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연스님
혜연스님

꽃피는 봄이 돌아 왔건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문을 닫고 서로를 경계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 전국비구니회도 산문을 닫고 법회를 잠정 연기하였으며 급하게 처리해야 할 안건만 sns로 처리하고 모든 회의, 모임을 취소했다. 동참하는 신도 하나 없는 법당에서 스님들만 예불을 올리고 항상 북적이던 공양간도 썰렁해졌다. 

어쩌겠는가. 전 세계가 함께 겪는 재앙인 것을. 우리 대중은 코로나를 극복하는 기도에 돌입하고 각자 수행의 시간을 갖자고 결의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갑작스레 찾아온 긴 휴식이 적응이 안 되어 무료해 질 무렵이었다. 공양주 보살님이 밖에 와있는 많은 김치거리가 어찌된 일이냐고 내게 물었다.

나가보니 알타리, 큰 무, 배추, 봄동 등 김장보다 더 많은 김치거리가 공양간 입구에 놓여 있었다. 회장 스님께서 밖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 오시면서 우리 대중에게 아무 언질도 주지 않고 사다 놓은 거였다. 

대중 스님들은 바로 팔을 걷어 부치고 배추를 다듬고, 무를 썰고, 소금에 절이며, 양념에 버무리는 운력에 돌입하였다. 약초와 버섯, 잡곡을 우려 면역력을 높이는 무김치, 알타리김치, 물김치를 만들어 도시락만한 작은 통에 일일이 담아 병원 두 곳에 전달하였다. 

때를 놓치지 않기…. 이는 전국비구니회 회장 스님께서 평소 우리 대중에게 강조하시는 모토이다. 코로나로 인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종교인으로서 때를 놓치지 않고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꼭 김치를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비구니 스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서 때를 놓치지 않아 참 다행이다는 생각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으로서 때를 놓치지 않고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신문3571호/2020년4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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