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안목 임제종풍’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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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스님

불법은 인생의 본원을 가리켜 보이고, 그 본원에 나아가야 하는 까닭과 방도를 설명한다. 곧바로 가리켜 사람의 본원심(眞心)을 일깨우는 것은 선(禪)이요, 본원심과 본원심을 가리고 있는 망상심(妄想心)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는 것을 교(敎)라 한다.

대개의 공부인들은 교의 바다에서 그 요목(要目)을 간추리고 일로(一路)를 얻어 선문(禪門)에 우뚝 들고자하나 그렇게 얻은 이는 드물다. 참답게 선에 들려하면 사교입선(捨敎入禪)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경(經)과 논(論)을 통해(通解)한 연후에 올곧게 교를 버릴 수 있는 것이나, 대개의 당세 공부인이 그러하지 못하고 좌선의 목적과 방편적 화두를 들고 선방에서 올올히 좌선하고 있는 것이 저간의 사정이라 하겠다.

철마다 일천육백여명의 수좌들이 선방에 앉아 자기를 밝히려 노력 또 노력하나 큰 인물이 뛰쳐나오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여기에는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있으니, 산승을 포함하여 모든 공부인이 스스로의 자품(資品)과 그릇(法器)을 자대자고(自大自高)하는 바에 있지 않은가 의심한다.

또한 큰 스승이 있어 학인의 병처를 적지(的指)하고, 문득 마음과 경계를 쉬게 하는 대력지보살(大力智菩薩)의 직지(直指)의 묘법(妙法)이 보이지 않는 세월이라 하겠다. 이러한 세월이라 하며 지혜 밝은이를 만나지 못함을 탓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자조(自嘲)일 따름이다.

우리에게는 드높고 훌륭하신 선배, 조사와 선사들이 있지 아니한가! 눈 부비고 살펴보면 그 어른들이 남기신 요목과 적지(的指)를 마주할 것이니, 어찌 스승이 눈앞에 없다고 하겠는가? 만약 마주하게 된다면 천년 혹은 천수백년을 찰나에 뛰어넘어 사숙(私淑)하게 됨이며, 그 직지(直指)에 힘을 얻으면 고금을 지우고 한 허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 아닌가.

본서 임제종풍의 특장은 공부인의 자품과 경계를 셋 혹은 넷으로 나누어, 이끌고 가리키며 밝혀주는 기량에 있으니, 이름하여 임제의 삼현(三玄)과 사할(四喝)이다. 또한 분양(汾陽)의 사구(四句)와 십팔문(十八問)은 미혹을 끊어주며, 마지막에 황룡(黃龍)의 삼관(三關)으로 대지(大智)에 나아가는 관문으로 삼는다.

이어 대혜종고가 평창(評唱)을 두어 옛길을 눈앞에 다시 드러내어 종문의 지남이 된 것이다. 이로써 임제종풍이 뒷날의 사표가 됨이라, 여기에 합하여 불지(佛智)를 천양(闡揚)하지 못한다면 밝은 지견(知見)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산승이 간경(看經)과 묵좌(默坐)에 거처하여 심행하는 가운데, 임제종풍이 공부의 길을 밝히고, 여러 근기를 아울러 건지는 도리를 보고서 책을 번역 발간하여 나누어 읽는 뜻을 지녔는데, 작금에 정석태교수가 초역하고 치허거사가 면밀히 교간하여 큰 허물이 없게 하였다.

조선 개국 삼년 후에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외호로 인천안목 임제종풍을 인판하여 널리 폈는데, 그 효용이 적지 않아 선비 가운데 성수침과 백인걸(白仁傑)과 노수신과 신흠 등이 이 책을 인하여 혹 지견(知見)이 나고, 혹 개오(開悟)하였다고 한다.

말법에 책을 읽지 아니하는 것이 선 수행에 이롭다고 하는 설이 있으나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견해이다. 경과 논과 어록을 읽어 악지악견(惡知惡見)을 없앨 수 있고, 정견이 선 이후에, 말을 잊고 그 뜻을 얻으며, 그 다음에 그 뜻을 쉬고 실상의 마음을 징험(徵驗)하면 개오(開悟)하여 뭇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보름달 같은 한 스승이 나면 밤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니, 한 스승의 효용에 대해 다시 말할 바가 있겠는가.

말법의 오사(汚師)가 본말과 앞뒤를 가늠하지 못하고 다만 책 읽는 것이 해롭다고 함을 따라 조사께서 간절히 설하신 진실한 도리를 배우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대저 공부는 진심(眞心)과 망심(妄心)을 밝히 알고, 정관독좌(靜觀獨坐)하며 조설(祖說)을 통파(通破)해야 조금의 공부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임제종풍은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운 바를 넘어서지 않고서 어찌 공부하는 사람이라 자처할 수 있겠는가?
 

지소·인거스님 지음 / 정석태 옮김 / 학자원
지소·인거스님 지음 / 정석태 옮김 / 학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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