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식품 먹듯 마음운동 필요
자꾸 먹고 얻고 갖고 싶을 때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보길…

혜인스님
혜인스님

일부러 절에 찾아오시는 인생 선배님들은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다. 대부분 한 줌의 사연들을 들고 오시는데, 그 사연들은 비록 한 줌일지언정 빽빽하게 가득 채워져서 건네진다. 무겁게 건네진 그 한 줌을 받아 펼쳐보는 일에서 나는 아직 이번 생엔 경험해보지 못한 오랜 성취의 흔적들을 발견하곤 한다. 반대로 인생 후배들이 오면 아직 가벼운 한 줌에, 나도 덩달아 가벼운 마음으로 무조건 괜찮다고 다독여주게 되거늘….

부모님 말씀 좀 안 들어도 괜찮고, 좀 못돼도 괜찮고, 젊을 땐 좀 실패해도, 방황해도, 넘어지고 다쳐도 괜찮다고. 그러니 뭐가 됐든 그 한 줌을 자기 인생으로 멋지게 채워보라고. 대학 중퇴하고 부모형제 버리고 직업 없이도 스님은 나름대로 잘살고 있으니, 젊은 너희들도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한 줌을 채워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선배들에게도 이렇게 다독거렸다가는 오히려 그 무게를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가 싶어서, 펼쳐 보이시는 한 줌을 점점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많은 경우들은, 그동안의 삶을 지탱해온 성취와 노력의 무게들이 이젠 내려놓고 싶은 짐이 되어있는 케이스들. 그 짐을 함께 들어드릴 수 없는 나는 짐짓 이렇게 묻는다.

“그럼 내려놓으시면 되잖아요?” 되돌아오는 질문은 “어떻게 내려놔요?” 나는 뭐든 원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세대로 자라 와서 내려놓는 것도 훨씬 쉽게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이만큼 쉽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신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뭐든 어렵게 얻어내며 살아오셔서 그만큼 내려놓는 것도 어려우신가 보구나.

그럼 난 또 너무 쉽게 말한다. “내려놓으려고 하니까 안되죠.” 얻음과 채움의 습관들이 쌓여서 ‘놓음’도 얻고, ‘비움’도 채우시려는 듯 보이는 경우엔 감히 이렇게 권유해드리고 싶다. ‘마음도 좀 운동하세요.’ 100세 시대가 돼 놓으니, 그동안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미뤄놓았던 배움의 즐거움들을 은퇴 후에야 더욱 누리며 사신다.

온갖 건강식품들이 맛있게 쏟아져 나오니 이것저것 골고루 챙김을 받으며 건강도 보충하신다. 너무 먹기만 하면 성인병에 시달리게 되니 다들 취미 삼아 운동 하나쯤은 일부러 하시며 땀도 흘린다. 이렇게 머리운동, 몸 운동, 장운동 열심히 하시면서 마음 운동도 같이 하시면 훨씬 좋을 텐데.

마음 운동이란 거 쉽게 생각하면 사실 별거 없다. 그냥 가만히, 고요히 마음을 놔두면 자기가 알아서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잡는 운동, 얻는 운동을 더 많이 해서 놓는 운동, 버리는 운동이 어렵게 느껴질 뿐.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연습만 하면 마음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그동안 주인 따라 열심히 채우느라 미뤄놨던 버림 운동을 알아서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자꾸만 먹고 싶고, 얻고 싶고, 채우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갖고 싶은 습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땐 그냥 버틸 수 있는 만큼만 버티면 된다. 얻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버티고 있는 것이 마음을 건강하게 운동시켜주는 유산균이다. 유산균 먹을 만큼 먹었으면 그땐 또 먹고 싶은 걸 먹어주면 된다. 그런 습관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비움도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 비워진 자리에서 마음은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는 인생 후배가 따라잡을 수 없는 선배님들만의 삶의 지혜가 다시 피어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나.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그 자리에서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한다고 절에 올 때마다 함께 외지 않았나. 도(道) 중에 가장 높은 도는 ‘냅도’란다.

[불교신문3571호/2020년4월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