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천국은 더 이상 트렌드가 될 수 없다”

미륵과 예수는 종교 뛰어넘어
우리 중생에게 희망의 메시지
거룩한 판타지 안겨주는 존재

절대 옹졸치 않아 누구나 제도
누구나 구원해 주고자 할 것
배타와 아집은 어울리지 않아

이젠 회통기독교 일승기독교
호국기독교를 보여 줄 때다

맹신 배타 독선에서 벗어나
바른 안목 바른 견해 가지려면
믿음 바탕 ‘마음수행’ 꼭 필요

문광스님
문광스님

➲ 한반도 미륵하생신앙의 전통

우리 한반도에 미륵이 하생한다는 삼국시대의 신앙은 8세기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미륵을 친견하면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진표율사는 변산반도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망신참회(亡身懺悔)를 통해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계율을 받았으며,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점찰경(占察經)과 간자(簡子)를 받고 3회 설법처인 미륵의 설법도량을 부촉 받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한반도로 미륵이 하생한다는 신앙은 더욱 확고해졌고,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우리 땅으로 미륵이 하생한다는 신념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모악산(母岳山)은 당래(當來)의 미륵불을 품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고, 금산사(金山寺)의 미륵전은 한반도 용화정토의 서막을 알리는 성지(聖地)가 되었다.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의 경내에 크게 조성되어 있는 청동대불은 진표율사의 창건정신을 그대로 잇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북한 금강산의 발연사(鉢淵寺)가 아직 폐사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삼국유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듯이 진표율사는 발연사의 불사를 완성하고 이 곳에서 입적했는데, 현재 무지개다리가 유일한 유적으로 남아 하루 속히 남북이 통일되어 이 미륵성지가 복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될 점이 있다. 우리에게는 미래불인 미륵존불이 하생(下生)할 성지가 한반도라는 신앙과 함께 석가세존이 오시기 전의 과거불(過去佛) 역시 이 땅에서 설법했다는 역사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불(前佛)의 가람터 7곳과 가섭불의 연좌석이 황룡사 자리에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우리 한국 땅이 바로 전 세계 불교의 중심국가임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종교관에는 이러한 모종의 ‘중심의식’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 가섭존자의 증명과 선종(禪宗)

부처님의 이모이자 최초의 비구니인 마하파자파티는 세존께 금루가사를 지어 올렸고 부처님은 이 가사를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이은 가섭존자에게 부촉했다. 미륵삼부경에 보면 부처님은 가섭존자에게 수기를 주면서 미륵이 하생했을 때 이 가사로써 석가의 뜻을 증명하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미륵신앙의 근원이자 선종(禪宗)의 시작이기도 하다. 

가섭은 석가세존의 부촉을 완수하기 위해 아직도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의 하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역대 조사 스님들이 정안(正眼)을 잇는 것은 자성을 깨쳐서 견성성불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륵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륵불이 가섭의 가사를 받아 입고서야 가섭의 몸은 열반에 든다는 <미륵하생경>과 <미륵성불경>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선종(禪宗)의 사명 가운데는 미륵을 판별할 수 있는 법력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말에 궁예와 견훤이 나타나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인 척 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도선국사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왕건을 지지함으로써 고려 개국을 도왔다. 고려 말에 신돈이 나타나서 다시 세상을 구제할 인물임을 자처했을 때 태고국사는 그를 부인했으며 개경에서 속리산 법주사로 내쫓기게 되었다. 신돈이 실각하자 태고보우 선사는 다시 국사가 되어 개경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에는 미륵을 자처하는 많은 교주들이 나타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불교의 고승과 역대 조사 스님들은 법안(法眼)을 통해 진가(眞假)를 냉철히 구분해 주었다. 한국불교가 가진 선불교에 대한 애착과 조계종이 가진 선종으로서의 위상은 바로 한반도로 미륵이 하생한다는 굳건한 믿음과 미륵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자가 항상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필자는 해인사 원당암의 대중과 함께 화순 운주사의 미륵와불을 탁본하여 입불(立佛)의 형태로 제작한 바 있다. 운주사의 와불이 일어나는 순간 미륵이 이 땅으로 하생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은 동국대학교가 개교100주년을 맞이했던 해로 동국대 석림회 스님들은 ‘동국 한세기 대법회’를 열었다. 이 때 운주사 미륵와불 탁본을 동국대 명진관에 괘불로 세웠다. 현재 ‘운주와불의 괘불’은 보성 봉갑사에 보관되어 있다.
필자는 해인사 원당암의 대중과 함께 화순 운주사의 미륵와불을 탁본하여 입불(立佛)의 형태로 제작한 바 있다. 운주사의 와불이 일어나는 순간 미륵이 이 땅으로 하생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은 동국대학교가 개교100주년을 맞이했던 해로 동국대 석림회 스님들은 ‘동국 한세기 대법회’를 열었다. 이 때 운주사 미륵와불 탁본을 동국대 명진관에 괘불로 세웠다. 현재 ‘운주와불의 괘불’은 보성 봉갑사에 보관되어 있다.

