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혁
오대혁

주인공 한생은 글을 잘 짓기로 유명하여 조정에 알려진 문사였고, 심지어 용궁에까지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가 용왕의 초청을 받아 용궁에 들어가 용왕의 딸을 위해 별당의 상량문을 지어주고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온갖 축생과 귀신, 총각 등 이류(異類)들의 잔치가 한바탕 벌어진다.

그런데 그건 꿈이었는데, 그 꿈속에서 선물로 받은 야광주와 비단이 그의 품에 놓여 있었다. 그는 그걸 남들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여생을 명리(名利)도 생각지 않으면서 명산에 들어가 살다가 어디서 생을 마쳤는지를 사람들은 몰랐다. <금오신화>의 마지막 다섯 번째 작품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은 앞선 작품들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어우러져 춤추고 노래하는 잔치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용궁은 특이한 곳에 존재한다. 천마산 박연이란 연못 속이다. 허공 높이 뻗친 송도의 천마산(天磨山)은 현실에 발을 딛고 허공까지 이어지는 신성과 범속을 함께 아우르는 연꽃과 같은 세계다. 거기에 신령한 이물이 산다 하여 해마다 국가에서 희생을 바치며 제사지내는 박연(瓢淵)이라는 연못(龍湫)에 용궁으로 가는 길이 있다.

현실 속 특정 공간에 뚫려 있는 공간으로, 인간 세계와 상호 교통하는 현실적 공간에 자리하는 곳이 용궁이다. 이는 조동오위 사상과 관련지어 보면 정위와 편위가 함께하는 공간으로, 현상즉본체의 법성진여의 공간이다.

용궁에 초대된 한생은 상량문을 지어주는데, 가족과 가문의 화합, 부부의 화락, 제실 자손의 번성 등 가정 내 평안을 빌고, 백성의 갈망을 구제하고 위엄과 덕이 두루 미치는 국가 내의 평안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어서 온갖 이류들의 춤사위와 태평곡이 어우러진다. 거북과 잉어, 나무귀신과 도깨비, 비바람을 다스리는 조강신, 낙하신, 벽산신 등이 함께 용궁에서 잔치를 벌인다. 

이런 모습에 주안점을 두어 연구자들은 소설이 부동이화(不同而和)의 이상적 세계를 그렸다고 하기도 했고, 세종 대와 같은 이상적 세계를 그리려 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용궁부연록은 군신이 화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이는 조산본적(曹山本寂)의 오위군신(五位君臣)에서도 밝히는 겸중도(兼中到), 겸대(兼帶)와 같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화합하며, 덕화가 펼쳐지고 뭇 생령들을 환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유교의 군신 관계에 빗대어 임금은 폭군의 정치를 하지 않고, 신하는 하극상을 하지 않아 화합하는 것, 그게 겸대다. 용궁 잔치는 겸중도에서 말하는 자유자재하며 이류중행(異類中行)하는 경지 그대로를 보여준다. 뼈와 살을 나눈 이들이 골육상쟁을 벌이는 현실 사회에 대한 채찍을 들어 보이는 소설이다.

김시습은 <십현담요해>에서 삶과 죽음에 꺼둘리지 말 것이며, 중도(中道)니 겸대니 하는 것에도 머물지 말라고 했다. 좁고 누추한 거리로 다니는 경지인 겸대마저도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한생이 용궁에서 갖고 온 야광주는 존귀한 깨달음의 세계를 빗댄 것이다.

김시습은 <조동오위오해>에서 금옥(金玉)을 가리켜 정위(正位)의 존귀함을 비유한 것이라 하고 있다. 한생은 그 야광주를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했는데, 그것이 깨달음인 것이니 실제로 보여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야광주를 지니고 현실 속에 살다가 주인공은 명산에 들어가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복사저포기’와 같이 부지소종(不知所從)이라 했다.

역시 깨달음을 얻은 자가 행하는 자유자재한 삶의 모습, 그것은 “깊은 계곡 봄이 와 맑은 물 흐르는데/ 지팡이를 짚고서 낚시터를 거니네./ 좋을시고 일 없이 태평한 나그네여/ 멱라수만 반드시 맑다고는 말 못하리”(‘사부산십육제-평상’)의 자유인일진저. 온갖 분별심(分別心) 놓아버리면 강은 강일 테요, 산은 산일 텐데, 오늘도 그대와 나는 야광주 팽개치고 헤매어 다니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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