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묵묵히 부처님 길을 걷는 수행자일 뿐”

바랑 하나 들고 길 위에서 방황하던 세월
출가 후 수행자로서 진리 탐색 밑바탕 돼
사성암 주지 부임 후 10년치 불사 일구며
중앙과 지역 등에서 활동하며 두각 보여

사성암 주지 대진스님을 3월26일 만났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신제를 올리기 위해 암자를 찾은 신도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대진스님은 중앙종회의원으로서 날카로운 지적을 주저 없이 하면서도 사성암 주지로 사격을 일신우일신하는 데 두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사성암 주지 대진스님을 3월26일 만났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신제를 올리기 위해 암자를 찾은 신도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발걸음 이었다. 대진스님은 중앙종회의원으로서 날카로운 지적을 아낌없이 하면서도 사성암 사격을 일신우일신하는 데 두각을 보이고 있다.

운무가 휘감은 지리산 끝자락 오산에 오른다. 한차례 비가 훑고 간 길, 미끄럽고 흙탕물이 튀는 거추장스러움에도 이른 아침부터 사성암을 찾는 발길이 솔찬하다. 흐트러짐 없이 머리를 다듬고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백발의 신사부터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암자 곳곳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 기도를 올리는 중년 부부까지.

산신제가 있던 326,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명당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절을 찾는 객들을 누구보다 반갑게 맞이한 건 스님들 기도 소리다. 사성암 주지 대진스님이 부전 스님들 기도 소리에 맞춰 염불을 욌다. 백두대간 기운이 흐르는 오산 곳곳 절벽마다 기도 소리에 가피와 영험이 흐르는 듯 했다.

주지 대진스님 기운이 사성암과 닮았다 느낀 건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부터다. 초선의원 답지 않게 다선의원들 앞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지난해 네차례 걸친 중앙종회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발언하는 모습이 깎아 지른 사성암 절벽만큼이나 거칠고 날카로웠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은 삐죽한 벽 사이에서도 꼿꼿이 자리하고 있는 암자와 닮아 있었다. 알면 알수록 예상 밖인 건 그 모습들이 평소 대진스님이 들인 철학과 사색의 시간들에서 나왔다는 거다.

책장은 그 사람의 인생을 보여준다고 했다. 대진스님 책장은 동서양과 고전현대를 경계 없이 넘나들었다. 하이데거, , 플라톤, 니체 등 철학서적이 빼곡했다. 근현대 미술사를 다룬 책들도 구석마다 자리하고 있었다. ‘보다 이 먼저 일거라 지레짐작했는데 예상외라는 반응에 스님은 덤덤하게 말했다.

하하. 경허만공스님 책도 자주 봅니다. 철학,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불교라는 하나의 큰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되 어느 한 분야를 한정 짓지 않고 관념을 확장하고 축소해보려고 해요. 생각이 다르고 논리가 다 다른데 내가 옳다고만 할 수만은 없는 일이잖아요. 내 생각이 먼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독서가 마침 훈련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세계 수많은 스승들이 주는 깨달음 속에서 배우며 사는 일이 얼마나 설레는지 몰라요.”

지금이야 중앙종회의원에 사성암 주지로 중앙과 지역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님은 길 위에서 떠돌 듯 살았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태명 세례까지 받은 몸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기 내내 삶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스님은 말했다. “불교와의 인연은 도피에서 시작됐다.

대학시절, 지리산과 인연이 됐죠. 숨어들 듯 천은사 한 암자에 들어왔는데 그 때 스님들을 보면서 막연한 동경이 생겼던 것 같아요. 출가를 하면 뭔가 내 삶의 송두리째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그 때는 출가할 생각은 못했어요. 산중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화엄사와 인연이 돼 출가했죠.”

산중 생활을 하다 1996년 정식으로 계를 받았지만 10여 년을 표류했다. 선원에서, 중앙승가대에서 체계적 교육과정은 따랐지만 내적으론 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솟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바랑 하나 메고 전국을, 해외 곳곳을 돌았다. 수행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채찍질하며 담금질한 세월, 그 방랑의 시간이 아깝지 않게 숨겨둔 내공이 폭발하는 요즘이다.