➲ 예수를 바로 보는 안목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유대인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처럼 예수와 같은 인물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세례와 회개를 통해 준비하고 있었던 선각자가 있기는 했다.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가서 직접 세례를 받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이다.

‘목격이도존(目擊而道存)’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수와 세례요한은 서로 눈을 마주치자마자 서로 도가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다. 로마의 빌라도 총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가운데는 미륵을 알아보는 가섭존자와 같은 눈 밝은 혜안을 갖춘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의 제자임을 부인했고 가롯 유다는 예수를 배신했다. 부활한 예수를 믿지 못한 도마는 손가락으로 예수의 몸을 찔러 보기까지 했었다. 저러한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나 있었던 듯 석가세존은 가섭존자에게 열반묘심과 법안(法眼)을 물려주고 증명까지 하도록 부촉했던 것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는 예수임을 자처하는 교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혜와 안목은 맹신과 추종으로부터 자유를 준다. 바른 종교관은 바른 안목과 바른 견해(正見)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믿음을 바탕으로 한 마음수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 21세기 한국문명의 가장 큰 과제

미륵을 ‘자씨(慈氏)’라고 하는 것은 ‘마이트레야(maitreya)’를 의역한 것인데, 이는 ‘메시아(messiah)’와 어원이 같다는 말이 있다. 미륵과 예수는 우리와 같은 중생에게는 종교를 뛰어넘어 크나큰 희망의 메시지와 거룩한 판타지를 안겨 주는 존재이다. 미륵이나 예수는 절대 옹졸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제도하고 누구나 구원해 주고자 할 것이다. 배타와 아집은 성자의 사상과 인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사무엘 헌팅턴의 명저 <문명의 충돌>에는 21세기에 펼쳐질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충돌의 위험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들만의 구원, 우리만의 천국은 이제는 더 이상 세계적 트렌드가 될 수 없다. 모든 종교인은 이제 배타와 독선으로부터 해탈해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어법처럼 유교가 들어오면 국가를 위한 유교가 되지 못하고 유교를 위한 국가가 되며, 기독교가 들어오면 국가를 위한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를 위한 국가가 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은 모든 사상과 종교가 들어오면 결론을 맺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으며, 기존의 토착신앙과 잘 융합하여 더 큰 정신문명으로 발전해 나아간 역사가 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도 어언 200년이 넘었다. 이제는 한국 기독교계에도 거대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진정한 ‘한국적 신학(神學)’이 나와서 ‘회통 기독교’, ‘호국 기독교’, ‘일승 기독교’를 부르짖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가지는 융합과 통합의 한국적 특성이 기독교 신학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신천지’라는 기독교계 이단을 통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아직도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 국민이 실내행사를 취소하는 와중에 여전히 주말예배를 강행하는 일부 교회들을 보면서 잠시 망상과 오지랖을 피워보았다. 

하지만 필자는 항상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과 조화를 21세기 한국문명의 가장 큰 과제상황이라고 생각해 왔다. ‘회통’, ‘호국’, ‘일승’과 같은 단어들이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에 널리 회자되는 날을 기다리며, 2018년 중국 복건성에서 열렸던 세계 불교도 대회에서 발표한 ‘동서문명의 회통시대’라는 글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회통을 염원했던 시를 다시 읊조려 본다. 

天國極樂本一家 
愛人慈悲原一心 
耶蘇彌勒拍掌笑 
聖母觀音攜手舞 

천국과 극락이 본래 한집안이요,
사랑과 자비가 원래 한마음이로다.
예수와 미륵이 박장대소하고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이 손을 마주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도다.

[불교신문3569호/2020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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