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향한 발심도 빅데이터에서 비롯된 것일까?

“게으른 자가, 더구나 온갖 나쁜 업을 지은 그가 축원했다고 해서 천상에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저쪽에 깊은 못이 하나 있는데 어떤 사람이 거기에 크고 무거운 돌을 집어 던졌다. 마을 사람들이 못가에 모여서 ‘돌아 떠올라라’라고 축원을 하였다. 그 크고 무거운 돌이 축원했다고 해서 그들의 소원대로 떠오를 수 있겠는가?” 
- <중아함 가미니경> 중에서

 

보일스님
보일스님

➲ 달라이라마와 데이터 

당신은 데이터를 믿을 것인가, 신을 믿을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을 텐가. 몇 해 전 달라이라마 존자가 지병으로 인한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일이 있었다. 많은 불자는 달라이라마 존자의 쾌유를 빌기 위해 촛불을 들고 병원 담장 밖에서 철야로 간절히 기도했다.

달라이라마는 수술 후 회복하면서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이런 농담을 했다고 한다. “사실 수술 받게 될 때, 진정으로 의지가 되는 건, 실력 있는 의료진과 이전에 수술했던 임상데이터들, 병원이 갖추고 있는 첨단 장비들이죠. 밖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불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요.”

특유의 해맑고 자비스러운 미소 뒤로 날리는 의미심장한 농담이었다. 기도의 힘과 믿음에 대한 반응을 기대했던 불자들에겐 다소 허탈할 수도 있는 대답이었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자신에 대한 신격화에 가까운 지나친 관심과 열성적으로 밤새 기도한 불자들이 염려되어서였을 것이다. 이유가 어쨌든, 이 일화는 종교적 믿음과 합리적 이성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제 첨단 과학기술은 야만과 무지, 전근대성의 벽을 넘어 인간의 전통적 믿음과 신화적 믿음에 대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대들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간절하게 믿는가” “믿으면 정말 이루어지는가” “그대들이 믿는 근거는 도대체 어떤 데이터인가.”

➲ ‘수기’와 ‘슈퍼예측’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인간을 더욱 영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만든다.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고 염원한다. 그래서 불안하다. 바라는 바가 성취되지 않으면 불행할 것이고, 그 반대이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녀들의 대학입시, 결혼, 승진, 병고 쾌차 등등 수없이 많은 바람을 지니고 절을 찾고 교회를 찾는다. 만약에 미래에 벌어질 결과를 미리 다 안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도 간절하게 대학교 정문에 엿을 붙이거나,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사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과거 붓다는 수행자들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세에 연등불이 붓다에게 한 예언이나 <무량수경>에서 세자재왕불이 법장에게 아미타불이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이나, <법화경>에서 붓다가 성문들에게 한 예언 등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수기(授記)’라고 한다. 일종의 ‘미래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가 내린 수기는 새로운 권위의 부여이면서 믿음의 시작이기도 하다. 수기를 받은 붓다이든, 법장이든, 성문들이든 당시 그들의 수행과 자비행이 경험으로써 데이터가 되어 미래 예측의 근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미래 예측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능력은 다름 아닌 데이터를 수집하고, 계산하고, 분석할 능력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서면서 ‘빅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양한 분야의 ‘슈퍼 예측가(Superforecasters)’ 들이 등장하고 있다. 과학자, 금융가, 변호사, 스포츠 분석가, 선거전문가, 수학자, 통계학자 등등이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미래 예측을 시도한다. 류현진이 올 시즌 몇 승을 거둘 것인지, 테러리스트나 인질범과는 절대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타당한지, 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몇 개국까지 확산되고 사상자는 몇 명일 것이며, 경제적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일지 예측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은 끊임없이 데이터를 요구한다. 매 순간, 데이터를 모으고 계산하고 분석하기를 반복한다. 인간이 직접 할 능력치를 넘어서면, 인공지능의 힘까지 빌린다. 이렇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부자가 되겠지만, 누구나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예측에 회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미래 예측은 실패의 역사이자 무덤이라고 비판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미래를 알고 싶다면 차라리 동전을 던져 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서면서 ‘빅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양한 분야의 ‘슈퍼 예측가(Superforecasters)’ 들이 등장하고 있다. 과학자, 금융가, 변호사, 스포츠 분석가, 선거전문가, 수학자, 통계학자 등이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미래 예측을 시도한다. 이러한 예측에 회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미래 예측은 실패의 역사이자 무덤이라고 비판한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서면서 ‘빅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양한 분야의 ‘슈퍼 예측가(Superforecasters)’ 들이 등장하고 있다. 과학자, 금융가, 변호사, 스포츠 분석가, 선거전문가, 수학자, 통계학자 등이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미래 예측을 시도한다. 이러한 예측에 회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미래 예측은 실패의 역사이자 무덤이라고 비판한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데이터 교’

