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국보 지정 예고까지 과정

보물 제410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국보가 된다. 지난 1964년 보물로 지정된 지 56년만이다. 문화재청은 4월23일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국내에 유일하다”며 수마노탑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4월21일 직접 찾아가 본 수마노탑. 자장율사가 창건한 적멸보궁 중 한 곳인 정선 정암사 산기슭에 세워져 있다. ‘사리신앙’과 ‘산천비보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 후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유일 석회암으로 만든 진신사리 봉안탑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국보로 승격된다. 4월21일 수마노탑 앞에서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이 예를 올리고 있는 모습.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세계 유일 석회암으로 만든 진신사리 봉안탑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국보로 승격된다. 4월21일 수마노탑 앞에서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이 예를 올리고 있는 모습.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탑 앞에 서면 적멸보궁을 비롯해 도량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재질과 형식 등에서 가치가 뛰어나다. 먼저 화강암 재질의 여느 탑과 달리 석회암 중에서도 강도가 가장 센 돌로마이트(dolomite, 고회암)로 조성됐다. 정선 지역이 석회암 지대라는 지역 특성이 반영된 셈이다.

또한 ‘모전석탑(模塼石塔,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은 탑)’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고회암을 일일이 갈아 만든 3010매의 벽돌을 9m 높이로 쌓았다. 모전석탑 계열의 탑 중에서도 기단에서 상륜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형적인 안정감과 입체감, 균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형적인 모습 이외에도 수마노탑의 진가는 돋보인다. 1972년 실시된 해체 보수 당시 사리 장엄구와 함께 탑의 건립 이유와 수리 기록 등을 적는 ‘탑지석(塔誌石)’이 발견됐는데, 이는 한국 조탑 기술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탑지석 등을 통해 보수시기와 범위, 공사기간, 참여인원, 시주자 등 세부적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런 자료가 전하는 사례는 수마노탑이 유일하다. 또한 경주 불국사 석가탑, 다보탑과 함께 탑의 명칭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점이 희소성을 높이고 있으며, 중수과정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탑 중 하나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수마노탑이 국보 승격을 이루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정암사와 정선군은 앞서 2011년과 2013년 승격을 추진했지만 지정 가치가 미흡하다는 문화재위원회 결정으로 번번이 부결됐었다.

“건립 연대를 추정하기 어렵다” “배례석이 탑과 직접 관련을 입증할 수 없다”는 등의 부결 이유를 들었는데, 이에 대해 당시 문화재 전문가들은 “대다수 국보와 보물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면서 “국보 승격의 타당성과 당위성이 저평가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과 정선군은 포기하지 않고, 내실 있게 국보 승격을 재추진했다. 문화재위원회에서 나온 부결 사유에 대해 전문가들의 학술 논문을 중심으로 보완 자료를 준비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수마노탑 가치 연구에 대한 4차례의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2018년엔 정암사 수마노탑 종합학술자료집을 단행본을 발간하며 대내외적으로 탑의 가치를 알리는데 공을 들였다. 

2013년에 정암사 수마노탑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며 역사적 고증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2018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정암사 전역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등 문화재적 가치와 위상을 확인하고 정립하기 위해서도 매진했다. 정암사 자체적으로도 지난해 8월 ‘수마노탑 국보 승격을 위한 백일기도’를 봉행하고 총무원 측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쳤다. 

신도와 불자뿐만 아니라 정선군 9개 읍·면 주민들, 지역의 100여 개 사회단체들도 한 마음으로 수마노탑의 국보 승격에 힘을 보탰다. 거리마다 ‘승격 발원’ 현수막을 게시했다. 이웃 종교인 개신교와 천주교 측에서도 이 같은 활동에 함께하며 의미를 더했다. 서명운동에 총 5만 명이 동참하는 등 국보 승격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결국 2전3기의 도전 끝에 국보 승격의 결실을 맺게 됐다. 이제 5월22일까지 의견 수렴 및 검토가 끝나면 국보로서 위용을 뽐낼 전망이다. 
 

인터뷰  정선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

“국보 수마노탑 중심으로 
새로운 수행·문화공간 만들 계획”

천웅스님
천웅스님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어려울 때 마다 많은 불자와 정선 군민들이 한 마음으로 응원해 주시고 도움을 줬습니다. 이 모든 원력이 모아져 10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수마노탑이 마침내 그 가치가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국보승격 소식이 전해져 더 없이 기쁩니다.”

수마노탑의 국보 승격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노력한 정선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 하지만 스님은 이와 같이 소감을 밝히며, 국보 지정 예고를 이루기까지 모든 공을 불자들과 주민들에게 돌렸다. 특히 스님은 본인 일처럼 노력해준 최승준 정선군수을 비롯해 5년간 실질적인 업무를 맡으며 수마노탑 국보 승격에 애를 쓴 군청 문화재 담당 실무자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수마노탑 국보 승격 의미를 스님에게 묻자 “불자들과 군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줬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마노탑은 불자뿐만 아니라 정선 군민과 국민들의 정신적 귀의처 역할을 해왔다”며 “특히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탑이 나라에서 인정하고 보호하는 국보가 된다는 점이 뜻 깊다”고 역설했다.

천웅스님은 국보 승격 이후 계획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아직 예고 기간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생각은 간결하고 뚜렷했다. ‘국보’ 수마노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행·문화 공간 조성이다. 바탕엔 침체된 지역 분위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마음도 담겨있었다. 

“해방이후 석탄 광업으로 정선지역은 호황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영향으로 폐광 이후 경제적으로 위기를 맞게 됐죠. 관광산업으로 활로를 뚫고 있지만, 여전히 정선은 인근 지역에 비해 인프라가 미흡한 실정입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수마노탑이 국보 승격이 확정 된다면, 이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정선 아리랑’과 함께 유·무형 문화재를 모두 갖춘 국보급 역사 도시로 변모할 것으로 기대했다. 

코로나19가 지금보다 안정세에 접어들면, ‘국보 승격 기념 대법회’ 봉행과 다채로운 수행·문화 프로그램 실행도 구상 중이다. 지난해 개통한 자연친화적 생태탐방로인 ‘정암사 자장율사 순례길’을 활용한 명상 공간을 마련하고, 참배하러 온 불자와 시민들을 위한 휴게 공간도 새로 건립할 예정이다. 이어 스님은 “현재 여러 세부 계획을 군청과 함께 협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수마노탑이 지닌 가치가 널리 알려지고, 지역을 찾는 분들이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며 “언제나 그랬듯 소임을 맡은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선=이성진 기자 sj0478@ibulgyo.com

[불교신문3578호/2020년4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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