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만끽한 고즈넉한 산사
지난 40여일 사회격리가 갖다준
뜻밖의 선물…고요 휴식 여유

그러나 전염병 인한 사고여서 문제
빨리 끝나 아이들 밝은 모습 보기를

정운스님
정운스님

며칠 전 선운사를 다녀왔다. ‘코로나19’에 온통 정신이 팔린 사이 봄꽃은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적매입니다.’ ‘나는 홍매입니다.’ ‘나는 동백꽃입니다.’ 이름을 불러달라는 듯 고즈넉한 산사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소리가 쉼 없이 울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일까? 여느 때 같으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상춘객에 밀려 절이 주는 고요하고 아늑함은 느끼지 못하고 서둘러 참배만 하고 돌아왔는데 그 날은 예전 절집 분위기를 마음껏 누렸다. 발걸음 옮기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 이런 날이 예고 없이 찾아올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절집은 사람이 아니라 바람과 물, 새와 나무가 주인이다. 이들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가 절집 소리다. 인간은 입 닫고 주인이 내는 소리를 듣는 자 만이 그 축에 들 수 있다. 묵언수행은 그런 점에서 자연이 마련한 자리에 앉을 권리를 부여받는 자격증인지 모른다. 

주인인 자연이 밀려나고 객인 인간이 차지하였으니 요즘 산사를 다들 못마땅하게 여기나 보다. 습관이 무섭다더니 처음에는 못견디게 싫더니 적응했다. 적요(寂寥)하던 절 집 분위기는 잊었다. 절 문 앞까지 차가 들어오고 관광객이 몰려와 주인행세를 하니 주지스님 역할도 손님 대접으로 바뀌었다.

초발심 시절 은사님과 선배 스님들로부터 세상을 버리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라고 배워 열심히 익혔더니 떠나온 세상이 밀고 들어왔다. 변화된 절 집에서 나도 참 적응 잘하며 살아온 듯하다. 다양한 도구를 지니고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본다. 이게 뭔 일인가 이렇게 살려고 출가한 것이 아닌데 갸우뚱하면서도 건사해야할 사람이 있고, 부여받은 책임도 적지 않아 어느 정치인이 한 말 대로 ‘자의반 타의반’ 떠밀리듯 걸어왔다. 

바뀐 절집, 달라진 내 역할이 당연하다 여겼는데 지난 40여 일은 원래 내 모습을 일깨웠다.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모임은 커녕 밥도 함께 먹지 말라는 금족령이 출가하면서 꿈꿨던 삶으로 데려갔다. 선운사 순례는 그 속에 얻은 행운이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 없다. 고요하고 아늑한 옛 절집 분위기는 우리의 자정 덕분이 아니라 바이러스로 인해 불가피하게 생긴 ‘사고’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유례 없는 사고여서 더 그렇다. 직원들도 처음에는 좋아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 했다. 일상을 멈추고 사람과 단절하니 바이러스는 잡혀가는데 무기력 불안 심리가 사람들 사이에 급속히 전파되는 것 같다.

바이러스 방역은 질병관리본부가 한다지만 직원들 불안 심리는 내가 다스려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다스릴 생활수칙 네 가지를 제안하고 나부터 실천했다.

그 첫머리는 체력이다. 홀로 격리돼 있는 상태가 오래되면 무기력해지고 몸 상태가 나빠진다. 체력도 단련하면서 사람과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으로 산행이 좋다. 매일 오후 2시간 산행을 했다. 정신 건강도 챙겨야 한다. 평소 바빠서 보지 못한 영화보기 독서가 제격이다.

그 다음은 업무점검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밀린 업무가 빚쟁이 마냥 따라올 것이 뻔하다. 연초 세웠던 사업계획을 점검하고 틈틈이 챙겨야 한다. 지역 문화를 책임지는 공공기관으로서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아웃리지 사업’ 일환으로 코로나19 예방 길거리 캠페인 했다. 

사상 초유의 벚꽃 개학을 맞았다. 모처럼 맞이한 여유, 세상과 단절이 가져주는 기쁨을 빼앗긴다 해도 아이들이 우선이다. 아이들은 우리 센터의 가장 우수한 고객이다. 학교가 문을 열고 센터가 활기를 찾을 때 활짝 핀 벚꽃과 함께 최상의 서비스로 맞이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불교신문3572호/2020년4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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