년퇴직해 특별한 소일거리 없이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 극구 반대하던 남편도 청소도구를 챙겨 현관문을 나서는 아내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하루에 두 시간 남짓,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걸쳐 새집의 먼지를 천천히 쓸고 닦았다.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투덜대고 마찰도 있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음악을 들으며 최대한 즐겁게 일했다. 보람은 물론 운동 겸 경비도 절약한 셈이었다. 이사 날짜는 보름 후로 잡았다. 그동안 짐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십수 년 만의 이사라 쌓아둔 물건과 책이 많았다. 매번 버려야지 하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먼저 내방 책장부터 치워나갔다. 오래전 공부했던 전공 관련 서적과 리포트, 아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했던 날들의 기록과 서류, 어르신들 문해 학교에서 봉사했던 흔적들이 새삼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작업을 방해했다. 

더디긴 해도 한 칸 두 칸 정돈된 공간이 늘어났고 책장 전체가 깔끔해지더니 방안이 환해졌다. 일은 점차 커져 집안 전체로 확대되었다. 일에 재미와 속도마저 붙은 남편은 이삿짐 견적을 다시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봄이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날들, 꽃잎처럼 흩날리며 흔들리는 나날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일상이 조바심 속에 흘러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처럼의 이사 또한 순조롭지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집안을 꼼꼼하게 청소했고, 묵은 짐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근래에 나의 화두가 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떤 상황에서도 주체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이해한 임제선사의 말씀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이사를 하루 앞둔 지금은 깊은 밤, 곧 새벽이 되고 아침이 오리라.

[불교신문3583호/2020년5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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