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7주…혜원스님이 파리 길상사에서 보내는 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세계를 휩쓸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마음은 여느 해와 다르다. 프랑스 파리 길상사 혜원스님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절에 오지 못하는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법문을 소개한다. 

혜원스님
혜원스님

오늘은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올해는 예년과 같이 대중들이 함께 모여 봉축법회를 가질 수 없음을 참으로 아쉽게 여기며, 불자님들께 저의 안부 인사도 드릴 겸 글로 봉축법문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 아침이면 파리 길상사는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정원에는 꽃으로 장엄된 아기부처님을 모시고, 경내 이곳저곳에는 법회와 점심공양을 준비하는 불자님들로 활기를 띄는데, 오늘 아침에는 인기척 하나 없는 적막함 가운데 혼자 법당에서 부처님 전에 의식을 드렸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가분들의 극락왕생과, 확진자 분들의 조속한 쾌유를 빌고, 불자님들의 건강과 가내의 화택을 염원하며,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온누리에 두루 미치기를 이 글을 빌어 다시 한 번 축원드립니다.

프랑스 전국이 자택 격리에 들어간 지 7주째, 마음 같아서는 불자님들께 염불소리라도 들려드리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계문명을 멀리하고 살아온 터라, 원격으로 불자님들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아쉽지만, 매일 청안 기도로 불자님들의 안녕을 발원해왔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발원대로 불자님들께서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잘 극복해 나가시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자택격리가 시작된 이후 문 밖 출입을 일체 삼가하고 삼시세끼 끓여 먹으면서 기도와 좌선, 운력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기도와 좌선 외 하루의 주요 일과는 운력입니다. 법당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에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아 먼지가 쌓여있는 곳을 청소하고, 정원과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는데, 청소는 할수록 일거리가 눈에 띄고 무리를 해서라도 끝을 보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불편하고 아쉬운 것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격리기간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소소한 것에 감사드리며 보내고 있습니다. 외부로 향해 있는 각자의 마음을 안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간경, 주력, 명상, 기도 등 각자의 근기에 맞는 수행방식을 택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또한,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주만상의 모든 존재가 인드라망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연 생태 파괴와 환경오염을 초래한 인류의 공업(共業)을 참회하고, 이를 계기로 자연과 인간들이 조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2564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 그 어느 시기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바로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시대에 맞게 계승하여 실천의 표현으로, 파리 길상사의 불자님들은 창건주 법정스님께서 남겨주신 이 정신을 지혜의 보검으로 삼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시길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비록 몸은 한 자리에 할 수 없으나, 마음의 등을 달아, 각자의 거처가 부처님의 수행터가 되고, 이 사회가 작은 불국토가 되기를 발원 드립니다. 

모두들 힘내십시오.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혜원스님
 

매년 이맘때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를 봉행해온 프랑스 파리 길상사도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법회 봉행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봉축법요식 후 기념사진.
매년 이맘때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를 봉행해온 프랑스 파리 길상사도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법회 봉행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봉축법요식 후 기념사진.

[불교신문3582호/2020년5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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