대진스님은 본사에서도 알아주는 기획통()이다. 화엄사 성보박물관장 시절, 전시 공간이 필요한 지역 예술가들을 초청해 경내를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절을 찾지 않는 젊은 세대와 예술가, 지역민을 불러들이기 위해 박물관은 물론이고 보제루부터 오픈하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규모 가리지 않고, 주제 상관없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전시면 직접 섭외하고 기획했다. 지체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절에 가면 그림이고 사진이고 무료로 볼 수 있다더라는 풍문이 지역사회에 알음알음 퍼졌고, 화엄사가 어렵고 딱딱하기 만한 곳이 아니라 누구든 가볍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는 평들이 이어졌다. 홍매화 피는 시절, 각황전을 무대로 음악회를 열어 오페라가 흐르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도 대진스님이다. 화엄사 종책총괄특보라는 특별한 소임이 주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박물관장 소임을 맡기며 당부한 말이 있어요.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죠. 설득의 여지가 없었죠. 스님 말에 백번 동의했으니까요. 덕문스님 말처럼 저 또한 살아있는 불교가 되려면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어요.”

대진스님의 확고한 철학은 사성암에서도 이어졌다. “남들이 10년 만에 할 불사를 우리 스님은 2년 만에 했다는 종무소 종무원들의 말처럼 스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주지 부임과 동시에 입구부터 닦았다. 요사채로 쓰던 낡은 공간은 허물고 종무소를 새로 지었다.

절벽에 새겨진 약사여래불 보존이 용이하고 친견이 쉽도록 유리광전 해체 복원도 해냈다. “사성암을 불교 불모지라 일컫는 호남지역에 으뜸가는 기도처로 만들어 보자발원하며 주지 소임을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해낸 일들이다.

대진스님이 오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기도 소리. 규모가 크지 않은 사성암이지만 부전 스님이 4명 이상 반드시 상주한다. 유리광전, 53불전, 지장전, 신선각 등 4개 전각에선 기도 소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흐른다. 매월 음력 7일 유리광전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약사재일 철야정진을 하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아무리 법당이 잘 되어 있어도 기도 소리가 흐르지 않으면 신심이 나기 어렵다. 부처님 도량이라면 염불 소리가 흘러야 한다. 신도들 원력이 있어야 살아있는 절이라 생각한다.”

응공(應供)’. 대진스님이 늘 가슴에 새기는 말이다. “주인이 대접을 하는 사람입니까 대접을 받는 사람입니까? 주인은 대접을 하는 사람을 말하지요. 스님들이 시주로 먹고 산다 해도 받는데 익숙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 스님들이 대접받는 사람으로 돼 있는데, 늘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중생을 대접해야죠. 저는 그 방법이 법문이고 기도이고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S자로 감아 도는 물이 있으면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명당이라고들 한다. 지리산과, 구례 평야 그리고 섬진강이 삼박자를 이루면서 조화를 이루는 곳 오산 사성암. 호남 지역 둘도 없는 기도처이자 대중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친근한 사찰로 다가가기 위해 대진스님의 매일이 바쁘다. 그럼에도 뭐 하나 저 혼자 이룬 것이 없습니다는 대진스님이다. 말이나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스님의 모습에서 묵묵히 길을 걷는 수행자의 모습을 본다.
 

사성암 주지 대진스님을 3월26일 만났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신제를 올리기 위해 암자를 찾은 신도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대진스님은 중앙종회의원으로서 날카로운 지적을 주저 없이 하면서도 사성암 주지로 사격을 일신우일신하는 데 두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사성암 주지 대진스님.

 

대진스님은...
1996년 해인사에서 혜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2002년 직지사에서 녹원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중앙승가대를 졸업했으며 해운정사 등에서 6안거를 성만했다. 천태암 주지, 화엄사 성보박물관장 등을 역임했다. 구례 사성암 주지로 현재 제17대 중앙종회의원이다.

구례=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maha0703@ibulgyo.com

[불교신문3573호/2020년4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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