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더불어 오신 부처님 ‘자등명 법등명’ 가르침 남겨”

‘개시오입’하려 세상에 출현
49년간 중생위해 중도 설해

중생 제도한 방법 또한 수행
근기 맞게 실천해 지혜 얻길

가려서 버리는 건 불교 아냐
상대적인 것 초월할 수 있어

남의 고통 내 고통으로 인식
처음에는 어렵지만 극복해야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증일아함경>19권 ‘등취사제품’을 보면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는 것을 일출에 비유했다. 해가 떠오르면 어둠은 사라지고, 온 세상을 두루 밝게 비추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면서 무명 속 중생들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에 신음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부처님 자비광명의 빛이 간절하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4월16일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영진스님에게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와 코로나 정국에서 우리의 마음자세에 대해 법을 청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4월16일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영진스님을 만났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지혜를 완성하고, 모든 이웃을 위해 깨달음을 회향하는 것으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 스님은 불자들에게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김형주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4월16일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영진스님을 만났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지혜를 완성하고, 모든 이웃을 위해 깨달음을 회향하는 것으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 스님은 불자들에게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부처님오신날을 한문으로 하면 여래(如來)다. 여래여거(如來如去) 여여히 오셔서 여여히 가신 것인데, 부처님께서 진리와 더불어 오셨다는 뜻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개시오입(開示悟入)’을 통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의미를 설한다.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開) 청정하게 하고, 지견을 보이고(示), 깨닫게 하고(悟), 불지견의 도에 들어가게(入) 하려고 세상에 출현했다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우리가 불성을 갖춘 존재라는 것을 수행을 통해 가장 먼저 깨달으신 분이다. 부처님은 자신 홀로 높이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일찍이 모든 생명은 본래부처로 불성을 갖고 있으며 불성은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분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수행이었다. 특정한 대상에게 구원을 받는 다른 종교와 달리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스로 수행하라고 했다. 누군가 나대신 밥을 먹어줄 수 없듯, 수행도 해줄 수 없다. 출가해 지금까지 선원에서 정진해온 영진스님은 “수행을 통해 내가 본래부처라는 것을 깨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참선을 강조하는 이유는 깨달음으로 가는 첩경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참선만 답은 아니다. 스님은 “수행법은 다양하다. 포교를 하고, 종단 소임을 보고, 가람을 수호하고, 율원에서 계율을 지키고, 부처님 경전을 배우고 익히고, 육도만행이라고 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또한 수행”이라며 “각자 인연에 따라 맞는 수행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각을 얻으신 부처님은 49년 동안 중생들에게 중도의 진리를 설하셨다. 영진스님은 중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옛 어른들이 모내기를 하고 벼를 추수할 때까지 88번 손이 간다고 했다. 그만큼 시간과 정성, 땀을 쏟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합쳐져야 벼가 익는다. 인간의 측면에서는 쌀이 소중하지만, 벼에 입장에서는 입도, 줄기도, 뿌리도 다 필요하다. 벼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가치가 동등하다. 우리는 그 중에 쌀만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전체를 아울러 보는 게 중도이고, 불교가 바로 그것이다. 불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버린다는 것은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가려서 버리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싫으면 버리고 좋으면 갖지만 싫고 좋고를 구분하고 비교하다보면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교하지 않고 상대적인 것을 초월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중도이다.”

중도와 함께 부처님은 연기를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하신 말씀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도 멸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인들은 코로나사태를 통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법을 절실하게 체득하고 있다.

처음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생했을 때만해도 남의 일처럼 여겼지만, 순식간에 세계로 전파됐고 곧 자신의 일이 됐다. 병이 전파되고, 사회가 멈추면서 기업과 소상공인, 가계경제까지 어려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 연기적 관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스님 역시 “어떻게 2600년 전에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을까 새길수록 가슴에 와닿는다”며 “온 지구촌이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 말씀이 진리 중에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 연기법이야말로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가르침”이라고 설명했다.
 

