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고’의 시작인가, 연화장세계 건설인가

“스마트시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은 “스마트시티가 어떤 도시가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다.”
- 앤서니 타운샌드
 

 

보일스님
보일스님

➲ 블록체인과 스마트 시티 

“선거투표도 집에서 하면 안 되나?” 엊그제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사전 투표를 했다. 혹시 붐비지나 않을까 해서 아침 일찍 해인사 일주문을 나섰다. 인적도 없고 조그마한 마을인데도 투표소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적잖게 헤매었다. 어르신들도 찾기 힘드실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겨우 찾아낸 투표소로 들어서니, 손 세정제와 비닐장갑이 나를 기다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벌어진 진풍경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도 주변에서 바뀌지 않은 풍경이 있다면 아마 투표장 풍경일 것이다.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줄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각자 민주시민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뿌듯함에 SNS에 올릴 ‘인증샷’을 연신 찍어댄다. 언제까지 이렇게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들까지 직접 투표소에 나와서 투표를 해야만 하는지, 요즘처럼 전염병이 심각한 때에는 말할 것도 없다. 

투표소 입구 길목에는 5G 시대를 알리는 모 통신회사의 광고 현수막이 힘겹게 걸려있었다. “일상을 바꿉니다.”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다. 미안하다. 우린 아직 안 바뀌었다. 그런데 실제로 투표소에 가지 않고도 투표를 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에스토니아이다.

에스토니아에서는 국민들에게 전자신분증을 발급해서 인터넷으로 전 세계 어디서든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전자투표를 선거제도에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이 방식대로라면, 아침 일찍 힘들게 투표소에 갈 필요도 없고, 요즘 같은 시절에 투표하면서 비닐장갑까지 낄 이유는 전혀 없다.

그저 각자 가진 휴대폰만 있으면 된다. 원격으로 화상을 통해 수업도 받고 병원 진료 상담도 받는 시대에 투표만을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스마트 시티’가 구현되는 과정상의 어려움은 기술의 문제보다도 수많은 규제 속에 갇힌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넘어서는 문제가 더 클 것이다. 

➲ 무엇이 다른가

세상 사람들 상당수는 이미 도시에 모여서 살고 있다. 도시가 발전하다 보면 살기 좋은 곳이 되어 가는 것은 당연한데, 왜 하필 ‘스마트시티’가 새롭게 의미를 가지는가? 지금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어 있다. 대답은 한 마디로 ‘데이터’이다. 또 ‘데이터’이다.

사실 ‘스마트 시티’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 2000년대 초반에는, ‘유비쿼터스 시티(Ubiquitous Cit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미 이마저도 추억 속의 이름이 되었지만, 아마 기억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구상은 ‘스마트 시티’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초기에는 CCTV를 중심으로 한 도로교통과 방범, 안전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도시 운영 시스템을 체계화한다는 구상 정도였다.

그러다 인공지능과 ‘딥 러닝’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바로 이 인공지능을 돌리는 원료나 다름없는 빅 데이터 기술로 이전의 구상보다 더 강력하고 더욱 더 광범위한 형태의 시스템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무선 정보통신, 자율주행, 전기, 가스등의 에너지 관리, 도로 등의 모든 관리를 데이터를 토대로 연결하고 다시 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그 과정 전체가 다시 알고리즘으로 되어 데이터로 활용된다.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시설물은 서로 연결되고 서로 통제하고 서로 보조하는데, 원격으로 이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은 아예 배제되거나 최소화된다. 결국 데이터가 이 ‘스마트 시트’를 제어하고 통제하게 된다. 개인이 가진 스마트 폰으로부터 시작해서 각 분야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데이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에까지 활용된다.

초기에 구상했던 ‘유비쿼터스 시티’ 단계에서는 주로 공급자 관점에서 이 사업에 접근했다면, 최근의 스마트 시티 사업은 수요자 관점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주로 도로나 항만, 공항 건설 등의 대규모 인프라 건설이나 서비스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면,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데이터 중심으로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이미 상용화단계에 들어선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기술이 개개인의 집 울타리를 벗어나 도시 전체로 확대해 나간다고 보면 된다. 집안에서 집주인과 냉장고, 조명설비, 인터넷, 난방 설비 등이 인터넷으로 모두 연결되어 작동되면서 데이터를 주고받듯이, 인간과 스마트 시티 전체를 구성하는 도로교통, 전기나 연료 등의 에너지 관리, 치안, 등의 모든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데이터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도시가 어디에 있든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연결되는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디지털 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시티’ 건설이 가속화 되고 있다. 이미 상용화단계에 들어선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기술이 개개인의 집 울타리를 벗어나 도시 전체로 확대해 나간다고 보면 된다. 집안에서 집주인과 냉장고, 조명설비, 인터넷, 난방 설비 등이 인터넷으로 모두 연결되어 작동되면서 데이터를 주고받듯이, 인간과 스마트 시티 전체를 구성하는 도로교통, 전기나 연료 등의 에너지 관리, 치안, 등의 모든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데이터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도시가 어디에 있든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연결되는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디지털 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시티’ 건설이 가속화 되고 있다. 이미 상용화단계에 들어선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기술이 개개인의 집 울타리를 벗어나 도시 전체로 확대해 나간다고 보면 된다. 집안에서 집주인과 냉장고, 조명설비, 인터넷, 난방 설비 등이 인터넷으로 모두 연결되어 작동되면서 데이터를 주고받듯이, 인간과 스마트 시티 전체를 구성하는 도로교통, 전기나 연료 등의 에너지 관리, 치안, 등의 모든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데이터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도시가 어디에 있든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연결되는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소유에서 공유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그의 책 <소유의 종말>에서 미래에는 더 이상 소유가 필요하지 않고,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예견했다.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임시로 연결해 접속하고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욕망하는 인간이 과연 소유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스마트 시티에서도 이와 유사한 변화를 예상한다. 스마트 시티의 시대에는 소유보다는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바뀐다고 한다. 인간들이 갑자기 착해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어째서 스마트 시티에서는 소유보다는 공유가 우선시될까. 구체적 실례로, 자율주행 자동차를 들 수 있다.

