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불안한 상태다. 국내와 발원지 중국이 진정 기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유럽과 미국이 심상치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이처럼 전 세계를 전례 없는 위기에 빠트리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마음은 복잡하다. 바이러스는 가장 먼저 먹고 사는 문제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사람과의 전염을 피하기 위해 격리와 거리두기 탓에 식당, 학원, 체육시설, 주점, 오락실 등 모든 업소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공장이 문을 닫고 국제 교역도 멈춰서는 바람에 항공 관광 등 서비스업과 중화학 등 대규모 공장도 위기에 빠졌다. 금융 불안으로 인해 주식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류가 맞는 가장 큰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너나 없이 어렵다 보니 가려져 있던 문제가 드러났다. 국민들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누가 이익을 주는 자이며 누가 해를 끼치는 지 똑똑히 목격하고 체험했다. 찬 바람이 불고 나뭇 가지가 모두 떨어질 때 진짜 모습이 드러나듯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바닥과 그릇의 크기를 알게 됐다. 개인도 사회도 모두 수준을 드러냈다. 

바이러스 앞에 민낯을 드러내는 행렬에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불교가 코로나 발발 초기부터 법회를 중단하고 산문을 폐쇄하고 천주교가 미사를 중단하는 등 전염병 예방에 적극 나선데 반해 일부 교회는 역행하는 행동으로 국민들 공분을 샀다. 다른 종교 의식과 신앙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자면 일부 교회의 처신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각 종교마다 교리 교주 신앙체계 등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 마음의 안식과 평화, 사회 안녕이다. 지금처럼 전염병으로 모든 사람이 힘들 때 종교는 가장 험한 길을 자처해야한다. 일반인보다 더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신을 던져 베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신도들이 땀 흘려 일군 생산물로 영위하는 정신적 귀의처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받은 물질을 세상이 가장 어려울 때 돌려주는 것이 종교가 해야 할 기본 도리다.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는 불교의 촛불 정신, 다른 음식에 스며들어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기독교의 소금 철학은 사찰과 교회 밖 사람들이 힘겨워 하는 지금 발휘돼야한다. 전염병 때문에 우리도 어렵다며 하소연하거나 손 벌리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전염병 사태가 종교 문제로 비화된 현실은 불교 입장에서도 당혹스럽다. 극히 일부 기독교 교회에 한정된 문제라 해도 탈종교화로 어려움을 겪는 종교계로서는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불교와 천주교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탈종교라는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를 떠다니는 처지는 같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는 한국 종교계 전체가 진지한 성찰과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한다. 어쩌면 한국 종교계에는 코로나19 보다 더 큰 파도가 이제부터 밀려들지 모른다.  

[불교신문3569호/2020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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