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점심 공양 후 대중들과 ‘동안 명상길’ 포행에 나섰다. 두타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차가웠지만 여기저기 새싹이 움트고, 노루귀도 활짝 피어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벤치가 있는 솔밭까지 가서 다들 오랜만에 정담을 나눴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데 저만치 앞서가던 공양주 윤주보살님이 갑자기 땅에 꿇어앉아 절을 했다.

가만히 지켜보다 “아니, 보살님. 왜 땅에다 절을 하세요?”하니 “네, 머위를 반찬으로 쓸까하고 머위님께 고마워서 삼배 드렸습니다”하시며 공손하게 나물을 캤다. 추운겨울을 따뜻하게 품어준 대지와 새싹으로 보답한 머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갑자기 공양주보살님 등 뒤로 아우라가 비치는 듯 했다. 

우리 천은사 공양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에서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거여’ 이현주님이 쓰신 ‘밥 먹는 자식에게’라는 시다.

같이 걸려있는 절집의 오관게와 비슷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허물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모두 음식 귀한 줄을 알라는 말이다. 

쌀 미(米)자를 파자해보면 팔십팔(八十八)이 된다. 쌀 한 톨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든여덟 번의 손길을 거쳐야 비로소 밥이 되어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쌀 한 톨이 이러할진대 밥상 하나가 차려지려면 그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었겠는가.

옛날 어떤 스님은 상추를 씻다 떠내려간 잎을 건지러 개울을 뛰어 내려갔고, 설거지 하다 하수구에 있는 밥알을 건져먹는 스님들도 있다. 방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버리는 것이 살생이요, 그 음식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방생이다.

이제 나는 과연 머위의 생명을 반찬으로 받을만한 수행을 하였는가? 지은바 덕행이 부족하니 머위에게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불교신문3571호/2020년4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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