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멈춤(止)과 새로 보이는 것들(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멈춤(止)과 새로 보이는 것들(觀)
  • 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 승인 2020.03.28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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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자가 바라본 코로나19

선진국 바이러스 앞 ‘무기력’
세상 지탱하는 시스템 ‘멈춤’
독버섯처럼 번지는 가짜뉴스
서재영
서재영

코로나19는 인류가 처음 겪는 형태의 재앙이다. 3월 23일 현재 확진자 33만명, 사망자 1만 4천명을 넘어섰다. 온 세상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팬데믹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재앙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 등 가난한 나라의 몫이었다. 그곳에는 늘 자연재해, 기아와 빈곤, 전쟁과 난민이 일상처럼 존재했다. 소위 제1세계로 불리는 서방세계는 그런 재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이란, 미국, 프랑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나라의 순위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재앙은 한국을 재물로 삼을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를 비롯해 서방국가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이들 나라에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의술과 의료체계가 선진화된 나라에서는 중국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반대로 흐르고 있다.

➲ 뜻밖에 멈춘 질주

이들 국가는 소위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세계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심축이다. 그런 나라들이 앞 다투어 공항을 폐쇄하고, 식당과 가게를 닫고, 예배를 비롯해 이동과 모임이 금지되면서 소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자연히 세계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면서 생계에 위협받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온갖 가짜뉴스가 독버섯처럼 번지면서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조장하는 인포데믹(정보전염병)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휴지를 비롯한 생필품 사재기에는 급급하면서 사회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총기와 실탄까지 싹쓸이하는 일까지 벌어져 우려를 키우고 있다.

활주로에는 멈춰선 항공기들로 가득하지만 터미널은 텅 비어 있다. 그동안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연결이 화장되어 왔고, 무한히 확장될 것처럼 보였다. 5만 8000개에 달하는 항로로 온 세계를 거미줄처럼 잇고 있다. 지식정보 역시 인터넷망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통팔달 이어진 교통망과 정보망을 바탕으로 세계경제도 하나의 가치 사슬로 묶여 있다.

의도하지 않은 재난 속에서도
새롭고 긍정적 효과도 나타나
사람들 인식이 바뀌기 시작해

그러나 제1세계의 국경폐쇄와 인적 물적 교류가 멈추면서 하나의 사슬로 묶여 있던 세계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부품공급을 받지 못한 공장들이 멈추고, 주식시장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3경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는 사이 세상을 지탱하던 시스템은 갑자기 느려지거나 여기저기서 멈추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너무 빨라 현기증 난다고 외쳤다.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면 좀 느리게 가자, 잠시 멈춰 서서 돌아보자고 소리쳤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나로 연결된 세계경제 시스템은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면 넘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물에 불과한 바이러스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정신없이 돌아가던 세계를 멈춰 세웠다.
 

코로나 19 사태는 쉼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사진은 ‘멈춤’ 표시판이 서 있는 강원도 정선군의 고한역 철길. 김형주 기자
코로나 19 사태는 쉼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한다. 사진은 ‘멈춤’ 표시판이 서 있는 강원도 정선군의 고한역 철길.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예상치 못한 선물 

물론 예기치 못한 일이라 충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갑자기 닫혀버린 세계의 문, 멈춰버린 일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공덕천과 흑암녀는 함께 다니는 법이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게 찾아온 재난상황이지만 그 혼돈 속에 새롭게 보이는 긍정적인 것들도 나타났다. 

첫째, 하늘이 맑아졌다. 작년 이맘 때 우리는 최악의 미세먼지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엄청난 사회적 피해에 대한 소식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올 봄에는 비교적 하늘이 청명해 졌다. 유럽우주국(ESA)에서 촬영한 위성영상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대기상황이 코로나19 발생 전과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사람과 차량이 멈추고,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항공기와 자동차, 사람과 공장이 멈추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를 반영하듯 국제유가도 급락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해마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그동안 인간의 활동은 지구가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과중했다. 지구는 온난화라는 고열에 시달려왔고, 생명들은 대기오염으로 극심한 호흡곤란에 빠져 있었다. 인간의 활동이 위축되자 바튼 기침을 하며 시들어가던 자연이 되살아났다.

둘째,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은 병원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국유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해야 할 미국에서조차 의료관련 기업의 국유화가 추진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긴축정책을 펴면서 경쟁적으로 공공영역을 민영화했다. 공익과 직결되는 의료, 교통 등이 민영화되면서 사회의 공공성은 후퇴하고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 결과 가장 잘 사는 나라들조차 바이러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취약한 사회가 되었다.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아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 되새겨
‘성숙한 일상 복원’ 지혜 필요해

우리나라 역시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 되던 때가 있었다. 철도와 공항 등 중요한 사회기반시설까지 민영화의 대상이 되었다. 민영화는 자본과 시장의 질서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은 돈을 쫓을 뿐 생명과 사람의 존엄성 같은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일례로 미국처럼 돈 많고 의학이 발달한 나라조차 사람들은 돈 때문에 진단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갑작스런 위기로 질주가 멈추자 인류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공익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셋째, 끝없이 치솟던 아파트 값이 떨어졌다. 지난해 7월 이후 치솟던 서울의 집값이 37주 만에 상승세가 꺾였다. 물론 한시적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거울에 삶을 비추어보면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돈과 물질적 풍요가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낯선 위기와 직면하자 그런 것들은 소용없는 기호에 불과했다. 여기서 사람들은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처봉생(絶處逢生)이라고 했듯이 가장 심각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뜻밖의 선물을 발견했다. 그 선물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추구했던 전환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인간의 활동이 너무 과도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인간의 소비와 활동이 대폭적으로 감소해야함을 설명한다. 과도했던 욕망을 줄이고, 질주의 삶을 멈추고 무엇이 참다운 가치이고 행복인지 성찰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 시스템 또는 삶의 복원?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산책하고, 형편에 따라 쇼핑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과 같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감하기 시작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마조선사의 가르침이 모두의 가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모두가 소중했던 예의 일상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한다. 각국 정부는 예전의 상태로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으며 경기부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 똑같은 일상의 복원이 정답인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뜻밖에 찾아온 멈춤을 통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을 보았고, 삶이 전환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았고, 무엇이 소중한 가치인지 눈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무조건 잘 돌아가던 과거로 똑같이 돌아가자고 할 것인가?

다시 미친 듯이 달리고, 엄청난 상품을 생산하여 미친 듯이 소비하고, 온 세계를 제집처럼 쏘다니며 항공유를 공중에 뿌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제품을 동네 슈퍼에서 소비하는 그런 삶을 추구할 것인가?

물론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하루빨리 일상을 복원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복원, 우리가 지향했던 바른 방향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질주하던 세계가 멈추자 하늘은 맑아졌고, 과도한 생산과 소비도 줄어들었고, 참다운 가치에 눈뜨기 시작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잘 달리던 그때의 장점과 느려진 현재의 장점을 결합할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과거의 복원만을 추구하면 세상은 다시 미친 듯이 달릴 것이며, 사람들은 별 소득 없이 고단한 일상으로 다시 빠져들 것이다. 그런 질주는 결국 이보다 더욱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생산기계, 소비기계로서 세계는 느려져야 한다.

멈추지 말아야할 것은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이고, 모든 존재의 공존과 평화이다. 일상을 빨리 되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숙된 일상을 복원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불교신문3570호/2020년4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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