자율주행차량은 주변의 차는 물론 도로나 여타 스마트 시티 인프라와 연계되어 있고 자율주행차량은 끊임없이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운행한다. 이처럼 자율주행차량이 주변 모든 것과 연결되는 차량운행기술을 ‘V2X(Vehicle to Everything)’라고 한다. 소위 ‘커넥티드 카’는 바로 이 V2X 기술을 통해 연결되는 것이다. 마치 기차가 여러 량이 연결되어 달리듯이 여러 대의 자율주행자동차 여러 대가 마치 한 대의 기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군집 운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교통은 더욱 안전해지고, 연료비는 10% 이상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다 서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해, 차량 간 통신뿐만 아니라 차량과 도로 인프라 사이에도 ‘V2I(Vehicle to Infrastructure)’라는 통신기술이 적용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통사고 등의 돌발 상황에 대한 해결을 위해 ‘차세대 첨단교통 체계(C-ITS Cooperative-Intelligence Transport System)까지 등장했다. 차량 및 차량 주변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실시간 교통신호는 더욱 정교해진다. 단순히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호등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인근 지역의 교통량과 돌발상황 등을 알고리즘을 통해 신호등이 탄력적으로 조정되는 것이다. 차량흐름은 이전 보다 15% 이상 빨라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혁신 기술들은 결국 차량 소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 도시에 살면서 꼭 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이다. 이처럼 시간과 비용을 현격히 줄일 방법이 있는데도 소유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 시티가 필요로 하는 선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도시 면적의 30%가 주차공간이라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스마트 시티를 구상하고 건설한다고 해도 30%는 그냥 낭비되는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새 차를 구입하고 나서부터 실제 운행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자동차 전체 수명의 4%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6%의 시간은 그냥 주차된 시간이다.

어쩌면 차량 공유시스템은 스마트 시티를 우리 눈앞에 펼쳐놓기 위한 스위치와도 같다. 물론 소유에서 공유로 전환되어 가는 양상은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 콘텐츠, 의류, 예술품, 건물 등을 가리지 않는다. 비효율적 소비라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기존의 소유양식을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 스마트도시 생활 마냥 행복할까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드론이 하늘을 누빈다. 날씨는 항상 봄처럼 따뜻해서 춥지도 덥지도 않다. 미세먼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 시티 관제센터에 있는 인공지능 센서는 실시간으로 미세먼지의 발생과 유입을 지속해서 실시간 파악하면서 공기정화를 한다. 도시는 항상 인간에게 최적의 삶의 조건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도시에 살게 될 우리는 마냥 행복할까. 스마트 시티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인 디지털 격차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자본주의처럼 한번 벌어지면 계속 벌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이 불평등의 본질이다.

디지털 격차는 바로 빈부격차를 의미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디지털 계급사회가 출현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만만치 않다. 스마트 시티가 디지털 소외계층에 의해 슬럼화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가능성은 지금보다도 더 커질 것이다. 디지털 정보화 역량이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제로 프랑스 파리시에서는 2017년부터 ‘디지털 포용(inclusion numérique)’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디지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낮은 디지털 정보화 역량이 도시빈민을 양산할 수 있는 당면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스마트 시티의 매혹에만 눈이 팔릴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에도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

<화엄경>에서 설하기를, 연화장세계는 티끌 수 보다 많은 세계가 20중으로 중첩된 중앙세계를 중심으로 하여 111개의 세계가 그물망처럼 얽혀서 세계망을 구성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 세상의 핵심은 바로 초연결로 상징되는 연기법일 것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중생들의 고통과 행복도 이처럼 서로 데이터로 연결되어 연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세계가 또 다른 지옥이 될지 연화장 세상이 될지는 그 곳의 주인이 될 우리 마음에 달려있다. 

[불교신문3575호/2020년4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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