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계, 자성 없이 인연 따라 생멸

오온은 상의상존 하여 존재
인무아와 법무아 증득해야만
중생 구제해도 상낼 일 없어

등현스님
등현스님

3가지 연민심 가운데 ‘공성의 관점에서 본 연민심’이 최상이고, 보살승의 이상이다. 그것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되 한 중생도 구제한 바가 없어서, 상을 내고 생색을 낼 일도 없고 종일 도와줘도 피곤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태는 인무아와 법무아를 증득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무아에 대한 초기불교의 견해는 제법무아(sabbe dhammā anatta)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인식 대상인 모든 현상에 자아(atta)가 없다(an)는 말이다. 여기서 atta(ātma)는 자재함, 스스로 존재함, 자성의 의미이고, 그래서 무아는 자성(스스로 존재하는 자)이 없어 모든 현상들이 의존되어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제행이 무상’하므로 ‘제법이 무아이다’라는 논리에서도 드러난다. 

제법(諸法)을 좁은 의미에서 보면 오온이다. 이때의 제법무아는 오온에 아트마가 없다는 뜻이다. 오온무아에 두 가지 번역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오온은 아트마가 아니다(五蘊非我)’이다. 그러나 ‘오온이 아트마가 아니다’라는 말은 힌두교도들에게 오온의 밖에 아트마가 있다는 말로 오해될 여지가 있고, 실제로 불이의 웨단타는 그렇게 해석한다.

둘째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온무아(五蘊無我)’로 번역한다. 오온 밖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닫아둔 것이다. 그러므로 제법무아는 오온(pañca skandha)의 자성(svabhāva)이 없다, 비어있다 라는 것이 된다. 오온은 무자성이기에 여러 가지 조건들에 의존하여 존재하게 된다.

오온은 존재하지만 시시각각으로 인연 따라 변하고, 변하면서도 존재한다. 물질은 욕구에 의존되어 있고 욕구는 대상에 대한 정보와 느낌에 의존되어진다. 이처럼 오온은 상의상존 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색은 행에 의존되어있고, 행은 수상에 의존되어 있고, 수상은 식에 의존되어 있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느낌은 접촉에 의존되어 있고, 접촉은 주관과 객관이 서로 만남에 의존되어 있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만나는 물질적 현상에서 마음은 특정한 것으로 향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성향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 성향은 전생의 기억들에 의존한다. 전생의 기억은 또 행위들의 인상들이고 그 행위들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에 무언가 영원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환상이 모든 행위와 업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이고, 그로 인해 오온이 순차적으로 증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조건들이 얼기설기 얽혀서 오온이 생성된 것이기에, 오온에서 조건들을 벗기고 나면 오온 자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온(五蘊) 자성(自性) 개공(皆空)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오온 중 정신현상들은 모두 대상 즉 객관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것이고, 객관에 대한 정신작용이기 때문에, 오온은 오온에 한정되지 않고 현상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제법은 다시 모든 현상세계를 말한다. 이때 제법무아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오온만 공하다는 것이 아니고,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에 경험되어지는 모든 존재하는 현상들마저도 공하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광의의 의미에서 법공이다. 중관학파에서는 무아를 인무아와 법무아의 두 가지를 말하는데, 그중 오온무아는 인무아에, 제법무아는 법무아에 해당된다. 그것은 나와 인식 대상인 현상계 모두가 자성이 없으므로 인연 따라 생멸한다는 것이고, 대승 특히 중관학파에 와서 공이란 단어로 정착하게 된다. 

무상함은 경험되어지는 모든 존재들의 속성이고, 변하는 존재들은 인연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무아론은 인과론의 연기설과 한 쌍을 이룬다. 연기설을 떠나서는 본래 없던 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관학파의 아공과 법공은 연기의 법칙성마저도 공하므로 부정하는 것인가? 이것은 불교 제학파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였지만, 인도에 있는 모든 종교와 종파 심지어는 물질론자들마저도 가세하여 1000여 년에 걸친 치열한 논쟁 주제이기도 하였다. 

[불교신문3569호/2020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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