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오늘] 시봉(侍奉)
[스님의 오늘] 시봉(侍奉)
  • 선행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한주
  • 승인 2020.05.16 15:05
  • 호수 35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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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25년 동안 모신 아난존자 ‘덕목’ 생각하다

신심 견고하고 마음씀씀이 정직하고 곧으며
모시는 분 말씀을 즉각 지혜로 흡수할 역량
선행스님
선행스님

스승 되는 스님과 원로 스님 그리고 사중의 중책 소임을 보는 스님을 모시고 받드는 일이 시봉(侍奉)이다. 시(侍)자를 파자하면 선남자 선녀인(人)과 사찰(寺), 곧 사찰에서 공손히 하는 이를 이르는데, 확대하면 불ㆍ법ㆍ승 삼보를 공경히 받들고 섬기는 불자를 연상할 수 있겠다.

일상 어른 스님을 모시고 받드는 시자(侍者)를 시봉이라 이른다. 시자에겐 몇 가지 갖춰야 할 일이 있다. 신심이 견고하고 마음 씀이 정직하고 곧으며, 몸에 병이 없고 항상 정진하는 자세여야 하며, 늘 마음을 챙겨 흐트러짐이 없고 교만하지 않아야 하며, 모시는 분의 말씀을 즉각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부처님을 25년 시봉한 아난존자를 두고 이른 듯싶다. 그만큼 시자의 역할과 중요성을 일깨운 덕목이겠다.

행자생활 6개월쯤 지나 잠깐 은사 스님을 시봉했다. 하루는 설탕을 넣지 말고 커피를 타오라고 하셔서, 밖에서는 별로 마셔본 일이 없어 프림과 설탕을 듬뿍 넣었던 기억이 있어 그만한 양을 가늠해서 커피를 대략 두 숟갈 타서 드렸다. 한 모금 하신 스님은 “저런 미련한 지고!” 곧바로 적당 양을 일러 주셨다. 대부분 청소와 차를 우려내는 일이었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보살님들이 많아 며칠 그 앞에 차를 들고 갈 때면 영 어색했다.

아마도 당시의 생각은 은사 스님은 그렇다 해도 신도를 제접하는 일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차 심부름을 하는가 싶어 썩 내키지 않은 마음이 이입되어 어설펐지 싶다. 어느 날부터는 오시는 보살님들마다 차를 직접 타서 가져가도록 했다. 지켜보신 스님은 시자의 모습이 아니었던지 일주일 만에 교체됐다.

수계 후 10년이 훌쩍 넘어 은사 스님께서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 하셨다. 혈액 스물서너 팩을 긴급수혈 할 정도로 대형 사고였다. 담당 의사의 말씀이 “이렇게 큰 부상에도 어떻게 아! 소리 한 번 없으시네요.” 사고를 떠나 수행자의 모습을 본 것 같다며 각별히 정성을 다해 주셨다. 사고 첫 날부터 보름 정도를 꼬박 날밤을 새며 간호해 드려, 되레 보름을 밤샘한 것 같지 않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시봉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은 덜어낸 심정이었다.

강원에 처음 입방하여 큰 방에서, 지금은 입적하신 월하 방장 스님의 발우 시봉을 지목 받아 2년 가까이 시자를 했다. 공양 때면 어김없이 15분 전에 미리 착석하고, 말씀은 없으셔도 강원 학인을 일일이 점검하듯 훑어보셨다. 돌이켜 보면 그러한 관심이 총림을 반세기 넘도록 대중을 제접하여 도량을 안정되게 유지시킨 비결이라 여겨진다. 

스님께선 강직함과 공심이 남다른 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찍이 내로라하는 권력자 앞에서 당당한 말씀을 하신 일화는 가슴을 쓸어내릴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납자가 칼을 들이대고 공부의 경계를 일러 달라고 하자 “니 지금 정지칼(부엌칼)로 뭐하노!” 이내 칼을 거두었다는 담력까지 겸비하셨다.

동국대학교 이사장 소임을 보실 때는 관용 차량을 사적인 일에는 일체 운행하지 않으셨다는데, 그러한 공심은 사중에 산림이 어렵거나 불사 할 때면 지체 없이 지참했던 공양금을 희사하셨다.

강원에서 꼬박 5년을 지내며 <화엄경>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다 공양 때 보이지 않으면 각별히 챙겨 주셨기에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특히 참선하기에 앞서 두 시간 가까이 ‘무(無)’자 화두와 함께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은 지금까지 지탱할 수 있었던 큰 가르침 이셨다. 

[불교신문3582호/2020년5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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