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랑’ 동국대학교병원 투병 · 간병 수기 공모전
[감동상 수상작] ​​​​​​​윤만규 ‘아내의 꿈’


꿈 실현 앞두고 여행 중 사고
2차 뇌수술 후 베트남서 후송
기억상실 정상회복불능 ‘후유증’
“빙그레 웃어주는 아내 그리워”

두려웠다. 자신이 없었다. 아내를 봐야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얼마나 망설였는지 기억조차 없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아내를 마주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베트남에서의 뇌수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뇌수술 후 처음으로 수술 부위의 붕대를 제거한 아내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머리가 심하게 함몰돼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난 베트남 하롱베이 병원의 병실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이렇게 힘든 수술을 견뎌내고 아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 같았고, 이 기적이 오래가지 못하고 아내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너무나도 무서웠다. 
 

미용실을 여는 것이 꿈이었던 윤만규 씨의 아내는 창업 구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업계 종사자들과 베트남 여행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국내 후송 후 동국대일산병원에서 수차례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았다.
미용실을 여는 것이 꿈이었던 윤만규 씨의 아내는 창업 구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업계 종사자들과 베트남 여행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국내 후송 후 동국대일산병원에서 수차례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았다.

아내의 꿈은 미용실을 여는 것이었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온 아내는 미용업 종사자들과 함께 여행겸 창업구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2018년 12월 베트남 여행을 갔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일행과 하롱베이 야시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일행 4명 중 아내가 가장 많이 다쳤고, 나머지 세 사람 중 두 사람도 중상이었다.

아내 사고 소식을 들은 건 12월6일 아침 출근길이었다. 하롱베이의 한 병원에서 뇌수술 동의를 요구하는 문자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긴급수술에 동의하고, 오후 베트남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사고이기에 긴급하게 뇌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롱베이 바이짜이 병원에서 마주한 아내의 모습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쳐다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뇌출혈로 인해 긴급 뇌수술을 했고, 코뼈와 광대뼈 함몰, 골반뼈와 다리 골절, 눈과 가슴 부상 등 전신 부상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병원 옥상에 올라가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내 수술을 한 병원은 우리나라 70년대 수준이었다. 아내를 맡길 수 없었다. 난 아내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았다. 의료수준이 더 낫다는 하노이의 프랑스 병원(비엣팝)으로 옮겨서 얼굴과 코뼈 등 다른 부상에 대해 2차 수술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수술한 지 8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콧줄로 인공호흡을 하다보니 폐가 나빠져서 목관으로 호흡하는 수술을 하고 배에 구멍을 뚫어 음식물을 투여하는 수술까지 하게 됐다. 아내가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곳 의료진들은 아내가 언제 깨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깨어나더라도 정상 회복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난 아내에게 힘을 내라고 계속 말했다. 우리 가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들려주면서 나는 울면서 따라 불렀다. 아내에게 내 사랑이 전달되고, 그래서 아내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날이 밝는 것이 두려웠다. 아내를 보는 것이 두려웠고, 아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엄마의 사고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혀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아내의 치료를 위해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만 하는 일들이 두려웠다.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 아내를 한국으로 데려와서 의료수준이 높은 한국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갈 때까지 버티자고 다짐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견뎌야 했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복잡한 절차를 다 밟아야 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하노이 한인회와 현지 사업가, 한국인 교회 지인 등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박항서 감독과 함께 있는 이영진 코치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아내의 한국행이 결정된 것은 12월24일, 사고 후 18일만이었다. 환자의 국외 이송을 위해서는 우선 환자의 몸상태가 항공기를 탈 수 있어야 하고,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의료진, 그리고 충분한 좌석이 확보되어야만 했다. 구급 비행기를 알아봤지만 베트남에는 없고 필리핀 비행기가 가능했는데 3억5000만원이나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 병원비 6000만원에, 비행기 전담 의료진 비용, 하롱베이 병원비와 체류비용, 통역비 등 1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가면서 재정적으로도 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내는 12월27일 한국에 도착했고, 곧바로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했다. 동국대 일산병원의 송혜정 수간호사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인연으로 나는 동국대병원을 택했고, 양·한방 협진을 받으며 이곳에서 6개월 가량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함몰된 머리 부분은 인공뼈 수술을 했고, 광대뼈와 코뼈 성형 수술도 했다. 동국대병원 의료진 역시 프랑스 병원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내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내는 살았고,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동국대병원에서의 투병생활 역시 쉽지 않았다. 뇌수술 후 아내는 난폭해졌다. 활달한 성격에 친구도 많고 적극적이었던 아내가 변한 것이다. 밤에 병실을 나와서 집에 가겠다고 택시를 타려고 한 적도 있고, 이를 말리는 간호사들에게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뇌수술의 부작용이었다. 정신과 약물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안정이 됐으나, 이전의 아내로 돌아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내가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한 것은 2019년 3월이다. 목관을 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회복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동국대병원 재활의학과 이호준 교수님도 상당히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며 함께 기뻐해 주셨다. 암담했던 현실이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잘 극복해 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아내는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잘 몰라 달력을 보고 계절을 왼다. 

계산을 하지도 못하고 물건을 살줄도 모른다. 아내의 기억 한 편이 사라진 것이다. 많은 수술과 재활 과정을 거치면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간호사 안내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거나, 약 복용도 거부하고, 손톱을 깎으려 하면 완강히 저항하는 등의 트라우마 행동들이 나타났다. 지금도 약은 갈아서 밥에 섞어 먹게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는 일상을 되찾았다. 평범한 대화는 가능하고 단답형이었던 대답도 지금은 문장으로 한다. 감정도 공유가 가능해졌고, TV에서 연애장면이 나오면 나와 연애했던 시절을 기억하기도 한다. 나와 아이들(26세 딸, 22세 아들)은 아내이자 엄마의 재활훈련을 돕고 있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해서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을 받게 해보고,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고 카드로 계산하게도 한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낌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일상적인 느낌들을 서로 나누며 공유하려고도 한다. 친척과,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해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주려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아내 사고 이후 1년 간 써온 일기는 아내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보여주려고 한다. 

아내가 미용실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고, 사고 이전으로 아내를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내를 다시 되돌리고, 되찾을 것이다. 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아내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내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느 한가한 저녁, 미용실 문을 닫으며 나를 보고 빙그레 웃어주는 아내가 보고 싶다!

[불교신문3578호/2020년4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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