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산 벚꽃이 피어나며 도량을 화장세계로 장엄할 즈음 연례적으로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겨우내 사용했던 해우소 정화조를 청소하는 일이다. 업체 사장님께서 현장을 둘러보시더니 이번에는 양이 많아 분뇨차 3대 정도는 해야 될 것 같다며 일을 시작하셨다.

점심공양 시간이 되어 간식을 드리러 갔더니, “스님, 3대면 될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해야겠는데요. 어찌할까요?”하셨다. “네? 그럼 그렇게 하셔야죠.” 입은 “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아니, 평소 2대만 하다가 1대 추가 된 것도 마음이 쓰였는데 또 1대를 더 해야 된다고? 아이고 관셈보살! 가뜩이나 코로나19로 몇 달째 법회도 못보고 있는데 돈이 배로 들어가게 생겼네.’

공양간에 돌아왔지만 추가된 비용 때문에 자꾸 마음이 불편했다. ‘가만있자. 1대 9만원이니까 2대면 18만원, 1대 더 추가하면 삼구는 27만원이지. 그런데 또 1대 더 추가하면···?’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며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름 똑똑하신 법당보살님께 물었다.

“향운심 보살님, 삼구 이십칠 다음은 뭐죠?” “네? 음, 삼구 이십칠 다음은 사일은 사죠.” 난 깜짝 놀랐다. 무슨 이런 황당한 대답을 하는가 싶었다. “아니 보살님, 저를 놀리시는 건가요? 삼구 이십칠 다음이 어떻게 사일은 산가요?” 같이 공양하던 대중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다들 “그럼 뭔가요?”하는 눈빛이셨다.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나는 온전히 비용이 추가된 것에만 몰입되어 앞뒤 자르고 내 생각만 질문을 한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스님의 질문은 삼구 이십칠 다음이 사구 삼십육이었네요”하며 다들 박장대소를 하셨다. 나도 구구단은 외울 줄 안다. 다만 6학년(?)에 접어들고 보니 깜박 했을 뿐이다.

나라고 이 글을 쓰면 창피당할 줄 왜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심을 베푸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생각에만 갇혀 고집하는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준다면 그까짓 창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불교신문3582호/2020년5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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