구글과 WHO(세계보건기구) 둘 중에서 누가 더 먼저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대유행병을 먼저 감지하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보아도 구글일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WHO의 계속되는 헛발질을 비꼬려는 게 아니다. 데이터의 수집 단계에서 이미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디지털 데이터의 정보량이 폭증해가는 시점에서 데이터는 사태 분석과 예측, 통제의 필수 요수이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데이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심지어는 생소하면서도 낯선 종교까지 등장시킨다. 바로 ‘데이터 교’ 이다.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제적인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 신흥종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인간을 하나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본다. 개인은 시스템을 이루는 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흥미로운 개념은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데이터 교는’ 유기체를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보는 관점과 컴퓨터 과학에서 창안한 전자 알고리즘이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데이터 교’는 이 둘을 하나로 통합하고, 생화학적 알고리즘과 전자알고리즘에 동일한 패턴의 수학적 법칙들이 적용된다고 본다. 이를 통해, 생물과 기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자알고리즘으로써 생화학 알고리즘을 해독할 수 있게 되고, 이전까지 한계로 여겨졌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야무진 비전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놓은 코로나19의 데이터 패턴과 방탄소년단(BTS)의 최신음악, 코스닥 시장의 주가 변동 추이에 대한 데이터 패턴을 놓고, 동일한 분석수단으로 특정 대상이나 현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동일한 데이터를 가지고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대상과 현상이더라도 그 패턴을 분석해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 교도들에 따르면,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빅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전자 알고리즘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쭉 얘기해 왔던 논의 주제로 표현하자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결합이라고 할 것이다. 이 두 영역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데이터’이다. 

➲ 데이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까?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사물인터넷과 인간이 연결되고, 그 모든 연결을 통제하는 시스템인 ‘만물 인터넷(Internet-of-All-Things)’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전에 소개했던 ‘슈퍼인텔리젼트’와 비슷한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이전의 체계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강력한 정도를 넘어 마치 미래의 신(神)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모든 것을 통제할 것이고, 인간은 그 시스템에 흡수될 수밖에 없다.

데이터 교도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경험에 더 이상 신성을 부여하지도 않고, 인간이란 다른 유기체보다 다소 복잡할 뿐, 그저 한물간 알고리즘에 불과해진다. 유발 하라리는, 만약에 이 과업이 완수되면 현재의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전통적 종교에서는 자신이 믿는 신이 자신을 지켜주고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본다고 믿는다. 이제 ‘데이터 교’에서는 알고리즘이 자신을 보호해 주고 눈, 귀, 코, 혀, 몸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예측해 준다.

과거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은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했다. 이 말을 데이터교도들이 듣는다면, SNS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당신은 인생의 의미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할 것이다. 데이터의 흐름에 연결되어야만 더 큰 자아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 이 연결을 포기한다는 건 세상과 공유되지 않은 경험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는 듣기 불편한 상상력일 수도 있다.

흔히 근거 없는 믿음을 ’미신‘이라고 한다. 과연 데이터 교도들이 주장하는 대로, 미래가 그렇게 펼쳐질지 그들이 제시한 데이터 자체에 대해서도 의심해 볼 만하다. 데이터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 새로운 미신을 만들어 낼 위험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과연 미래에는 과학기술로 인해 미신이 사라질까. 모를 일이다. 과학기술 자체가 미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발심(發心)과 알고리즘

동이 트기 이른 새벽, 법당 종두(鐘頭) 스님이 예불을 위해 정성껏 불단에 촛불을 켠다. 바람에 혹여나 꺼뜨릴까, 이지러지는 촛불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싸 쥐고 한참을 서 있다. 새벽의 적막 속에서 차가운 법당, 절하는 스님의 가사가 좌복에 쓸리는 소리만이 사각거린다. 이 모든 광경이 경건하게 느껴진다. ‘데이터 교’에서는 말한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며, 그 인간의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라고.

그렇다면, 내 마음속 구도를 향한 발심(發心)도 알고리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다. 같은 데이터라도 그 수치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개인적 편견이 개입될 여지는 여전히 크다. 그렇다면, 그 의사결정과 예측은 왜곡된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데이터를 믿을 것인가. 신을 믿을 것이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을 것인가. 결국 인간이다. 인간 자체가 데이터의 흐름 속에 있는 하나의 칩이라고 하든, 알고리즘이라고 하든 상관없다. 그 데이터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새로운 의지를 발휘하는 것은 인간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숫자라고 할지라도 그 수치는 맥락 속에서 얼마든지 달리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그 마음, 그 발심(發心)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불교신문3571호/2020년4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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