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칼의 역사’ 바꿔주는 것은 ‘한류’라는 문화력”

일본, 후지산 같은 수직배열
신분제서 분출되는 민중 불만
국외로 돌릴 때마다 한국 주목

일본인들이 후지산 바라보며
‘경외심’ 갖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북한산 보며
언제든 올라갈 수 있다 생각

日, 변화 부정 집단 억압 속
탐미ㆍ무력 이중성 배양했지만
韓, 언제나 창의적 변화 이끌
호탕함 자유로움 지니고 있어

문광스님
문광스님

한국은 열강들로 둘러싸여 있다. 한국학을 보다 깊이 궁구하고자 한다면 한국을 둘러싼 주변국들을 바로 이해하고 그들과의 지혜로운 관계의 모색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일본, 미국, 중국의 문화론에 대한 단상(斷想)을 피력해 보기로 한다.

➲ 탐미와 야만의 이중주

‘가까운 일본, 낯선 일본인!’ 우리는 일본인들이 속마음(혼네)과 겉마음(다테마에)이 다르다는 말을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다. 그들을 연구한 일본문화론의 대체적 양상 역시 ‘이중성’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어령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인이 겸손과 섬세를 바탕으로 축소를 지향했을 때는 번영했지만, 야심과 잔인성을 품고 주변으로 확대를 지향할 때는 오히려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화(和)·경(敬)·청(淸)·적(寂)의 축소의 장점들이 확대를 지향할 때엔 오히려 불화·폭력·혼탁·소란의 부정적 가치들로 변모했는데 임진왜란과 태평양전쟁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는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국화와 칼’에 비유하여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탐미주의적 ‘국화’와 폐쇄사회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밖으로 돌려 동물적인 야만성으로 폭발시키는 군국주의적 ‘칼’의 이중주가 바로 일본문화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이러한 일본의 집단광기에 대해 “일본의 역사는 칼의 역사일 뿐이고 그 본질은 뼛속까지 야만”이라며 ‘일본야만론’을 펼쳤고, “일본을 긍정적으로 보면 반드시 실패한다”며 일본의 잔인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들의 천진한 유미주의는 가냘픈 로맨티시즘에 불과한 것으로 강자가 되지 못하면 영원히 복종해야 한다는 일본식 전체주의를 문명이라는 탈로 교묘하게 위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 한류(韓流)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즈음, 한국의 젊은 배우 배용준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격하게 환호하던 50~60대 일본 여성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렇게 한류에 열광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극렬한 혐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장면도 목격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의 문화와 문물을 지독히 애호하면서도 틈만 나면 한국 땅을 유린하려는 정한론(征韓論)을 들고 나오곤 했다. 우리는 이러한 양면성을 가진 이웃나라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그들과 교류해 나가야 할 것인가? 
 

도쿄의 후지산은 일본인들에게는 범접이 불가능한 ‘신성함’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벚꽃이 핀 봄날에도 정상에 만년설이 덮여있는 후지산. 출처=crowdpic
도쿄의 후지산은 일본인들에게는 범접이 불가능한 ‘신성함’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벚꽃이 핀 봄날에도 정상에 만년설이 덮여있는 후지산. 출처=crowdpic

➲ 도쿄의 후지산과 일본인 심리

풍수지리학의 명제 가운데 “사람이 거짓말 하지 땅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땅과 자연환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는 양국의 수도에 위치한 후지산(富士山)과 북한산(北漢山)의 차이에서 그 전모가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양국의 특징은 두 산을 바라보는 서울과 도쿄의 시민들의 관점에서도 확연히 대조를 이룬다.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가 3776m에 이르는 일본의 상징이자 영산(靈山)으로 도쿄에서 누구나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눈 덮인 후지산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은 그 위용에서 성스러움을 느끼며 넘을 수 없는 경지에 대한 경외를 배운다. 클래스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바로 인정하고 복종과 굴종을 보여주는 일본인의 속성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혈혈단신으로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 한국 남아(男兒)의 용맹을 보여준 사명대사(四溟大師), 역도산(力道山), 최배달(崔倍達) 같은 인물에게 납작 엎드렸던 일본인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은 ‘일왕(日王)-쇼군(將軍)-귀족(봉건 영주)-사무라이-농민·공인·상인-천민’으로 구성된 폐쇄적 사회로 한 번 신분과 계층이 정해지면 좀처럼 바꾸기 힘든 구조였다. 우리와 같은 과거제도마저 없어서 일본인들은 새로 부임해 오는 신관 사또를 구경해 보지 못한 채 대대로 세습된 영주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현대 일본사회에서도 가업을 5대 이상 이어오고 있는 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전통과 전문성은 극찬할 만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직업마저 세습할 수밖에 없었던 집단주의의 폐해와 고통이 함께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철저히 자기 위치를 지킬 것과 그에 맞는 합당한 처신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현실에 순응하고 집단의 규율을 엄수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넘볼 수 없는 후지산을 경외하듯 삶에서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아기자기한 정원에 축소된 우주를 담고 정교한 분재와 꽃꽂이에 함축된 자연을 입히는 그들의 섬세한 탐미주의는 여기에서 발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울화가 치미는 일이 생겨서 한바탕 분노를 터뜨리고 싶어도 섬나라의 특성상 지역사회에서 멀리 달아날 수도 없기에 체념하고 살아야 한다. 후지산처럼 수직적으로 배열된 신분제 속에서 분출되는 민중의 불만을 국외로 돌릴 때마다 한국정벌이 거론되고 군국주의는 꿈틀대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서울의 북한산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은 서울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시민들 모습. 연합뉴스
한국인에게 있어 서울의 북한산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은 서울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시민들 모습. 연합뉴스