영진스님은 불자들에게 “내 원망을 남한테 돌리지 말고, 스스로를 관해보라”고 당부했다. 김형주 기자
영진스님은 불자들에게 “내 원망을 남한테 돌리지 말고, 스스로를 관해보라”고 당부했다. 김형주 기자

수행을 통해 지혜를 완성하라고 말씀하신 부처님은 여기서 머무를게 아니라 완성한 지혜를 이웃을 위해 회향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스님은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하는 이유는 지혜가 완성된 즉시 자비가 실현되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오신 진정한 의미는 ‘자등명 법등명’에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밝히는 것은 지혜의 완성이고, 진리의 등을 밝히는 것은 자비의 실현”이다. 결국 우리는 수행을 통해 지혜를 완성하고, 모든 이웃을 위해 깨달음을 회향하는 것으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진리의 등은 어두울수록 밝게 빛난다. 환한 낮에 등을 켜봐야 별로 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등을 켜면 달라진다. “고통 받는 이웃들, 소외된 곳을 찾아가 진정한 자비의 등을 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자라면 어려울 때일수록 자비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며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데 가까운 이웃들을 따뜻하게 살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사찰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국 사찰들은 두 달간 초하루법회를 취소했고,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한 달이나 연기했다. 100여 개 선원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의미로 하안거 결제를 윤4월 보름으로 미뤘다. 초하루법회를 취소한 것이나 선원이 동시에 결제를 미룬 것 역시 불교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다.

스님은 “부처님오신날도 중요하지만 동안거, 하안거 결제는 한국불교 정체성을 규정할 정도로 중요한 수행가풍”이라며 “2000여명 수좌들이 하안거 결제를 한 달 미뤄 3개월 정진을 하기로 한 것은 배려하고 양보해서 국난을 극복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스님들이 어려움을 감내하며 국민들과 함께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는 코로나19가 공업(共業)으로 비롯됐다는 책임감과 함께라는 공동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님은 “조계종단과 소속 사찰 스님들은 보시금을 반납하고, 불교의 가장 큰 행사인 부처님오신날과 하안거 결제도 연기했는데, 불교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불교가 넉넉해서가 아니라, 어려울 때 고통을 나눈다는 의식의 발로”라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외출을 삼가고, 다른 사람 앞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는 마음에서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물론 부주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를 쏟아낸다. 스님은 “이럴 때일수록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하며 화를 내면 그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화는 결코 밖에서 오지 않는다. 화가 밖에서 온다고 책임을 떠넘기면 사라지지 않는다. 화는 내 마음속 불만이 타인의 행동과 더해져 분출되는 것이다.

욕하고 삿대질하는 순간에는 시원할지 모르지만 돌아서면 공허하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미워하는 사람만 괴롭다. 상대는 내가 미워하는지도 모르는데 혼자 화내는 것만큼 소모적인 일도 없다. 스님은 “작은 불씨가 온 우주를 태우는 것처럼 화는 사람을 망가뜨린다”며 “결국 배려와 양보만이 해답”이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은 공업으로 빚어진 것이다. 개발을 우선하고, 욕망만을 좇으며 살다보니 지구환경이 파괴됐고, 그 부작용이 바이러스의 역습으로 나타났다. 개발 위주로 살고, 편리함에 익숙하다보니 조금의 불편함도 이기지 못 하는 요즘 세태를 지적한 스님은 “혹시 사회가 이렇게 되는데 우리가 일조하지 않았나”하고 돌아봐달라고 당부했다.

또 “절제된 언어, 행동은 물론 물질을 소비하는 행태도 달라져야 한다”며 “내가 능력 있다고 향락, 유흥에 에너지를 쏟지 말고 이웃을 위해 사용하자”고 말했다.

해제 후 코로나19로 인해 약속했던 법회들이 취소돼 결제 때보다 시간이 많아졌다는 스님은 백담사 주변을 포행하며 생각을 챙긴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코로나19가 종식돼 세상이 정상화됐으면 하고 발원하면서 내면을 돌아본다고 한다. 불자들에게도 “내 원망을 남한테 돌리지 말고, 스스로를 관해보라”고 당부했다.

“불교에서는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다. 한마음 돌이키면 보리이다.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라고 인식하면 된다. 처음엔 물론 잘 안 된다. 화도 나고 남 탓도 하겠지만,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이다. 아름답고 추한 것을 차별하지 말고 길고 짧은 것을 차별하지 말고 한 모습으로 봤으면 좋겠다. 비교하지 않으면 고통은 사라지고, 상대적인 것을 초월하는 삶이야말로 중도다.”

인제=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3580호/ 2020년 5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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