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져도 될 감정의 부스러기
실재하는 것처럼 내안에 남아
덧없는 감정을 버리는 일이란
번뇌 끊는 것처럼 쉽지 않아

장정윤
장정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다보면 메모리가 부족하게 되는데 정리를 하다보면 이상한 파일들이 생겨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무 내용도 없거나 원본에서 떨어져 나온 손상된 파일, 비어있거나 쓸모없는, 용량만 차지하는 일명 ‘정크파일’이다. 특정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보이지 않는 곳에 저절로 쌓이게 되는데 자주 정리해주지 않으면 어느새 메모리를 꽤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쓰는 것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처럼 많은 복잡한 생각들을 처리하면서 사람의 마음에도 그런 ‘정크파일’이 생긴다. 지워져도 상관이 없는 것들인데 감정의 부스러기들은 실재하는 것처럼 쌓여 마음의 용량을 차지한다. 개인적인 느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한 생각들은 점점 커져 마음이 비좁아지고, 스트레스가 되어 ‘메모리 한도 초과’의 지경에 이르면 본래의 내 마음을 제대로 활용하기는 어려워진다.

스트레스가 되는 감정들을 비워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너무 중요하게 여겨져서 쉽게 비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컴퓨터를 정리하면서 마음속에 쌓였던 특정 감정들이 비어있는 정크 파일와 같다고 깨달으니 한결 편해진 기분이었다. 이름도, 형태도, 크기도 있기에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무의미해서 버려도 되는 것이었다니….

마음이란 무엇일까? 일본에는 <부처와 돼지>라는 만화책 시리즈가 있다. 불교의 핵심과 중생의 이야기를 담은 귀엽고 익살맞은 책이다. 만화 속 돼지는 부처님께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켜달라고 말한다. 그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그래. 네 불안한 마음을 이곳으로 가져오너라. 그럼 안심시켜주마.”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갈까. 마음은 진짜로 있는 것일까? 어제는 불안했는데 오늘은 불안한 마음이 어딘가로 가버렸다면, 그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마음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걸까? 마음이 뭔지 모르겠다고 돼지는 말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감정들에 아무 실체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미워하고 있으면 미움이 있고, 미워하지 않으면 미움이 없다. 그렇기에 마음을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법구경>에서 본래 마음은 고요한 것이라 한다. 맑고 고요하여 적적한 게 마음인데, 사람들은 적적한 마음을 두려워하여 쉴 새 없이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짓고, 집착하며 괴로움을 만든다고 한다.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마음이 고요하도록 비워내야겠지만, 그 전에 내 마음의 상태를 제대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비울 수 있는 지혜로움도 생긴다. 

최근 카카오에서 개설한 ‘카카오프로젝트100’이라는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 100일 동안 같은 목표로 함께 도전하며 소정의 보증금을 걸고 매일 사진으로 인증을 하는 방식이다. 하루 한번 명상하기, 매일 2L 물 마시기 등 다양한 긍정적인 목표가 개설되어 있는데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마음이 편해지는 감정디자인’이다.

하루 3분,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글이나 그림으로 짤막하게 자유롭게 표현을 해서 인증한다. 이 인증은 참여자들끼리만 볼 수가 있어서 다른 이들의 일상의 감정도 엿보는 재미와 함께, 매일의 내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표류하는 마음 따라 흘러가는 덧없는 감정을 버리는 일이란 곧 번뇌를 끊는 어려운 일. 그 전에 먼저 내 매일의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은 큰 도움이 되었다. 특정한 감정에 빠지기 싫다면, 그 마음을 만들어내는 상황의 반복을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 싶었다.

알고자 노력해야 알 수 있고, 알아야 다스릴 수 있다. 다스릴 줄 알아야 편안하고 넉넉해진다.

[불교신문3570호/2020년4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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