➲ 서울 북한산과 한국인의 기상

한국인은 이와 정반대이다. 서울의 조산(祖山)인 북한산은 기세 좋은 바위산임에도 불구하고 835m에 불과하다. 서울을 둘러싼 북악산(342m), 인왕산(338m), 낙산(125m), 남산(262m), 관악산(629m) 등은 모두 나지막하여 언제든 등산이 가능한 산들이다. 

일본인들이 후지산을 바라보며 경외심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서울 주위의 산들을 보며 ‘저 정도의 산은 내가 올라가지 않을 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모두가 잘났으며 윗사람에게도 당당하고 배짱이 좋은 편이다.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주의식은 대단히 강렬하다.

조선조의 사대부들이 임금에게 끝까지 간언하고 성균관 유생들이 끊임없이 시위에 나선 것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오래 있는 사람을 보면 시기와 질투를 보내며 겸손의 부족을 책망하다가 더 심해지면 저항하고 끌어내리려고 한다.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 올라가서 사진촬영을 한다면 빨리 한 컷 찍고 내려와야 한다. 정상부근에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오랜 시간 정상에 머무르면 미움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꿈을 갖고 비상을 준비해 온 능력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민당 일당독재가 지속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격렬하게 정권교체를 한다. 한국의 역동적인 힘과 다이내믹한 변화는 바로 누구나 도전해 볼만한 북한산의 접근가능성에 그 상징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이 변화를 부정당하는 집단의 억압 속에서 탐미(耽美)와 무력(武力)의 이중성을 길렀던 것과는 달리 한국인에게는 언제나 즉흥적이고 창의적으로 순간순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탕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처럼 축적된 불만을 국외로 발산하는 광기를 부릴 필요가 없다. 다소 질서가 없고 혼란스러워 보일지는 모르지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성은 가지고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반일과 극일 사이에서

일본문화론을 언급한 지성들은 한결같이 일본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전쟁행위를 절대 반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이 아름다운 한국 땅에 대한 저들의 집요한 열망과 소유욕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 잠재된 집착을 버릴 수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 극우세력의 팽창 지향적 군국주의와 패권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갖추어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 강력한 자력(自力)의 여유로운 활용만이 저들의 이 땅에 대한 망상과 고집을 내려놓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반일(反日) 감정은 오히려 혐한(嫌韓) 현상을 가중시킬 수 있다. 정부차원의 과도한 힘겨루기는 오히려 일본인들의 집단광기를 촉발하고 자극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매력적인 한국문화의 힘으로 저들을 녹이고 사로잡아야 한다. 무력(武力)이 아닌 미력(美力)으로 철없는 일본인의 마음을 빼앗고 달래야 한다. 

일본인 가운데에는 순수하고 양심적이며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기본에 충실하고, 현실에 집중하며, 성실하게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인들이다. 소시민 가운데 심미안과 예술성을 갖춘 애처로운 전문가들도 많다.

군국주의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찬란한 벚꽃 대신에 시대를 앞서 봄을 미리 깨닫고 끈기 있게 향기를 품어내는 매화의 매력을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철들지 않은 무(武)를 성숙한 문(文)으로 바꿔주는 것은 바로 한류라는 ‘문화력(文化力)’에 의해서이며 이것이 바로 ‘극일(克日)’의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582호/2020년5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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