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옥천사 85년 전 ‘사적기’ 다시 펴내
'역사' '기문' 등 원본과 함께 한글로 풀어

‘고성 연화산 옥천사 사적기’ 표지
‘고성 연화산 옥천사 사적기’ 표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를 물리친 신라가 통일대업의 대미를 장식한 676년(문무왕 16년) 창건된 고성 옥천사의 역사와 현황을 정리한 사적기(史蹟記)가 나왔다.

고성 옥천사(주지 원각스님)는 1935년 발간한 <옥천사 사적기> 원문과 함께 한글로 풀이해 <고성 연화산 옥천사 사적기>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성취한 후 전란으로 어려움을 겪은 백성을 위로하고 민족대화합 도량의 역할을 수행한 옥천사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인 옥천사는 그 뒤로 진경국사(신라 효공왕 2년), 혼응화상(고려 광종 15년), 혜은화상(고려 예종 5년), 보융화상(고려 고종 26년), 지오·원오선사(고려 공민왕 26년), 학명·의오대사(조선 인조 17년), 묘욱선사(조선 숙종 3년), 농성화상(조선 고종 25년)이 각각 중창했다.

임진왜란과 민란 등으로 전각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조선 후기에 농성스님이 주석하면서 도량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옥천사 사적기>에는 “농성 화상이 본사로 옮겨와 20여 년 동안 중흥한 공훈이 최고로 크다”면서“절을 보호한 화상의 위엄과 덕망은 논할 필요없이 막대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번에 발간한 <고성 연화산 옥천사 사적기>는 크게 △옥천사 사적기 원문 △옥천사 사적기 번역 △옥천사 사적기 영인 등으로 단락을 나누었다. 특히 번역 내용을 소개한 단락에서는 △연혁 및 연대표 △연혁기 △전각 중창 △방암(房庵) 중창 △불화론 △유공 기문 △시운 △완문으로 구성했다. 자방루기, 만월당 중창기, 선당(禪堂) 중수기, 청련암 중건기 등 각 전각과 암자의 기문(記文)을 게재해 옥천사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옥천사 상징 가운데 하나인 ‘자방루’ 편액. ‘꽃향기가 퍼진다’는 의미로 옥천사를 감싸고 있는 연화산과 어울린다.
​옥천사 상징 가운데 하나인 ‘자방루’ 편액. ‘꽃향기가 퍼진다’는 의미로 옥천사를 감싸고 있는 연화산과 어울린다. 조선 후기 명필 조명채의 글씨이다.

옥천사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하나로 조선 영조 40년(1764년) 학명(學明) 스님과 의오(義悟) 스님이 세운 자방루(滋芳樓)의 기문도 주목 받기에 충분하다. ‘꽃향기가 퍼진다’가 퍼진다는 누각 이름은 옥천사를 감싸고 있는  연화산(蓮花山)과 너무 잘 어울린다.

자방루 편액은 조선 후기 명필 조명채(曺命采, 1700~1764)의 글씨이다. 과거 급제후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을 다녀오고 승지, 황해도 관찰사, 이조 참의, 성균관 대사성, 예조 참판 등 요직을 거쳤다. 1762년 사도세자 사망 당시 국문(鞠問)을 당하며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옥천사 자방루 편액 글씨는 그의 마지막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고성 옥천사 자방루. 지금은 보수 공사 중에 있다. 사진제공 = 홍은미 옥천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고성 옥천사 자방루. 지금은 보수 공사 중에 있다. 사진제공 = 홍은미 옥천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고성 연화산 옥천사 사적기> 는 최선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과 원명스님(옥천사 성보박물관장)이 편자로 참여하고, 고경스님(송광사 성보박물관장)이 감수했다. 번역은 도해스님(광주 원각사 부주지), 윤문은 이인혜 씨가 담당했다. 사진은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옥천사성보박물관, 정성혁 충북대 겸임교수가 제공했다.

<옥천사 사적기>가 나온 1935년 당시 주지는 오관수(吳官守) 스님일 가능성이 있다. 1934년 2월21일자 동아일보는 ‘옥천사 주지 당선’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1월24일 제8회 주지 선거회(會)를 열고, 유권자 50명이 투표한 결과 오관수 씨가 당선됐는데, (오관수)씨는 일본대학 종교과를 마치고 현재 진주포교사로 있다”고 보도했다.
 

1935년 출간된 ‘옥천사 사적기’ 내제 ‘불기 2962년 개편, 옥천사사적책’이라 적혀 있다.
1935년 출간된 ‘옥천사 사적기’ 내제 ‘불기 2962년 개편, 옥천사사적책’이라 적혀 있다. 도장은 옥천사 직인이다. 사진제공=옥천사성보박물관

최선일 문화재감정위원은 “옥천사는 사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감로수가 흐르는 1500년의 역사가 있는 도량”이라면서 “1990년부터 옥천사를 찾았는데, 30년 이상 문화재를 지켜주신 노스님들과 맑은 향기가 나는 스님들의 인연으로 ‘작은 역사의 흔적’을 학계에 공개하게 되었다”고 사적기 출간 동기를 설명했다.

옥천사 주지 원각스님은 “옥천사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록한 현존 문헌으로 가장 오래된 <옥천사 사적기>가 성보박물관 수장에서 좋은 인연들에 의해 대중에게 얼굴을 내보이게 됐다”면서 “이번 간행을 통해 옥천사와 인연 맺은 신도님들이 원찰에 대한 자긍심과 애사심이 증장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옥천사는 20세기 초 독립운동에 참여한 스님과 지사들을 배출하고, 다수의 유학생을 해외에 보내는 등 민족 근대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주지 원각스님은 박물관장 원명스님 등 대중과 함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근대 자료를 수집해 옥천사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노력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고성=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이천운 경남지사장 woon3166@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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