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혁
오대혁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써서 석실(石室)에 간직하고는 후세에 반드시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기이한 이야기를 통해 뜻을 전달하려는 ‘술이우의(述異寓意)’의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고, 그것을 일러 ‘풍류기화(風流奇話)’라고도 했다. 그가 말하는 풍류의 기이한 이야기란 무엇일까? 

그는 소설 창작에 영향을 끼친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읽고서 “말이 세상의 교화에 관계되면 괴이해도 무방하고, 일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허탄해도 기쁘니라”라고 했다. 용궁이며, 귀신, 신선 등과 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 괴이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참된 삶의 이치를 깨닫게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스로 풍류를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만약 영웅호걸이라면 태아신검을 비스듬히 들고서 금강보저를 거꾸로 잡아서 부처나 마귀의 정령들을 베어 없애고, 열반이니 화성이니 하는 것들을 쳐부수겠다. 이를 가히 ‘홀로 행하고 홀로 걸어 장애가 없으며, 풍류가 아닌 곳이 저절로 풍류 되네’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풍류 아닌 곳’은 정위(正位)요, 그 정위가 편위(偏位)인 ‘풍류’가 된다고 했으니, 이는 ‘법성진여(法性眞如)’의 경지를 밝힌 것이다. ‘풍류기화’란 생(生)과 사(死), 현실과 이계(異界), 이류(異類) 등 허탄한 듯 보이는 이야기를 통해 불법의 오묘한 이치를 담아낸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젊은이가 처녀귀신과 사랑을 나누고 이별을 맞는다는 ‘만복사저포기’, 사랑하고 결혼하지만 다시 죽음이 갈라놓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 다시 이별을 한다는 ‘이생규장전’은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생사가 무상함을 말하고, 마침내는 온갖 연기의 삶 속을 헤매던 주인공이 집착을 놓아버린 깨달음의 상태를 죽음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안배하여 축조되던 두 작품과 달리 ‘취유부벽정기’는 극단적 방향으로 치달았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이 인간 개체가 겪게 되는 생사의 비극성,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주제화했다면, ‘취유부벽정기’는 인간의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을 통해 역사무상(歷史無常)을 주제화했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작가는 무상하기만 한 현실을 극복할 대책을 ‘남염부주지’에서 밝혔다. 소설은 당대 현실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많은 문제가 있는지를 철두철미하게 파고 들어가 현실 개혁의 방향을 추궁해 들어갔다. 김시습은 ‘애민의(愛民義)’를 비롯한 각종 논설이나 ‘십현담요해’와 같은 불교 관계 저술들에서도 이러한 현실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소설이나 여러 글에서 부정적 현실을 개혁하는 데 깨달은 자는 앞장서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환상과 현실을 결합한 세계의 극치를 보여주는 ‘용궁부연록’에 이른다. 용궁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공간에 존재하면서, 왕과 신하, 인간과 동물들이 모두 어우러져 잔치를 벌이는 공간이다. 김시습이 소망하는 세계다. 이류중행(異類中行)하여 온 나라 존재들이 어우러진 편안한 세상이 ‘용궁부연록’에 그려지고, 이는 작가의 궁극적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야광주와 비단을 지닌 채 현실로 복귀한 한생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명산에 들어갔는데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는 참된 깨달음을 얻은 자가 평상으로 돌아가 자유자재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이는 깨달은 자가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금오신화>는 생사의 굴레 속에서 헤매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깨달음의 이야기다. 그리고 잘 들여다보면 깨달은 자가 궁극적으로 행해야 할 보살의 길을 알려주며 어서 움직이라 재촉하는 ‘풍류기화’다.

김시습은 노래한다. “바람 멎어 강이 비단결 같고 / 비가 개니 산이 저물려 하네. / 양 언덕은 갈대로 덮였는데 / 달 밝아서 그 빛깔 하얗구나.”(<조동오위요해>) 마침내 그대들이 어디에도 걸림 없는 자유자재한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다. 

※ ‘불교로 읽는 금오신화’ 연재를 여기서 멈춥니다. 그동안 애정과 성원을 다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불교신문3583호/2020년5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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